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시간여행
"그냥 지금부터 나이 세는 걸 까먹으면 되지."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여 앉아 나이가 들어간다며 한탄하는 엄마 목소리에 나는 대뜸 끼어들어 말했다. 당시 10살이었던 나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10년이나 살았구나...’ 하며 나이답지 않게 ‘시간이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희한한 어린이 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나이 세는 것을 잊으라’며 노인네 같은 답을 건네는 어린 딸을 귀엽다고 생각하셨을까. 아니면 어린 나는 몰랐을 다른 생각을 하셨을까.
내가 벌써, 그때의 엄마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나름 격렬하게 부딪쳐온 시간들은, 살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해석되고 다듬어져 새로운 기억으로 내 일부를 이루고 있다.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닌 것이 되어 있기도 하고, 생각 없이 지나간 일들이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지나온 시간들 안에서 치유와 회복의 흔적들을 차례차례 찾아내 지금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때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던 세월의 의미를 알아가는 중일까.
‘시간여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군산 여행은, 그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시간을 되돌려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를 겪어보지 못한 관광객들은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과 일본풍 감성을 담은 상점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걸으며, 말 그대로 잠시 그 시간의 ‘객’이 되어본다. 생각해보면 애써 길러낸 쌀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던 조선인들의 굶주림은 위장이 아니라 마음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호화로운 정원 딸린 집에 앉아 식민국의 것들을 쉽게 얻었을 일본인과는 달리 힘든 노역에 동원되었을 조선인들은 뼈가 갈리는 고통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때의 그 수많은 이야기는 볼거리 넘치는 관광지와 전시관으로 바뀌어 군산 곳곳에 남아있다. 차려입고 나들이를 나온 젊은이들이 일본식 가옥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군산 항쟁관에 전시된 고문 형틀에 손목을 끼워 넣으며 웃는 모습 같은, 묘하게 이질적인 것들이 군산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들여다볼 뿐인 우리는 조금은 잔망스러운 표정을 하고 밀크셰이크를 쪽쪽 들이키며 지나다녔다.
하지만 결국, 이겨내며 지나온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과거를 반창고로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쐬어주고 살펴왔기에, 치열했던 시간은 단단한 흉터로 남아 봄날의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담담한 말투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지우고 메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흔적들을 찾아 지금을 채워가라고. 동국사 비석에 새겨진 적국의 깊은 참회가 현재의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라는 것,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치유와 회복의 시간들을 채워가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제 강점기의 유물 이외에도, 사람들은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며 시간의 나그네가 되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 시간에 잠시 머문다. 세련미 넘치는 공간이 곳곳에 생겨나는 이 시대에 글자가 떨어져 나간 낡은 간판 사진을 연신 찍어대는 것이나, 오래된 영화 세트장을 방문하고, 옛날 빵집 앞에서 오랜 시간 줄을 서는 것은 사실 지금을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시간이 패 놓은 깊은 자국 안에서 불현듯 현재가 또렷하게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이제는 기차를 운행하지 않아 기찻길만 덩그러니 남은 경암동 기찻길 마을에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점들이 과거를 소재 삼아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쫀듸기, 아폴로 같은 소위 불량식품들이 좌판에 가득 놓여있고, 70-80년대의 장난감이나 소품들이 특유의 과거형 분위기를 만든다. ‘옛날 사람’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곳이라면, 그 시간을 겪지 못한 어린 학생들은 옛날식 교복을 빌려 입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듯한 물건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이색적인 여행 공간이 된다.
어린 시절 집집마다 두세 개씩 수호신처럼 놓여있었던 못난이 인형이 수십 개가 줄지어 앉아있는 상점을 발견했다. 우리 집에 놓여있던 인형의 표정을 찾아보면서, 그때는 다 똑같이 못나보였던 인형들이 이렇게 제각각이었나 하고 놀랐다. 어린 시절 한가닥 한가닥 찢어서 아껴가며 구워 먹었던 쫀듸기를 입이 달도록 먹으며 옛날 사람 티도 내보았다. ‘그때는...’으로 시작하는 말들이 자동으로 오갔다. 그 안에는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 담겨있었으리라. 그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찻길 옆에는 사진관이 몇 개 늘어서 있다. 그 시절 교복을 발견해 까르르 웃으며 빌려 입고 친구들과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이 보였다. 미소가 가득한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지어졌다. 그들은 푸른 과거를 추억하는 동시에 고요히 노을 지는 현재를 곱게 담아 과거의 기록으로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늘 우리는 시간의 나그네가 되어 살아가는 중이다.
나이 세는 것을 까먹으면 된다던 10살의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사는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자리’에 제대로 머물지 못해 늘 뒤늦은 발걸음을 하는 현재의 나는, 그때의 엄마처럼 가끔 한탄하며 너무 빠른 시간 탓을 한다.
※ ‘시간의 나그네’는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 살’에 나온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