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너머의 질문,
2026년 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수뇌부를 겨냥한 '에픽 퓨리' 작전을 감행했다. 전 세계는 즉각 3차 대전 공포에 휩싸였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 유가 폭등, 종말론적 예측들이 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공포가 걷히고 나면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왜 지금인가. 미국은 무엇을 원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다. 지금 국제 정치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몇 가지 해석이 경합하고 있다. 어느 하나가 완전히 맞고 나머지가 틀린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설명이 동시에 부분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설명: 핵 비확산
가장 공식적이고 표면적인 설명부터 시작하자. 미국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이란의 핵 개발이었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수준이 핵무기 제조 가능한 임계점에 근접했고, 외교적 수단이 소진된 상황에서 군사적 선택지를 택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틀리지 않는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실제로 진전되어 왔고, 국제사회의 우려도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왜 하필 지금인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란의 핵 개발은 수십 년째 진행 중이었고, 미국은 그동안 수차례 군사적 선택지를 검토하면서도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핵 위협은 이번 공격의 필요조건일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두 번째 설명: 동맹 방어와 신뢰 회복
두 번째 설명은 이스라엘이라는 변수를 중심에 놓는다.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로 이어지는 이란의 프록시 네트워크는 수년간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위협해왔다. 미국이 이 상황을 방치할 경우, 동맹을 지키는 능력과 의지 자체가 의심받게 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동맹 방어라는 논리만으로는 왜 이스라엘 방어를 넘어 이란 수뇌부까지 직접 타격하는 수위로 갔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방어적 목적이라면 더 제한적인 군사 행동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세 번째 설명: 방어적 경제 관리
세 번째 설명은 경제에서 출발한다.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었다. 글로벌 상선들이 수에즈 운하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기 시작하면서, 물류 비용이 폭등하고 공급망 전체가 흔들렸다. 이 충격은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직결되었다. WSJ을 비롯한 서구 주류 언론은 이 맥락에서 에픽 퓨리 작전을 읽는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경제적 피해가 군사적 행동의 실질적 트리거였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타이밍을 가장 잘 설명한다. 그러나 경제적 피해 관리가 목적이었다면, 굳이 이란 수뇌부를 직접 타격하는 고강도 작전이 필요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후티를 억제하는 것과 이란 지도부를 붕괴시키는 것은 수위가 다르다.
네 번째 설명: 인프라 전쟁과 IMEEC
네 번째 설명은 유튜버 타일러가 제시한 것으로, 이번 공격을 인프라 전쟁으로 읽는 시각이다. 논리의 핵심은 이렇다. 인도와 유럽이 잇따라 대형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미국이 중국에 고율 관세를 때리는 흐름은 중국을 우회하는 새로운 세계 무역 체계의 구축을 위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2023년 G7에서 제안한 IMEEC, 즉 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은 이 계획의 핵심이다. 인도에서 출발한 화물이 UAE와 사우디를 거쳐 이스라엘 항구까지 철도로 직행한 뒤 유럽으로 들어가는 이 회랑이 완성되면, 중국의 일대일로를 완전히 우회하는 차이나 패싱이 가능해진다. 이 시각에서 이란은 단순한 적국이 아니라 IMEEC 경로의 한복판에 자리한 장애물이다.
이 설명은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IMEEC는 아직 종이 위의 구상이다. 가자 전쟁 이후 아랍 민심이 돌아서면서 착공조차 불투명해졌고, 전쟁은 오히려 투자 매력을 떨어뜨려 IMEEC의 전제조건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해에 가깝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바이든의 다자 협정을 "미국 돈만 쓰는 멍청한 짓"이라고 비판해왔다. 바이든의 IMEEC를 위해 트럼프가 총대를 멘다는 설정은 두 행정부 사이의 극심한 정책 단절을 무시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설명: 트럼프 변수
다섯 번째 설명은 구조가 아니라 인물에 주목한다. 트럼프는 장기 전략 문서보다 직관과 협상 본능이 앞서고, 강경한 행동이 외교 테이블에서 레버리지가 된다는 계산이 작동한다. 이란 공격의 타이밍이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과 겹친다는 것, 베네수엘라·멕시코 등에 대한 강경 행동들이 비슷한 시기에 집중되었다는 것은 이 시각을 뒷받침한다. 이란 공격은 중동 정책인 동시에 중국에 보내는 신호였을 수 있다.
