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자의 교육-피터 틸

자유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피터 틸은 <자유주의자의 교육>이라는 에세이를 자유주의자들이 주 구독자인 Cato Unbound에 게재한 적이 있다. 파트리 프리드만이 메인 에세이를, 제이슨 소렌스, 피터 틸, 브라이언 도허티가 각각 응답 에세이를 썼다. 그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알게 해주는 에세이다.


에세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1. 파트리 프리드만 (메인 에세이) 시스테딩 인스티튜트 대표: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교육과 옹호 활동만으로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편향에 빠져 있다, 대신 자유주의적 공동체를 처음부터 새로 구축하는 실증 프로젝트에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 공해상에 인공 부유 플랫폼을 만들어 거기서 새로운 국가나 공동체를 세우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2. 제이슨 소렌스 (응답) 프리 스테이트 프로젝트 창립자: 뉴햄프셔를 자유지상주의적으로 바꾸자는 운동을 이끌던 사람. 구조적 변화가 중요하고, 이념보다 인센티브가 정부 형태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3. 피터 틸(응답): 아래에 에세이 전문 참조.


4. 브라이언 도허티(응답)리즌 매거진 편집장: 시스테딩에 가장 관심 있는 사람들조차 실제로 그곳에 살겠다는 확고한 의지는 상당히 박약하다. 결국 folk activism을 무시하면 안된다라고 균형잡힌 입장 내세움.


피터 틸은 이 글을 2009년 4월, 즉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 썼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절정을 지나고 있었고, 오바마 행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을 밀어붙이던 시기였다. 자유시장을 신봉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최악의 순간이었다. 시장 실패의 책임이 규제 완화에 돌아오면서 자유지상주의 담론 자체가 수세에 몰렸다.


당시 틸은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로 실리콘밸리에서 입지를 굳힌 상태였다. 그리고 이 글은 그가 후원하던 파트리 프리드만의 "시스테딩 인스티튜트(Seasteading Institute)" — 공해상에 자치적인 부유 도시를 건설하자는 프로젝트 — 를 지지하는 맥락에서 쓰였다. 글 말미의 "파트리 프리드만의 비범한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파트리 프리드만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손자이기도 하다.


틸은 아래 글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고 썼다. 냉전 내내 미국이 내세운 논리가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였고, 자유와 민주주의는 거의 동의어처럼 쓰였다. 틸은 그 등호를 지워버린다.


그런데 이는 고대 아테네 때부터 반복된 논쟁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타락한다고 했다.


하지만 틸의 버전이 특히 불편한 이유는 논리의 종착점이 결국 "민주주의를 우회하자" 이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사이버 공간, 우주, 바다 위 도시인데 — 이것들은 모두 기존 국가와 민주적 통제 바깥에 있는 공간이다. 소수의 기술 엘리트가 국민국가를 대체하는 구조를 꿈꾸는 것으로도 읽힌다.


틸은 글에서 기술 유토피아주의를 비판하며 기술을 수단으로는 보지만 주체로는 보지 말라고 경고한다(케빈 켈리 저격).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밀어붙이지 않으면 기술도 정치에 포획된다는 현실주의적 인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글 말미의 "단 한 명의 인물"이라는 표현으로 이어진다. 기술 낙관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자신 같은 기술 엘리트의 능동적 역할을 촉구한다. "정치판은 졌다, 기술로 판을 바꾸자"는 전략 전환을 선언하고 있는 것.


2009년엔 그냥 독특한 억만장자의 이상한 에세이 정도였는데, 이후 틸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실리콘밸리의 반민주주의적 경향이 가시화되면서 이 글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피터 틸은 1967년생이니까 2009년에 만 41세다. 그런데 글은 약간 중2병 냄새가 난다. 41살 억만장자가 "민주주의는 틀렸고, 우리는 바다 위 도시나 우주로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사춘기 철학 노트 같은 결론을 억만장자의 언어와 자본으로 포장한 것처럼 들린다.


