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일까요 코인일까요(둘 다는 안 될까요)
학교를 다닐 적에 다섯 학번 많은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가 희망하는 궁극적인 상태란 ‘돈 많은 학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이유의 첫째는 우선 돈이 많다는 것이오 둘째는 학생이라는 신분이다.
첫 번째 이유야 그 누구도 토를 달리야 없겠다만, 두 번째 이유가 갸우뚱한 분들을 위해 항변을 하자면, 우선 신분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학생이라는 신분은 무적이다. 우선 경제적으로 참 유리하다. 학생이라는 신분에 제공해주는 무료, 할인 혜택이 넘쳐난다. 애플이나 오피스 프로그램 구매에 있어서 학생이라는 지위는 그 어떤 프로모션보다 우월하다. 그다음으론 어디 가서 신분을 밝힐 때 유용하다. 나 자신은 스스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더라도 우선 누군가를 만났을 때 “학생입니다” 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에 꽤나 좋다. 일정 분야에 종사하다보면 그 분야의 사람들과만 소통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학생이라는 지위, 그리고 그 배움의 터가 제공해주는 만남의 기회들이 은근히 많다.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전공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기도 하고, 내 경계 안에선 절대 만날 수 없었던 성격, 성향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대학생 시절 유명 아티스트나 엔터테이너로 유명한 분까지 만날 수 있었으니.
학교 다닐 때 문자 그대로 돈 많은 학생의 신분을 누리고 있는 친구들이 과에 한 두 명은 있었다. 집은 강남 유명 아파트에 입고 다니는 것은 항상 명품. 차는 옵션. 사실 그때는 부러운 걸 잘 몰랐다. 내게 스타벅스란 조금 호사를 부리고 싶을 때 가는 곳인데, 그들은 스타벅스 벤티 사이즈를 매일 같이 자유롭게 마신다는 점을 제외하곤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 아무튼 다 같이 학교 주변 술집에서 술을 마셨고, 번화가를 헤매었고, 같이 난이도 높은 전공 수업에서 애를 먹었다. 어쨌든 학교라는 공간에선 학업 능력이 최우선 가치였다. (아, 술자리를 얼마나 흥겹게 할 줄 아는지도 중요한 능력 치였던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른 살이 넘은 이 나이에서야 돈 많은 학생이었던 내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을 느낀다. 퇴직금을 까먹으며 공부만 하며 살다 보니 그들이 느꼈던 윤택함이 비로소 실감이 된다. 그 나이에 너희는 젊음까지 가졌겠구나. 문득 나의 20대가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돈은 당연히 없고 비전마저 불투명했던 나날들. 그저 막연한 기대감과 희망만 있던 나날들. 남들이 이십대, 학생이라고 하면 보이던 찬사와 탄복의 감탄을 당연하다는 듯이 먹고 자라는 것만 할 줄 알던 그때.
유럽에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여행을 다닐 때 만나던 사람들 중엔 20-30대 직장인이 꽤나 많았는데, 그들의 지위와 나의 학생이라는 지위를 비교하며 은근히 우쭐해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니 문득 그때의 내가 옹졸하게 느껴진다. 그때는 20대 후반이 되면 다 늙은 줄 알았지. 20대 초반이던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지. 20대 초반이던 그때의 나는 내가 20대 후반, 30대가 되면 파리 지사로 파견 나온 ‘에밀리’처럼 화려한 곳만 누비는 직장 여성이 될 줄 알았지. 하지만 어찌 됐든 그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리고 나 또한 지금 유럽에 있을 학생들이 부럽다. 그 ‘젊음’이라는 것이 엄청난 지위라는 것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젊은이라는 사실(그 가능성의 실현 여부를 떠나서)은 아무래도, 아무래도 그 어떤 주식이나 코인보다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은 부인하기가 힘들다.
그렇다. 그냥 ‘돈 많은 학생’은 안 된다. 돈 많은 ‘젊은’ 학생이어야 모든 게 완성된다. 그것이 삼위일체다. 그리고 이 삼위일체는 몇 대가 덕을 쌓지 않는 이상 가닿기 힘든 상태이기에 더욱더 갈망하게 되는 그저 유토피아적인 상태로 남게 된다. 나와 같이 ‘돈 많은 학생’의 지위를 논하던 다섯 학번 많은 선배는 이제 ‘내 꿈은 한 달 동안 오전 반차를 매일 같이 쓰는 것’ 따위로 바뀌었지만… 아무튼 그 선배도 나도 내 자식들은, 내 손주들은, 3대가 지나서라도 돈 많은 젊은 학생의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그저 열심히 살아보자 하는 동기부여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