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by 유정

웃음 속에 앉아있었지만, 마음은 끝내 자리를 찾지 못하던 날이 있었다.


언제나 사람들 틈에 섞이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었다.

술자리를 일찍 일어나려 치면 사람들은 내 팔을 잡아끌었고 나의 일정 확정이 어느 그룹이 모이는 날짜로 정해지기도 했다.

늘 농담이 터지고 대화가 물결처럼 오갔지만, 내 존재는 어딘가 비껴 나있었다.


기이하게 투명해져 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정신은 몸을 수 번 들어왔다 나가면서 아무도 모를 텅 빈 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부감으로 쳐다보곤 했다.

누구는 평생에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다는데.


말을 하고, 웃고, 끄덕이는 그 모든 행동이 마치 잘 조율된 기계의 움직임 같았다.

내 표정을 내가 조작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감각.

마치 잘못하다가는 핸드폰 버튼음 같은 기계음이 들릴 듯해 더욱 정신을 세워 다시 오고 가는 농담에 인간의 목소리를 덮었다.



영화를 못 보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사회의 초년생이 될 때까지도 나는 영화를 볼 수 없었다. 대체 그 강렬한 희로애락을 이 말랑한 신체기관 어디로 받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백 이십 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영화관에 앉아있노라면, 희의 가장 희를, 로의 가장 로를, 애의 가장 애를, 락의 가장 락들이 나에겐 잘 벼려진 칼날들이었다.


이렇게 아픈 고통을 사람들은 왜 돈을 주고 보는 걸까.

나를 이해해 줄 이를 찾아 이런 이유를 말하곤 하면 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공통의 대화주제를 하나 상실한 것에 더 아쉬움을 보이곤 했다.

그리곤 대체로 그 후엔 그들과 나 사이 하나의 얇은 장막이 아래부터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나는 이내 영화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타인과 다르다는 감각이 인간을 끝없이 외롭게 했다.

더 깊이, 더 조용하게, 더 정확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화를 찾아갔으나 내가 내뱉는 말들은 저 대뇌피질 아주 바깥의 일부분을 사용해 들어오는 탁구공에 그저 반사적으로 라켓을 튀길 뿐이었다.

대화가 아닌 스포츠였기에 집에 돌아와서 몸살이 나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나를 철저히 분리시킨 채 십여 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 어른 구실을 해야 하는 인간 한 명이 너덜거린 채

모든 대화를 끊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맞다. 썩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