다만 그게 단순한 허세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더 무섭다. 실제로 시스테딩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고, 팔란티어로 국가 감시 인프라를 만들었고, JD 밴스를 정계에 밀어 넣었고, 트럼프 1기와 2기 모두 배후에 있었다. 2009년 에세이가 지금 보면 거의 실행 계획서처럼 읽히는 이유다. 정작 시스테딩 자체는 실패했지만 틸의 에너지가 이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금 피터 틸의 사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어쩌면 그가 미국의 다른 기술엘리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혼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이다. 일단 그의 생각을 더 알아보자.


아래의 2009년 에세이는 "나는 몰수적 과세, 전체주의적 집단주의, 그리고 모든 개인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이데올로기에 반대한다"로 시작한다. 세 개의 등치가 이상하지 않은가?


피터 틸은 실제로 젊은 피를 수혈해서 노화를 늦추려는 트랜스휴머니즘 프로젝트에 투자했고, 수명 연장 연구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특이점’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올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매일 수백 알의 영양제를 먹으면서 몸을 유지하려 한다.


둘이 비슷한 불안을 갖고 있다. 특이점이 영원한 삶과 유한한 삶을 가를 것이라는 믿음, 그렇기 때문에 자기 생전에 특이점이 와야 한다는 절박함. 그 절박함이 "민주주의 같은 느린 시스템은 사치"라는 감정적 반발로 이어진다. 사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별 의미 없다. 동시에 우주적 관점에서 한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아무 의미없다. 본인이 우주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닌 한 그렇다.


여기서 떠오르는 인물이 피터 웨이랜드다. 피터 웨이랜드: 억만장자, 휴머노이드를 만든 창조자, 근데 죽음이 두려워서 창조주를 찾아 우주 끝까지 가는. "나는 더 살고 싶다"는 게 전부인데 그걸 인류의 위대한 탐험으로 포장한다.


리들리 스콧이 피터 웨이랜드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실리콘밸리의 흐름을 의식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캐릭터는 피터 틸을 떠올린다.


픽션이 현실을 앞서 포착했다면, 지금 미국의 엘리트들이 말하지 않고 있는 비밀은 이제 곧 특이점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 아닐까? 피터 틸이 기술의 진보가 너무 느리다고 불평하는 것은 생전에 특이점을 맞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특이점과 함께 생명을 연장하고 이 지구의 지적 존재가 어디까지 발전해 가는지, 우주의 비밀을 어디까지 풀어가는지를 모두 다 경험하고 싶다는 욕망. 이런 스케일의 욕망 앞에서 그리고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천문학적 자금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머지 80억 인구의 동의가 과연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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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책<호모데우스>에서 구글 같은 기업이 죽음을 정복하려 노력하겠지만( 구글은 "건강, 웰빙, 장수"문제를 해결하는 생명공학회사 칼리코를 13년에 설립했다), 적어도 지금의 세대(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 등)가 혜택을 입을 만큼 기술 발전이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한 인터뷰에서 "세르게이 브린이 내 책(호모 데우스)을 읽다가 28페이지쯤에서 '잠깐, 여기 내가 죽는다고 나와 있잖아!'라며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농담 섞인 일화를 전했다. 이것은 실리콘밸리의 많은 엘리트들에게 농담이 아니었던 것 같다.



The Education of a Libertarian


피터 틸 • 2009년 4월 13일


나는 10대 시절의 신념에 여전히 헌신한다. 최고선의 전제 조건으로서 진정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신념이다. 나는 몰수적 과세, 전체주의적 집단주의, 그리고 모든 개인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이데올로기에 반대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스스로를 여전히 "자유지상주의자"라 부른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지난 20년간 나는 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사유의 발전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오늘날 모든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직면한 과제들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1980년대 후반 스탠퍼드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학부생으로서, 나는 자연스럽게 토론의 주고받음과 정치적 수단을 통해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에 이끌렸다. 나는 학내에 만연한 정통 이념에 도전하기 위해 학생 신문을 창간했다. 몇 가지 제한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는데, 특히 대학이 도입한 언론 규제를 철폐시킨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 그 모든 노력에 비해 우리가 이룬 것은 많지 않았다. 상당 부분이 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의 참호전처럼 느껴졌다. 막대한 희생이 있었지만 논쟁의 중심을 이동시키지는 못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주로 같은 편에게 설교하고 있었다 — 비록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평생 계속 노래하게 만드는 중요한 부수 효과를 낳기는 했지만.


