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싫은 이유 세 가지
제주도는 한국인들에게 보물과 같은 곳이다. 북한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제주도라고 했던 말을 곱씹어보면 새삼스럽게 제주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 또한 직장을 갖게 된 후 제주를 꽤나 찾았다. 육지보다 몇 도는 높은 더운 공기, 파란 바다와 높은 하늘, 맛있는 음식들과 이젠 힙한 가게들까지. 어쨌든 제주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조선시대 유배지에서 부모님들의 신혼 여행지로, 현재는 육지 사람들의 삶이 팍팍할 때면 훌쩍 떠날 수 있는 도피처 내지 휴식처가 되는 곳. 이에 더해 중국 자본 덕에 높아지는 집값과 땅값까지.
제주살이 초반에 자주 듣게 되는 단어 ‘육지’는 내 입에 잘 달라붙지 않는 어휘였다. 저쪽이 육지면 여긴 땅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제주도가 아닌 ‘메인랜드’를 다들 그렇게 칭하기에 나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해당 단어를 점차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젠 그 단어 이외의 표현은 찾지 못할 정도로 육지가 왜 육지이고 제주는 왜 섬인지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 제주는 육지에 살 때 느끼지 못했던 물자 조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제주도 택배는 기본 +1일과 +3000원의 배송비를 추가로 요구한다. 어이없었던 경우는 배송이 다 되고 나서 추가 배송비를 요구한 일. 그럴 줄 알았으면 제주로 시키지도 않았을 것을. 개인적인 택배만 문제면 골머리를 썩진 않았을 것이다. 일을 할 때는 문제가 훨씬 커진다. 배송비만 몇십 몇백에 이르고, 오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섬이라는 고립성은 물가 상승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회사 선배들은 제주도에서 절대 뭘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육지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몇 만 원은 더 붙는다. 심지어 제주산 귤도 서울이 더 싸다는데(?)... 나는 삼십만 원짜리 침대를 사는데 배송비만 이십만 원을 냈다. 차도 없는 제주도 초심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필라테스는 육지에서 한 달에 십만 원 꼴로 다녔지만 제주에선 그룹 필라테스가 없기에 기본 백만 원부터 회원권을 끊어야 한다. 육지처럼 한 달에 삼 만원 주고 다니던 헬스장을 찾는다면 호시절 이야기. 우리 동네는 그나마 싼 곳이 10만 원부터다.
두 번째는 관계의 단절이다. 가족들과 함께 살다가 따로 살게 된 점은 어찌 보면 잘된 일. 가족들과 매일 같이 싸우고 감정 소모를 하다가 가끔씩 보고 싶을 때만 찾아가다 보니 서로 애틋해짐과 동시에 좋은 감정만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만나는 사람과는 눈물의 장거리 연애를 진행 중이다. 2022년 크리스마스는 정말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부서 특성상 연말 업무에 치이는 와중에 서울 가는 티켓을 가슴에 품고 크리스마스만을 기다려 왔는데 제주도 폭설로 하늘은 그야말로 진눈깨비 투성이. 모든 비행기는 결항이 되고 “제주도 고립”이라는 기사가 뉴스에 연일 올랐다. 눈이 잦아든 날에도 그동안 제주를 떠나지 못한 체객 덕에 비행기는 전부 매진. 나는 그 와중에 표 하나를 구해서 쾌재를 부르며 다음날 아침에 제주를 뜰 생각에 설레하며 잠들었는데 잠들기 직전 나에게 도착한 문자. ‘해당 티켓은 서버 오류로 인해 정상 예매가 되지 않았으니 환불을 진행하라’는 내용의 청천벽력 같은 문자. 오밤중에 눈물을 쏟아내며 혼자 어찌나 서러워했는지. 결국 나의 남자친구는 다음날 서울에서 제주로 날아왔고 바로 그다음 날 떠나야 하는 일정에 24시간도 함께하지 못한 채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냈더랬다.
친구들과의 단절은 말할 것도 없다. 단체로 만나는 일정은 서울에 있어도 맞추기가 힘든데 제주에 있는 사람과 어찌 일정을 맞추랴. 게다가 나뿐만 아니라 지방이며 외국이며 나가 있는 친구들이 많아 친구들과의 만남은 거의 연례행사다. 서른 줄에 넘어가니 애인은 물론 가정을 꾸린 친구들도 늘다 보니 더욱 만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단톡방으로는 회사 씹는 이야기를 열띠게 나누지만 하지만 얼굴을 보며 함께 박장대소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은 항상 남는다.
마지막은 라이프스타일이다. 제주도 한 달 살이는 거의 열풍 수준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미디어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 하지만 사실 한 달 살기보단 한 달 여행이 더 맞지 않을까. 한 달 아니 여섯 달째 사는 사람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제주 살이는 서울보다 더욱 팍팍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 한정된 소감일 것이다. 나는 자연 속의 여유롭고 한적한 생활보다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도시에서의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는 타입이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도시에서 미우나 고우나 사람들 사는 것 구경을 즐긴다. 제주도의 밤은 가끔 너무나 조용해서 무서움을 넘어서서 답답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면 이해가 될까. 12시는 물론 새벽 3, 4시가 되어도 적막하지 않은, 언제나 환한 도시가 좋다. 이동거리도 차로 이동해야 하는 생활권보다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함이 좋다. 도심 속에 뛰어들어 이 나라에서 가장 예민하고 기민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첨단의 그 무엇들을 구경하는 일이 나를 신나게 한다.
제주도에 대한 불만을 이리저리 늘어놓은 것 같지만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 점은 제주도니 서울이니 어디니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디를 가든, 그곳에 내가 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그 이유가 자발적인 것인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곳에 당도했는지이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는 “아주 중한 죄를 지은 사람만 제주도에 보낸다”라고 적혀있다는데. 유배로 제주도에 온 사람과 현금 두둑이 들고 한 달 정도 쉬러 오는 사람과 새로운 포부를 안고 즐거운 일을 벌여보고자 온 사람 각각 제주살이를 맞이하는 마음은 각각 굉장히 다른 각도를 가질 테니까.
제주 살이를 대하는 내 마음의 각도는 아직까진 굉장히 비뚤어졌지만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를 일이긴 하다. 우선 지금의 일이 힘드니 제주가 원망스럽기만 하고, 사랑하는 이를 멀리 두고 왔으니 지금으로선 야자수가 꼴도 보기 싫다. 게다가 제주의 겨울은 나머지 계절에 비하면 더욱 쓸쓸히 느껴지기 마련이다. 마땅히 이 겨울엔 할 게 없다는 점. 다이소랑 유니클로가 우리 동네 최대의 핫플이랍니다.. 하지만 봄이 지나고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오면 부지런히 물놀이를 다녀볼 요량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