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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Jan 24. 2023

16. 자유여행자에게 눈 오는 제주는 또 다른 낭만

우당탕탕 무계획 제주여행(16) 한파 및 폭설주의보가 내려진 제주

어제는 거의 밤새도록 연구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쌓는다고 논문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늦은 새벽에 겨우 기절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제주여행을 온 가족인 것 같았다. 얼마나 머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제주에 온 아이는 잔뜩 신난 것 같았다. 건물 안에서 눈이 온다며 즐거워하는 소리가 밤을 꼬박 새운 사람의 잠을 다 깨웠을 정도니까.


사실 너무 피곤하고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라 짜증부터 나긴 했다. 그렇지만 제주에서 보는 눈은 나나 그 아이에게도 처음일 테니(생각해 보니 그 아이는 처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결국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제주는 온통 설국이었다.

사실 오후 네시가 넘어서 찍은 사진이다. 아침이나 이때나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역시 바람 많은 섬답게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심한 바람이 불었다. 요 며칠 밖을 나가지 않고 칩거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선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오늘과 내일이 한파와 폭설로 비행기 편, 배편이 모두 결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난 설연휴 동안 논문에만 매진할 생각이어서 크게 관련 없는 이슈였지만 육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걱정스러운 이야기였나 보다.


따뜻한 방에서 내리고 있는 눈을 구경하자니 나에겐 낭만이었다. 생업을 이어나가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여행자, 더군다나 그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여행자였기에 이 모든 풍경은 나에게 낭만으로 다가왔다. 아마 직장에 다니고 있었던 작년 이맘때쯤이라면 이런 한파에 출퇴근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을 텐데 말이다. 역시 내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밥을 차려 먹었다. 정말 먹고 자고 연구하는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오늘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닭곰탕을 오픈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닭고기가 너무 퍽퍽살이라는 것 빼면 재구매의사는 충분했다.

역시 석박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식품인데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비비고 만세다. 아, 이마트 반찬코너도 만세. 내가 직접 한 건 밥밖에 없다. 그마저도 전기밥솥이 해줬다.


그렇게 밥을 든든하게 먹고 나니 이제는 논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까지는 이론적 배경을 다 끝내고 싶었는데 막상 집중해서 스퍼트를 내고 있자니 오늘이면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한 시간 전쯤, 그러니까 밤 10시 반쯤 이론적 배경의 모든 파트를 마무리 지었다. 사실 이 파트를 더 건드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역시 연구는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새롭게 재구성하고 추가하는 과정에서 연구의 근본적인 논리성을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주에 온 뒤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진행했는데 오늘에서야 한 고비 넘길 수 있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일단 이 정도에서 한 번 마무리하고 지도교수님과 의견을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것 같아서 너무 지치고 어려운 순간의 연속을 지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찌어찌 하다보면 뭐라도 나오긴 하는구나 싶다. 내 특유의 추진력을 믿고 연구자로서 좀 더 정진해보고자 한다. 이제 계획요정님과 담소타임을 좀 갖고 자러 가야지. 내일은 또 내일의 내가 열심히 살아낼 테니 나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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