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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Feb 03. 2023

25. 성산일출봉, 수마포해안, 빽다방, 모자심

우당탕탕 무계획 제주여행(25) 당신과 나의 마지막 버스 (230202)

오늘은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가 요정님과의 통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지난달 초에 요정님이 다녀왔던 성산을 난 아직 안 다녀왔다는 걸 생각해 냈다. 그래서 무작정 성산을 가보자 생각했다. 오전에 예약해 둔 빨래가 다 끝날 때쯤 뭉그적대며 일어나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성산행 버스를 타러 나갔다.


숙소에서는 201번 버스를 타야 성산에 갈 수 있는데 이 버스는 성산을 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시간표 확인이 필수였다.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버스 한 대를 보내야 성산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대략 20분쯤 남았는데 뭘 할까 하다가 옆에 있는 마트 한 바퀴를 돌았다. 평소에도 마트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보는 재미도 있고 내가 일반인의 손이었다면(...)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 재료를 구경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그렇게 한 바퀴 둘러보고 물 한 병을 사니(마트에선 물 한 병에 360원이다. 편의점은 대체 얼마나 남기는 걸까?) 금세 버스 출발시간이 되었다.


버스는 성산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기사님께서는 조금 과격한 운전과 비속어를(...) 쓰시긴 했지만 내가 운전하는 상황이었어도 노답일 것 같아서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그렇게 1시간 넘게 달리니 성산일출봉 입구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선 성산일출봉을 보러 왔으니 지도를 보며 움직였는데 우연히 접짝뼈국집을 봤다. 뼈국은 제주음식인 걸로 아는데 이번에 와선 한 번도 못 먹어봤다. 자연스럽게 식사는 여기서 해야겠다 정하고 다시 성산일출봉을 향했다.


그 사이에 길을 헤매었지만(...) 무사히 성산일출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올라볼까도 했지만 요 근래 계속 돌길을 걸은 탓에 컨디션 떨어질 걸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성산일출봉과의 첫 만남. 꽤나 컸짐난 한편으로는 귀여운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성산일출봉 주변을 서상이다 수마포해안을 걸어보기로 했다. 수마포해안은 모래가 까맣고 부드러운 게 특징이었다. 그리고 날이 좋아서 그런지 파도가 잔잔했다. 마치 ASMR을 틀어두는 느낌이었다. 바다 저 끝으로 나아가면 장판 깔아 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질 정도로 잔잔한 바다였다. 그리고 유난히 갈매기들이 많이 보였는데 모래사장에 찍힌 갈매기들의 발자국도 귀여웠다. 

잔잔했던 수마포해변, 그리고 귀여운 갈매기들의 발자국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걷는 게 쉽진 않았지만 머릿속을 비우고 걷자니 돌길이 보였다. 여기 있던 돌들은 동글동글한 현무암들이 많았고 이끼가 끼어 있었다. 바다에 이끼가 낄 수 있나 싶은 생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끼가 아니라 미역과 같은 해초류였다. 

미역이 잔뜩 끼어있었던 수마포해안의 돌들. 자세히보면 동글동글한 돌들이 꽤 보인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돌들을 무뎌지게 했을까.


전날과는 달리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어쩌면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이라 더 세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다. 수마포해안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커피 한 잔 하면서 몸을 녹이기로 했다. 성산일출봉 주변에도 카페는 많았지만 사람들도 많았다. 평일인데도 다들 휴가 쓰고 놀러 왔다보다 싶었다. 그래서 겨우 빈자리를 찾은 빽다방에 들어갔다. 사실 관광지 개인카페는 커피 맛도 별로인데 값만 비싼 경우도 많은데 차라리 프랜차이즈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핸드폰 충전을 하려는데... 충전기를 안 가져왔다. 그 와중에 보조배터리는 챙겼다는 게 함정.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특히 집엔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나는 엄청난 길치라 초행길에선 지도 없이 어디도 갈 수 없는 사람이라 더욱 걱정스러웠다. 그렇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이패드를 챙겨 온 덕분에 와이파이로 카톡이나 지도는 이용할 수 있었다. 오늘 종이책 가져왔더라면 정말 큰일 났을 뻔했다. 카페에선 잠깐 머무르는 동안 핸드폰 충전을 부탁드렸고 커피를 마시자마자 밥을 먹으러 이동했다.

이 커피샷을 찍을 때만 하더라도 나에게 닥칠 불행이 무엇일지 예상하지 못했었다. 길치에게 스마트폰 방전은 치명적이다.


밥집으로 점찍어둔 곳은 빽다방에서 도보 5분도 안 걸리는 곳이었다. 아까 눈여겨본 곳으로 이동했는데 그 와중에도 길 헤매어서 아이패드로 더듬더듬 길을 확인하며 가니 도착할 수 있었다. 접짝뼈국은 대체 뭘까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현수막으로 자세한 설명도 확인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MBTI EEEE로 추정되는 사장님께서 온갖 썰을 다 풀어주신 덕분에 뼈국이 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여행을 왔고 지나가다 들렀다고 말씀드리니 여길 온 건 복이 많은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용머리해안에서도 그렇고 난 정말 복이 많은가 보다.


그렇지만 혼밥 하러 온 사람 중에선 그냥 조용히 밥 먹고 싶은 사람도 있는데 어떤 성향의 손님이 방문하냐에 따라 가게에 대한 평이 많이 갈릴 것 같았다. 그 점을 제외하고 맛만 생각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갈빗대와 무가 들어가서 그런지 국물이 시원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모자심 접짝뼈국. 안에 갈빗대와 무, 대추 등 건강한 재료들이 많이 들어있었고 국물도 시원했다.


밥을 다 먹고 버스시간을 확인해 보니 약 10분 뒤에 버스가 도착한다고 했다. 바로 나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결제를 하고 곧 도착하는 버스를 탔다. 배터리를 카페에서 잠깐 충전하긴 했지만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핸드폰은 못 쓰겠다 생각하니 조금 아쉬워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주버스는 와이파이가 된다는 걸 기억해 냈다. 후다닥 아이패드를 켜서 와이파이를 연결했더니 음악도, 연락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제주버스 만만세다. 더군다나 최애 자리도 금방 비워져서 중간에 자리도 옮길 수 있었다. 이번 버스여행이 찐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제주의 풍경을 눈으로 많이 담아두고 싶었다.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제주의 해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고 이 날 따라 다양한 비지엠들이 제주의 풍경과 잘 어울렸다. 특히 내 플리에 있었던 십센치의 그라데이션은 하늘이 노을에 조금씩 물들어가던 풍경에 찰떡이었다. 이 외에도 라디오에서 나오던 다이나믹 듀오의 어머니의 된장국도 듣고 있자니 집 생각도 나면서 일출을 감상했다. 


버스에서 보는 제주의 일출은 황홀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여행을 마무리하고 내려서 마트에 잠깐 들렀다. 출발 전 눈여겨본 고기도 한 팩 샀고 주말에 제주에서 만날 요정님이 좋아하는 천혜향도 한 묶음 샀다. 아, 곰표 캔맥주도 한 캔 추가했다. 이제 버스여행은 정말 끝이니 버스로도 여기저기 잘 다녀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선물 같은 의미로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었다. 그렇게 가방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 숙소로 돌아왔다. 금요일은 집에서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서 하루 쉬어가고 주말부터 요정님과 자동차 여행을 다녀보려 한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제주여행, 마지막까지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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