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이름
밥을 먹으러 조천읍 선흘리를 찾았다. 10첩이 나오는 흑돼지간장불고기를 솔찬히 먹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불을 피우는 주택들이 내뿜는 연기 냄새와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동네. 전봇대 아래에서 혼자 조약돌을 데구루루 굴리며 시간을 보내시던 할머니는 낯선 이의 발소리를 듣자 하던 행동을 멈추신다. 못 본 척 시선을 위로 위로 돌린다. 오래간만에 햇빛이 따사롭게 내리는 와중에 너른 운동장을 가진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댁을 연상시키는 동네에 초등학교가 있다니.
학교에 웬 비석인가 하니 초등학교를 세운 유공을 치하하는 비석이다. 비석 위의 이름들. 마을에서 조금 올라가면 4.3 관련 유적지가 나온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를 곱씹어 본다.
경건한 마음을 갖고 있던 찰나 빠알갛고 보풀이 일어난 맨투맨을 입은 남자아이가 “안녕하세요오”라고 인사를 건네온다. 예기치 못한 낯선 이들의 인사.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한 명은 초등학교 다니는 아홉 살 형, 한 명은 일곱 살 동생이다. 한 반에 16명이나 있단다. 자기는 서울에서 살다가 6살 때 이곳에 왔다고 한다. “그래? 그것 참 잘 된 일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학교 운동장이 개방되고 농구공이며 축구공이 널브러져 있어, 이걸 만져도 되나 싶어 하면서 농구공을 튕겨본다. 농구대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우리를 본 아이들이 들판에 강아지새끼들 마냥 우다다 우리에게 뛰어온다.
아홉 살 형아는 자신은 농구부라며 온갖 기술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드리블을 할 줄 알고, 2:1도 이길 수 있다는 등 조용조용 자기 자랑을 하며 재빠르게 드리블을 하는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고 귀엽던지. 기껏해야 두 살 어린 동생은 같이 놀자고 해도 입을 꾹 다물고 픽픽 뒤돌아서기 일쑤. 동생이 갖고 놀던 구슬을 잃어버리자 혼자 시무룩해하는데 형에 따르면 놔두면 알아서 풀린단다. 사방치기를 할 때는 같이하기 부끄럽지만 관심은 끌고 싶어서 사방치기 판 위에 앉아버리는 그 여린 마음이 어찌나 귀엽던지. 형도 제법 논리적이어서 이렇게 하면 나중에 같이 안 놀아줄 거라고 동생을 달랜다. 형과 동생이 입고 있는 빨간색, 초록색 옷이 어찌나 찬란하던지.
형제를 따라 같이 농구도 몇 판하고, 축구도 하고, 사방치기도 하고, 학교에 있는 동물 농장도 쫄래쫄래 따라가 구경하고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흐른다.
“우리 이제 가야 해”
“좀 더 놀면 안 돼요? 안 그럼 놀 친구가 사라지는데.”
“그래 그럼 우리 저 시계로 세 시 되면 갈게? 우리도 일이 있어서”
“주말인데 왜 일을 해요?”
“어쨌든 남은 이십 분 동안 신명나게 농구해보자.“
세 시 되기 십분 전
“우리 간다”
“아직 세 시 안 됐어요.”
진짜 세 시.
“이제 세 시다. 가야 해.”
“가기 전에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
아쉬움이 흐르는 눈으로 말한다.
나는 사랑스럽고 예쁜 마음을 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교환한다.
살면서 다른 이의 마음이 눈으로 보였던 적이 얼마나 될까.
서로의 이름이 특별한 의미를 지녔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잊고 살았던 나를 향한 타인의 진심과 이름의 진짜 의미. 오늘 이 순간만으로도 제주살이의 의미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