1-4장: 당신의 공로(Credit)는 없다. 노력도 생물학적 로또일뿐.
2026 2월 넷째 주-3월 첫째 주: Kindle Ebook
로버트 사폴스키의 Determined: A Science of Life Without Free Will (2023)은 그의 전작 베스트셀러 Behave의 연장선에 있다. 주장은 책 제목 그대로다. 우리가 '선택'이라고 믿는 모든 것은 사실 생물학, 유전, 환경,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지는 기나긴 인과관계의 사슬에 불과하다. 사폴스키는 "자유의지가 존재할 여지는 단 1나노미터도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독자가 결정론적 세계를 인정하고,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다만 그 자유의지가 생각보다 훨씬 없거나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중요한 명제들에 대해 의견을 바꾸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자유의지가 있다는 주장들을 하나씩 열거하며 왜 오류인지를 밝히겠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입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확인해 볼 생각이다. 우선 나의 견해는 아래에서 2번에 가깝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저자는 네 가지 입장을 정리한다.
1)세상은 결정론적이고 자유의지는 없다 — 사폴스키의 입장. 세상이 결정론이라면(deterministic)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없다. 즉 양립가능하지 않다 (incompatible)
2)세상은 결정론적이지만 자유의지는 있다 — 양립가능론. 대부분의 학자들이 여기 속한다. 사폴스키는 책에서 이 진영을 주로 공격한다.
3)세상은 비결정론적(랜덤)이고 자유의지는 없다 — 양자역학에 근거. 책의 9~10장에서 다룬다. 이 진영의 학자들은 스스로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얘기하지만 사폴스키는 이 이론을 자유의지가 없다 진영으로 분류한다.
4)세상은 비결정론적이고 자유의지는 있다 —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양립가능하지 않다 (incompatible) 하지만 세상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자유의지도 있다. Iibertarian incompatiblist.
저자는 1번이 진실이며, 자유의지가 없으므로 도덕적 책임도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범죄자를 처벌하는 방식도 응징이 아니라, 고장 난 기계를 고치거나 격리하는 '검역(Quarantine)'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억지력으로서의 처벌은 논외). 또한 Basic Desert( '근본적인 응분의 대가' 혹은 '본질적인 자격')는 없다.
만약 당신이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했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그 보상을 받을 'Basic Desert'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의 노력이 그 보상의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 반대로 범죄자가 감옥에 가는 이유는, 그가 자유 의지로 나쁜 선택을 했으므로 그 처벌을 받을 'Basic Desert'가 있기때문이다. 사폴스키는 이것을 부정한다. 위에서 2번의 견해는 현대의 사법시스템의 근간을 이룬다.
2장의 핵심은 리벳 실험이다. 1980년대 벤저민 리벳은 피험자들에게 원할 때 손목을 구부리게 하면서 뇌파를 측정했다. 그 결과, 피험자가 "지금 움직이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심하기 약 0.5초 전에 이미 뇌에서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라는 전기 신호가 먼저 발생한다는 것이 관측되었다. 의식적 결정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우리 뇌는 결정을 했고 우리는 뒤에 이걸 인지할 뿐이라는 것.
이후 수십 년간 이와 관련된 실험들이 이어졌고, 결론은 더욱 도발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뇌 스캔 기술이 발전하면서 연구자들은 피험자가 결정을 의식하기 수 초, 심지어 10초 전에 이미 어떤 선택을 할지를 뇌 활동 패턴만으로 예측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의식은 이미 일어난 일을 뒤늦게 보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준비전위가 반드시 '결정'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단순한 '의도'나 '준비' 상태일 수 있다는 것, 측정 방식의 한계, 피험자의 자기 보고 신뢰도 문제 등이 제기되었다. 리벳 스스로도 이 비판을 의식했는지 'Free Won't'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행동의 시작은 무의식적으로 결정될지 몰라도, 그 충동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거나 억제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즉, 자유의지는 '행동을 시작하는 힘'이 아니라 '행동을 멈추는 힘'으로 남아있다는 주장이다.
사폴스키는 이 Free Won't 개념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충동을 억제하는 그 행위 역시 또 다른 신경 과정의 결과이며, 그것도 결국 이전 원인들에 의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멈추는 힘'도 어디선가 왔다.
그런데 사폴스키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사실 리벳 실험의 결론이 무엇이든 아무 상관없다고. 그것이 결정이든, 의도든, 준비 상태든 간에, 그 의도(intent)는 어디서 왔는가? 그 의도가 형성되기 몇 분 전의 호르몬(테스토스테론이나 옥시토신), 몇 시간 전의 스트레스, 며칠 전의 사건들이 이미 뇌의 상태를 세팅해 놓았다. 리벳의 실험은 영화의 마지막 3분만 보고 영화를 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영화 전체를 다 봐야 한다.
3장에서 사폴스키는 소급의 범위를 대폭 넓힌다. 우리가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행위 하나를 놓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몇 초 전 신경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몇 분 전 호르몬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사춘기에 신피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뇌 가소성), 유아기에 양육자와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태아기로, 유전자로, 그리고 수만 년 전 선조의 진화적 배경까지.
몇 초 전 → 몇 분 전 → 사춘기 → 유아기 → 태아기 → 유전자 → 선조
각 레이어마다 저자는 묻는다. 여기서 자유의지가 끼어들 틈이 있는가? 그리고 매번 없다고 답한다.