1990년대 맨해튼에서 젊은 변호사이자 트레이더로 일하면서, 나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대학 졸업 후 환멸을 느끼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너무 광대해 보였다. 무심한 우주에 맞서 싸우는 대신, 내 주변의 더 현명한 동료들은 작은 정원을 가꾸는 것으로 물러섰다. 지능이 높을수록 자유시장 정치에 대해 더 비관적이 되었다 — 자본주의는 대중에게 그다지 인기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똑똑한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이 비관주의는 영웅적인 음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가장 똑똑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실정법에 대한 집착이 덜했고, 술을 넘어 그 너머로 도피했다. (마약으로 도피했다는 의미)


2009년 현재로 돌아오면, 자유지상주의적 정치의 전망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과도한 부채와 레버리지로 야기된 금융위기다. 온갖 도덕적 해이에 보험을 제공해 온 정부가 이를 부추겼고, 그 위기에 대한 대응이 훨씬 더 많은 부채와 레버리지, 그리고 훨씬 더 커진 정부를 수반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자유시장을 옹호해 온 이들은 허리케인을 향해 목청껏 외쳐온 셈이다. 최근 몇 달간의 사건들은 정치 지향적인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이 부쉈다. 2009년의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우리의 교육은 더 넓은 대중의 교육이 어리석은 시도가 되었다는 인식으로 끝을 맺는다.


실제로 더 비관적으로 보자면, 흐름은 오랫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다시 금융으로 돌아가면, 미국에서 대규모 정부 개입 없이 끝난 마지막 경제 불황은 1920~21년의 붕괴였다. 그것은 급격했지만 짧았으며, 진정한 호황을 이끌 수 있는 슘페터식 "창조적 파괴"를 수반했다. 뒤따른 10년 — 광란의 20년대 — 은 너무도 강렬해서 역사가들마저 그 시작을 촉발한 불황을 잊어버렸다. 1920년대는 미국 역사에서 정치에 대해 진정으로 낙관적일 수 있었던 마지막 10년이었다. 1920년 이후, 복지 수혜자의 대폭 증가와 여성 참정권의 확대 —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악명 높을 정도로 불리한 두 유권자 집단 — 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형용모순으로 만들어 버렸다. (1)


이러한 현실 앞에서, 지평선을 정치 세계에만 한정한다면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정치가 우리 세계의 가능한 모든 미래를 포괄한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에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과제는 정치의 모든 형태로부터의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 전체주의와 근본주의의 재앙으로부터, 소위 "사회민주주의"를 이끄는 무사유적 민중 지배로부터.


그렇다면 핵심 질문은 수단의 문제가 된다. 어떻게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치를 넘어 탈출할 것인가. 우리 세상에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장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탈출의 방식은 어떤 새롭고 아직 시도되지 않은 과정을 수반해야 하며, 그 과정이 우리를 어떤 미지의 땅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자유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에 노력을 집중해 왔다. 그러한 세 가지 기술적 프런티어에 대해 간략히 말하고자 한다.


(1) 사이버 공간. 기업가이자 투자자로서, 나는 인터넷에 노력을 집중해 왔다. 1990년대 후반, 페이팔의 창립 비전은 모든 정부의 통제와 가치 희석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세계 화폐의 창조, 즉 통화 주권의 종식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2000년대에는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역사적 민족국가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반론과 새로운 공동체 형성 방식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인터넷 기업을 창업함으로써, 기업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인터넷의 희망은 이 새로운 세계들이 기존의 사회적·정치적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강제할 것이라는 데 있다. 인터넷의 한계는 이 새로운 세계들이 가상이며, 탈출이 실제보다 상상에 가까울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 질문은 앞으로 수년이 지나야 답이 나올 것이다.


