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8/100]Determined-2

5장~10장: 카오스, 창발성 그리고 양자역학


라플라스의 악마(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면 미래를 100% 예측할 수 있는 존재)가 지배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은 현대 과학에서 여러 방향으로 도전받고 있다. 사폴스키는 5장부터 10장에 걸쳐 이 도전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각 이론마다 앞장에서 소개하고 뒷장에서 반박하는 구조로, 카오스 이론(5~6장), 창발성 Emergence(7~8장), 양자역학(9~10장) 순으로 이어진다.



카오스 이론과 복잡계 — 예측 불가능성은 비결정론인가


기상 현상처럼 아주 작은 초기값의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드는 복잡계에서는, '인과관계'를 사후에 설명할 수는 있어도 사전에 결정된 대로 흘러간다고 확언하기가 어렵다. 많은 이들이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를 보며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니 결정론은 틀렸고, 그 틈에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폴스키의 반박은 간결하다. 예측 불가능성은 비결정론이 아니다. 우리가 계산할 수 없을 뿐, 이미 결정되어 있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특정 원인에 대한 결과값이 하나의 고정된 수치가 아니라 범위로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리고 내 의지가 그 범위 안에서 아주 작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0.51을 0.52로 바꾸는 것은 반올림하면 0.5로 보여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만, 카오스이론은 그 미세한 차이가 나비 효과처럼 훗날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 억지로 나가서 5분을 걷는 것, 그 작은 의지의 행사가 당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내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창발성(Emergence) — 더 많은 것은 다르다 More is Different


창발이란 "단순한 하부 요소들이 모여, 그 개별 요소들에게는 없던 고도의 복잡한 특성이 상위 수준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수소(H)와 산소(O)에는 '적시는 성질(젖음)'이 없지만, 이들이 결합한 물(H2O)에는 '젖음'이라는 새로운 속성이 나타난다. 개미 한 마리는 단순하지만 군집은 다리를 건설하고, 버섯 농사를 짓고, 전쟁을 치르는 고도의 지능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뉴런 하나는 그저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세포일 뿐이지만 860억 개의 뉴런이 연결되면 '의식', '자아', '이성적 판단'이라는 고차원적인 특성이 창발한다.


사폴스키는 개미 군집의 예시를 들어 반박한다. 군집의 지능조차 개별 개미들이 따르는 단순한 규칙들의 합일 뿐이며, 물이 축축한 것이나 개미 떼가 지능적인 것은 '새로운 물리 법칙'이 생긴 결과가 아니다. 하부의 물리 법칙들이 복잡하게 얽혀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일 뿐.


창발론자들은 상위 시스템의 행동을 하부 요소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지만, 사폴스키는 "단지 우리가 아직 그 복잡한 연결 고리를 다 계산하지 못할 뿐, 원칙적으로는 모두 물리 법칙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끌리는 이론이다. 산소와 수소라는 기체가 만나 '적심'과 '표면장력'을 가진 액체(물)가 되는 현상, 개별 세포들이 모여 생명이 되는 현상, 그리고 뉴런들이 모여 의식이 되는 현상은 모두 동일한 논리 구조를 가졌다. 이 논리를 따라가면 인간의 '자유의지' 또한 물리 법칙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그 위에서 피어난 새로운 차원의 꽃처럼 설명할 수 있다.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이 1972년 논문에서 주장했듯, "More is Different(더 많은 것은 다르다)."


더 나아가, 상위 시스템의 상태(나의 결심, 나의 의지)가 거꾸로 하부의 뉴런 발화 패턴을 구속하고 조절하는 하향 인과(downward causation)가 아주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어떨까. 창발과 카오스가 만난다면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양자역학적 불확정성 - 미시 세계의 확률


사폴스키 자신도 이 양자역학에 대한 장을 정말 쓰기 싫었다고 고백한다.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영역이므로.


그럼에도 그의 반박은 두 갈래다. 첫째, 미시 세계의 무작위성이 거시 세계인 뇌의 결정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둘째, 무작위성은 자유가 아니다. 내 뇌 속에서 양자적 요동이 일어나 내 행동을 결정했다면, 그것은 나의 의지인가, 아니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주사위 던지기인가.


로버트 케인(Robert Kane)이나 피터 체(Peter Tse) 같은 학자들은 무작위성에 동의하지 않는다. 행동이 100% 무작위인 게 아니라, 뇌가 여러 선택지를 확률적으로 열어둔 상태에서 팽팽하게 맞선 두 생각 사이의 저울이 기우는 바로 그 결정적 순간에 양자적 비결정성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물리적 강제성이 없는 그 찰나가 '진정한 선택'의 토대가 된다는 논리다. 의식의 양자적 기반을 주장하는 연구들(Penrose-Hameroff 가설 등)도 이 맥락에서 종종 거론된다.


다만 양자역학은 아직 우리가 아는 게 너무 없다. 지금 이 논쟁에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과학적 발견이 더 이루어져야 할 영역이다.



5장부터 10장까지는 솔직히 말하면, 지적으로 흥미롭지만 조금 공허한 느낌이었다. 양자역학은 "자유의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틈새를 열어줄 뿐, 아직 과학적으로 더 많은 발견이 필요하다. 카오스와 창발성은 직관적으로 설득력 있는 그림을 그려주지만 의식의 발생에 대한 가설 수준이다. 사폴스키는 이 세 이론을 모두 논리적으로 반박하지만, 그 반박 역시 결국 같은 수준의 가설 위에 서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자유의지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