심리학자 엔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의 베스트셀러 제목으로도 유명한 이 단어는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를 의미한다. 사폴스키는 이 'Grit'이라는 개념이 자유의지 옹호론자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라고 본다.
우리는 보통 "머리가 좋은 건 유전이지만, 끝까지 앉아서 공부하는 근성은 본인의 노력(자유의지)이다"라고 생각한다. 사고를 당해 팔이나 다리를 잃고도 금메달을 딴다거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끈기와 의지로 높은 지위에 올라간다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의지가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역경을 이겨낸 영웅담은 대중에게 "너도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사폴스에게는 지능이나 끈기나 둘 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생물학적 로또'다. 끝까지 앉아 있는 힘, 유혹을 참는 전두엽의 성능 또한 유전과 환경이 빚어낸 산물이다. 즉, 노력할 수 있는 기질조차 하드와이어드(Hard-wired)되어 있다.
사폴스키는 우리가 '의지'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능력을 뇌과학적으로 세분화한다.
인지적 PFC (Cognitive PFC / dlPFC): 냉철한 전략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계획을 짜고 논리적인 실행 방안을 검토한다.
사회적 PFC (Social PFC / vmPFC, OFC): 정서적 나침반. 사회적 맥락, 도덕적 가치, 타인의 시선을 고려한다. 행동에 대한 정서적 보상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이 두 영역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혹은 투쟁)의 결과가 우리의 행동이다. 사폴스키는 이 과정이 혈당 수준, 호르몬, 과거의 강화 학습에 의해 기계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사폴스키는 이 장을 통해 'Basic Desert(근본적 응분의 대가)'를 파괴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근성을 칭찬할 때, 실제로는 그가 운 좋게 물려받은 '전두엽의 효율성'을 칭찬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성공한 자는 오만할 자격이 없고, 실패한 자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사폴스키는 뇌의 구조와 역할을 다소 고전적인 프레임으로 다룬다. 편도체를 공포와 공격성을 담당하는 원시적 기관, 전두엽을 논리적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로 말이다. 사폴스키는 논증을 위해 인지와 사회(정서)를 구분하여 설명하지만, 최신 네트워크 신경과학은 이 과정이 훨씬 더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임을 보여준다.
편도체가 감정을 다루는 기관이라는 이론을 정립한 조셉 르두는 스스로 의견을 바꾼 바 있다. 편도체는 의식적인 '공포'를 느끼는 곳이 아니라, 생존 자극에 반응하여 무의식적 행동을 조직화하는 곳이다. 우리가 그것을 '공포'라고 해석하고 주관적인 감정으로 경험하는 것은 신피질의 작업이다. 이는 리사 펠드먼 배럿의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구뇌는 무의식적 반응을 생성하고, 신피질은 그 신호를 예측, 해석, 맥락화한다. 신피질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과거 경험과 현재 입력을 대조해 끊임없이 예측 모델을 수정하는 '능동적 편집자'다.
여기에 자유의지의 힌트가 있지 않을까? 만약 내가 내 행동과 생각이 옳은지를 반추하고, 그 반추를 통해 뇌의 연결 — 즉 미래의 예측과 계산 — 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 자유의지가 아닐까?
물론 사폴스키는 '반추하는 행위'조차 결정된 인과라고 하겠지만, 그 반추를 통해 자신의 뇌 회로를 의도적으로 재배선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수동적 반응과는 차원이 다르다. 신피질의 재귀적 루프는 단순한 인과 사슬과 질적으로 다른 구조를 갖는다. 일반적인 인과는 외부 자극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지만, 재귀적 루프는 시스템이 자신의 출력을 다시 입력으로 받아 자신의 작동 방식 자체를 수정한다.
내가 내 생각을 반추하고, 그 반추가 다시 나의 예측 모델을 바꾸고, 그 모델이 다음 반추의 출발점이 된다면—이 자기-참조적 구조 속에 "나"라는 행위자가 개입할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이 부분에서 나는 스티븐 핑커의 "전두엽이 개입해 결과를 예측하고 선택하는 과정 — 그것이 우리가 자유의지라 부르는 것"이다라는 의견에 동감한다.
*자유의지에 대한 진영과 각 진영별 대표 학자들의 주장은 자유의지는 있나?에 정리해 두었다.
나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도록 생물학적으로 결정돼 있나?
아직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습게도 몇 년 전까지 나는 강한 <결정론자+자유의지 없다> 진영이었는데 최근에 바뀌었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나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선호하도록 생물학적인 변화가 쌓였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후 나의 견해를 바꾼다면, 그것은 자유의지의 승리일까? 사폴스키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견해를 바꾼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이성이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정보라는 환경적 자극이 당신의 신경 회로를 재배선한 결과일 뿐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설득될 수밖에 없는 뇌를 가졌던 것뿐이죠."
다음 5-10장에서는 결정론을 뒤집는 카오스 이론과, 창발적 복잡성(Emergent Complexity) 그리고 양자역학에 기반한 비결정론을 비판한다. 개인적으로는 창발적 복잡성이 매력적인 이론이었다. 인간의 두뇌가 고차원의 인지 작용을 갖게된 이유에 대한 해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