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Apr 15. 2023

선생님, 저 선생님 됐어요.

그 시절의 폭력 교사에게 복수할 수 있는 건 드라마에서나 가능

선생님, 저 선생님 됐어요.


문동은이 웃으며 말했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 1화를 가볍게 클릭했다가, 밤새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고 쉽게 멈출 수 없었다. 자극적인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중 교무실에서 주인공이 담임에게 후들겨 맞는 장면이 있다. 손목시계를 푼 담임이 손을 들어 풀스윙을 날리자 주인공이 머리칼을 휘날리며 뒷걸음질 쳤다. 연이어 날아오는 손바닥에 주인공은 무릎이 꺾여 쓰러졌다. 끔찍한 장면에도 인상 한번 찡그리고 말았던 나는 이 장면에서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동은이는 나였다.


시간이 흘러 문동은은 교사가 되어 그 담임을 찾아간다. ‘선생님, 저 선생님 됐어요.’ 하며 웃는데, 늙은 담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당황한다. 복수는 담임에게도 적용된다. 담임은 결국 죽고 만다.   




교복이 어벙하게 커서 손등을 덮던 시절. 중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 된 때였다. 고작 열네 살이었다.


모 과목 시간에 번호가 불려 칠판에 나가 문제를 풀었는데, 반올림을 잘못해서 틀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눈앞이 번쩍했다. 정신없이 뺨을 맞았다. 휘청거리다 다시 균형을 잡기도 전에 다시 손이 날아왔다. 교실 구석까지 몰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수차례 맞았다. 선생님이 뭐라 뭐라 외치는 소리도 들었던 것 같다. 체벌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그냥 폭행이었다.  


쉬는 시간에 엎드려 엉엉 우는 나를 친구들이 위로해 주었다. 다들 내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공부든 뭐든 그냥 그 선생님 눈에 걸리면 안 되는 거였다. 어떤 애는 책상 위에 교과서와 펜 외의 다른 물건이 있다고 얻어맞았다. 어느 날은 한 친구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너 눈썹 다듬었지' 하더니 뺨을 때렸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아이들, 짝! 소리만 교실에 울리던 기억...


한 번은 과학실에서 실험도구를 챙겨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름도 생소한 실험도구들이었는데, 못 찾는다는 이유로 과학실에서 호되게 매질을 당했다. 당시에 반장을 하고 있어서 '반장씩이나 되어서 그 따위냐'는 말을 들었다. '너 같은걸 반장이랍시고' 같은 말은 약과였다. 건조한 목소리로 '넌 네가 반장인 게 창피하지도 않냐' 하며 눈을 흘기거나, 반 아이들을 향해서는 '너희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걸(;) 반장으로 뽑은 거냐'라며 비아냥거렸다. 울면 더 혼날 것 같아서 덜덜 떨면서 눈물도 못 흘렸다. 손을 올리지 않으면 목소리와 표정으로 따귀를 날리는 선생님이었다.  


집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지 못했다. 그냥 학교에 되게 무서운 선생님이 있는데, 나도 크게 혼났다고만 했다. 엄마는 그런 선생님이 나를 더 크게 키워주는 분이니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 선생님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더 '큰'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한 송이를 샀다. 교무실 문을 바라보며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나오는 걸 보고 달려갔다. 꽃을 내밀고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나를 더 크게 키워주는 사람이니까. 생각해 보면 나를 향한 총구에 꽃을 끼워 넣는 것과 같은 마음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 열네 살에.


키가 컸던 선생님은 잠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꽃을 받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총구에 꽂아 넣은 꽃송이를 뽑아 버리고 그대로 총을 쏘고 가버린 것이다. 그때 그 선생님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꽃을 사들고 등교했던 나를 다독이며 그저 내가 '큰' 사람이 되었다고 믿기로 했다. 선생님보다 더. 그러나 그 후로 '나는 왜 미움을 사지', '내가 그렇게 밉상인가', '오늘 내가 잘못한 일은 뭐뭐가 있지'와 같은 생각들을 늘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의 날들이 그랬다.


열네 살 그 해의 특별한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그 시절, 학생들을 '패는' 교사들은 넘쳤다. 등교시간에 교문에서부터 매질이 시작되고, 각목으로 아이들을 때리는 소리가 건물을 타고 공명을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교사가 대걸레로 학생을 때리다 자루가 부러지면 그걸 무용담 삼아 떠들던 시절. 교실 뒤에서 매질이 이어질 때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던 시절... 학교에서 매질이 멈춘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다.




학생주임도 유난히 폭력적이었다. 몽둥이 같은 도구가 아니라 그냥 손바닥을 휘날려 '귀싸대기'를 때리고 다녔다. 그 학생주임에게 안 맞은 학생이 없을 정도로 애들을 ‘패고’ 다녔는데, 나도 칠판에 낙서를 했다가 따귀를 맞은 적이 있다. 한참을 훌쩍거리다 거울을 봤더니 얼굴에 벌겋게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고통과 억울함과 수치심이 눈물 콧물과 함께 범벅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교생실습을 갔더니, 그분은 승진을 거듭해 교감이 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현실은 권선징악의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또 새삼 깨달았다.


"모교 출신이랬지? 나한테 배운 적 있나?"

하고 묻는 교감 선생님.


"선생님께 수업을 들은 적은 없는데, 따귀를 맞은 적은 있습니다."  

하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교생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교생 평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켕기는 것이 생기라고 일부러 한 말이었다. 이걸 보세요. 당신이 준 상처가 이렇게 살아남아 있어요. 괴로워하세요. 마치 문동은이 '선생님, 저 선생님이 됐어요' 하듯이. 답변은 일그러진 표정이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달랐다.


"하하하!! 나한테 맞아서 사람 된 녀석들이 많지."

당황은 내가 했다. 그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더욱 안쓰러워하게 되었다. 복수가 불가능하다.

 

미개한 시절의 미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당황하지도, 반성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그 미개함을 여전히 깨닫지 못해서 '요즘 애들은 좀 맞아야 된다'라던가, '체벌이 다시 가능해져야 한다'같은 소리를 한다. 가정에서 맞으며 크는 아이들도 여전히 많다. 당시 어리석고 작았던 아이들은 그 미개함을 몰랐다. 공포에 질려 '비인간적'으로 얻어터지면서 '사람이 돼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이없는 시절이었다.


어른이 되었다면 이제 그 미개함을 미개함으로 판정 지을 수 있어야 한다.  나를 키운 건 결코 그 매질이 아니었음을 공표하면서 꾸역꾸역 당사자가 모르는 복수를 하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이 그 시절 아이들의 어리석음을 세습하지 않도록 돕는 것도 복수라면 복수다. 게다가 '선생님, 저는 다른 선생님이 됐어요.'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매질보다 더 차갑고 날카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곳곳에 남아있는 야만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더 글로리'의 문동은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의 복수가 고되고 지난한 이유다.  




열네 살 어린 나를 무차별적으로 때리던 그 선생님의 소식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졸업 이후 몇 년 뒤에 지병으로 사직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한 친구는 '우리가 너무 미워해서' 병을 얻은 것 아니냐며 죄책감을 표현했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착한 척하네'라며 비꼬았다. 병으로 신체적 고통을 겪는다 해도 당신이 만든 상처들을 다 회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처럼 내가 직접 벌을 내리지 못하니 천벌을 받았으면 하고 내심 바라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매질도, 맞고 있던 나도.


나는 결국 '큰' 사람은 되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량재질 마인드를 가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