이 설명은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 패턴과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성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면, 구조적 압력과 제도적 맥락이 지워진다는 약점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더 불편한 질문이 시작된다.
설명들이 가리키는 것
다섯 가지 설명을 나란히 놓고 보자. 이것들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핵 위협이 실재했고, 동맹 신뢰도 문제가 있었으며, 홍해 마비가 경제적 압박을 가했고, 중국 견제라는 구조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었으며, 트럼프의 협상 본능이 타이밍을 결정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같은 방향을 가리켰을 때 작전이 실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미국은 단일하고 일관된 장기 전략을 갖고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가장 두려운 것은 사실 미국이 이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치밀하게 설계된 전략이라면 예측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행위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와 즉흥적 판단으로 움직이면서 결과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수렴한 것이라면, 다음 수는 훨씬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설계도가 실행되는 장면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같은 판 위에서 각자의 수를 두다 보니 어떤 패턴이 만들어지고 있는 장면에 가깝다. 바둑판은 맞다. 하지만 그 판을 내려다보며 전체를 설계하는 단일한 전략가는 없다.
이렇게 되면 예측할 수가 없고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 피곤하다.
그런데 여기서 요즘 왜 이렇게 시끄러운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생각해보자.
이게 정말 다 트럼프 때문인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트럼프라는 한 사람의 등장으로 설명되는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는 훨씬 더 큰 변화의 증상에 불과한 것인가.
많은 정치학자들은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트럼프 개인의 돌출 행동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데 동의한다.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현대의 민주주의는 쿠데타가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서서히 규범을 파괴하며 붕괴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가가 보조금과 규제를 통해 기업의 충성심을 요구하는 현상을 '국가에 의한 시장 포섭(State capture of business)'으로 규정하며, 이것이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경고한다.
정부의 기조에 협조하는 기업에게는 규제 완화와 보조금을, 반대하는 기업에게는 세무 조사와 관세 부과로 응징하는 구조. 충성심이 시장 논리를 대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논리는 국내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제 관계에서도 보편적 규칙 대신 거래가 기준이 되면서,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미국의 요구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따라 관세 폭탄이나 보조금 혜택이 결정되는 예측 불가능한 질서가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트럼프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의 IRA와 반도체법은 사실상 국가 주도 산업 정책이었고, 대중국 강경 기조는 행정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방법론의 차이는 있었다. 트럼프는 거칠고 빠르게 밀어붙이고, 민주당은 동맹 협력의 틀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방향 자체, 즉 자국 우선주의와 국가 주도 경제라는 큰 흐름은 이미 양당 엘리트 모두가 공유하는 시대적 합의가 되어버렸다. 트럼프는 이 흐름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가장 노골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 거대한 변화의 원인이 아니다. 그는 단지 기존 시스템의 균열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낸 '메신저'에 가깝다. 설령 트럼프가 사라지더라도 미국이 과거의 '글로벌 자유무역 전도사'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치와 기술이 같은 논리로 수렴하고 있다
AI는 승자독식의 논리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한다.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이 집중된 곳이 AI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그 우위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진다. 국가 단위로 보면, AI 패권을 선점한 나라가 경제와 군사와 정보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앞서나가는 구조다. 이것이 왜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사활을 걸고 통제하려 하는지, 왜 중국이 AI 굴기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지를 설명한다.
정치는 자국 우선주의로 수렴하고, 기술은 AI 패권 경쟁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이 두 흐름은 사실 같은 논리 위에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는 것. 이것이 지금 이 거대한 전환점이 만들어지고 있는 동력이자 이유다.
이 경쟁의 끝으로 가는 어느 지점에서 우리 모두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트럼프는 원하는 것을 뻔뻔하게 요구하는 게 주저함이 없지만 그를 보며 미국 엘리트 지배층의 진정한 지향점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의 거친 언어와 돌출 행동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가리는 노이즈가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가장 솔직해 보이는 이는 논란의 중심에 선 피터 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