(2) 우주 공간. 드넓은 우주는 무한한 프런티어를 의미하기 때문에, 세계 정치로부터의 탈출에 있어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후의 프런티어에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있다. 로켓 기술은 1960년대 이후 미미한 발전에 그쳤고, 우주는 여전히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멀리 있다. 우주 공간의 상업화를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하지만, 수반되는 시간적 지평에 대해서도 현실적이어야 한다. 하인라인 식의 고전 SF 속 자유지상주의적 미래는 21세기 후반 이전에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3) 바다 정착. 사이버 공간과 우주 공간 사이에는 바다를 개척하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내 생각에, 그곳에 사람이 살 것인지의 문제(답: 충분히 살 것이다)는 바다 정착 기술이 임박해 있는지의 문제에 비해 부차적이다. 내가 보기에, 관련 기술은 인터넷보다 불확실하지만 우주 여행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단계에 도달했거나 곧 그럴 수 있는 지점에 다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현실적인 도전이며,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이니셔티브를 열렬히 지지한다.


기술의 미래는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기술 유토피아주의의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 기술이 자체적인 추동력이나 의지를 지니며, 더 자유로운 미래를 보장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 세계에서 정치의 끔찍한 궤적을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 말이다. (기술 유토피아주의란 "기술은 필연적으로 발전하고, 그 발전은 자동으로 인류를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든다"는 믿음이다.1990~2000년대 와이어드(Wired) 잡지 류의 사이버 낙관주의자들이다. 케빈 켈리 같은 사람들이 "기술은 자체적인 의지를 가지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했고, 이런 시각이 실리콘밸리의 지배적 분위기였다.)


더 나은 비유는 우리가 정치와 기술 사이의 치명적인 경주 속에 있다는 것이다. 미래는 훨씬 더 나아지거나 훨씬 더 나빠질 것이지만, 미래의 문제는 여전히 매우 열려 있다. 이 경주가 얼마나 박빙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슬아슬할 정도로 가까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세계와 달리, 기술의 세계에서는 개인의 선택이 여전히 가장 중요할 수 있다. 우리 세계의 운명은 자본주의를 위한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자유의 기계를 구축하거나 전파하는 단 한 명의 인물에게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우리 모두는 파트리 프리드만의 비범한 실험에 최선의 결과가 함께하기를 바라야 한다.


(1)에 대한 논란이 일자 다시 댓글로 입장을 설명했다.

편집자 주: 틸은 참정권 문제에 대해 여기서 더 상술한 바 있다. 그 발언을 아래에도 옮긴다.


나는 정치의 한계에 관한 에세이가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했고, 실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강렬한 반응은 사이버 공간, 바다 정착, 또는 자유지상주의 정치가 아니라, 흔히 "성별 격차"라고 불리는 투표 패턴에 관한 평범한 통계적 관찰을 향해 있었다.


여성의 투표권이 박탈되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정치적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어떤 계층도 참정권을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투표가 상황을 개선할 것이라는 희망은 거의 갖지 않는다.


미국에서 투표권은 위협받고 있지 않지만, 다른 많은 권리들은 위협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주 순한 마약을 사용해도 투옥되고, 우리 자신의 정부에 의해 고문당하며, 무모한 금융 기업들을 구제하도록 강요받는다.


나는 정치가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자유지상주의자인 이유다. 정치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관계를 파괴하며, 시각을 양극화한다. 세상은 우리 대 그들, 선한 사람들 대 반대편이 된다. 정치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동의 없이 간섭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과거에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정치 영역에서 거의 진전을 이루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일부는 유토피아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평화로운 프로젝트들로 돌릴 것을 지지한다.


피터 틸이 여성의 참정권에 한 말"1920년 이후, 복지 수혜자의 대폭 증가와 여성 참정권의 확대 —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악명 높을 정도로 불리한 두 유권자 집단 — 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형용모순으로 만들어 버렸다." 는 여성 참정권을 반대하거나 하는 그런 층위가 아니다. 그는 여성들이 복지 정책에 대해 더 옹호적이라는 현상만 주목했고 그래서 자유시장에 불리하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한다. 그 원인은 보지 않는다.

여성이 복지를 더 지지하는 건 여성이 돌봄 노동, 비정규직, 임금 격차, 육아 부담을 더 많이 짊어지는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다. 즉 복지 선호는 본질적 성향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의 반영이다. 이런 것이 피터 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더 빠른 진보이다. 가장 앞에 선 사람들을 더 빨리 달리게 내버려 두는 것이 세상을 더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옳다. 뒤처진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그의 관심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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