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생각을 펼칠 수 있게 돕는 방법은 무엇일까
간혹 우리는 학생들의 생각이 너무 사방팔방 뻗어나가는 것을 곤란해한다. 그래서 수업시간 활동지에도 미리 자세한 안내를 담아 제공한다. 어떤 단어를 반드시 포함해서 답하라거나, 이번 단원에서 배운 어떤 원리를 적용해 설명하라거나 하는 식이다. 학생들이 답을 찾다 길을 잃지 않도록 교사는 빽빽하게 채운 활동지를 만드느라 애를 쓴다. 그러면 학생들은? 정해진 답변 몇 마디 툭 적어 제출한다.
▪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빈 공간
앞으로의 세상은 암기된 지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따라서 기계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창의력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대체로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다양한 가능성을 찾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유창성, 융통성 같은 인지적 영역이 포함된다. 그러나 호기심과 모험심 같은 정서적인 면도 중요하게 포함된다. 따라서 창의력은 기존의 지필 시험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학생들의 창의력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표준화된 시험’을 꼽았다.1) 주어진 보기 안에서 생각하고 맞는 답을 고르는 시험이 원인이라는 소리다. 생각을 넓게 펼치기 보다는 정답과 오답을 구분하는 능력을 키워왔던 것이다. 서술형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표준화된 시험에 익숙한 학생들은 자유롭게 서술하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안전한 범위의 답변을 찾는다. 애초에 서술형 문제를 만들 때 정해진 답변을 넘어가지 않도록 여러 전제조건을 함께 달기도 한다. 답을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그 과정마저도 표준화를 위한 여러 방법이 동원된다. 평가 기준이 명확해야 채점이 쉽고 공정하게 점수를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EBS 제작진의 『미래학교』에서는 창의성에 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만 3~5세가 가장 창의적인 연령대로 나타났는데, 98퍼센트의 아이들이 확산적 사고가 가능했다. 확산적 사고는 기존의 것을 벗어난 새로운 것들을 끌어내는 능력이다. 그러나 만8~10세만 되어도 그렇게 창의적이던 아이들이 32퍼센트로 줄어든다. 그 이후의 나이에는 10퍼센트로 떨어진다.2) 마치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창의력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되는 듯하다. 아마도 교육이 이어지며 수많은 ‘틀’을 제공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문제집을 열심히 푸는 것이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정답을 찾고 정해진 방법으로 풀어가며 상상력이 끼어들 틈이 점점 줄기 때문이다.
창의력을 위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유연한 사고이다. 그런데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제시하는 틀과 표준들은 오히려 고정된 생각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핀란드의 수업 시간에는 빈칸을 크게 만든 활동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질문에 해당하는 문장 몇 개뿐, 나머지는 답변을 적는 넓은 공간이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도록 공간을 비워두는 것이다.3) 글을 적든, 계산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답을 찾는 방법은 학생마다 다를 수 있다. 너른 들판과 같은 활동지를 받은 학생들은 뛰어놀 듯 자유롭게 생각을 펼친다. 이처럼 세계적인 교육 강국에서는 활동지에 여백을 담는다.
▪유레카! 잠시 딴 생각을 할 시간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욕조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왕관을 훼손하지 않고 순금인지 알아내라는 지시를 받고 끙끙대던 중이었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왕관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온갖 수식과 그림들을 끄적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해결책을 찾은 곳은 욕조 안이었다. 다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물속에 몸을 담그는 순간 번쩍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가 종이에 파묻힌 상태로 있었다면 다른 이야기가 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과학자들의 일화에는 이와 같은 사례가 많다. 독일의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레(Friedrich August Kekulé von Stradonitz)는 벤젠의 육각 고리구조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탄소 화합물의 구조를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자다가 알게 되었다. 꿈에서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동그랗게 말려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케쿨레는 심포지엄에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발표하기도 한다. 엉뚱하기도 한 이 이야기는 과학사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심리학에서도 자주 언급될 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 창의성이나 통찰력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남기기 때문이다.
『틀 밖에서 놀게 하라』에서 김경희는 창의적 과정에서 휴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전에는 ‘과제 집착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는 좀 다르다.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이 오히려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상상력을 마비시켜 틀 안에 갇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풀리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착상이 일어나려면 철저한 몰입 뒤에 반드시 쉬거나 공상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이 필요하다.4)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관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창의력은 가진 것들을 연결 짓고 새로 조합해 내는 통합적 사고의 결과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이전에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가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은 사물과 현상을 통합적으로 보는 시간이 되었다. 왕관만 뚫어지게 보며 한 생각에 몰두하던 것을 멈추자 오히려 여러 가지 관점을 만나게 된 것이다. 생각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고 유연하게 뻗어나갈 때 상상의 여지와 통찰력이 생긴다. 가끔은 다 내려놓고 자리를 뜨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소리다. 진도에 연연하지 말고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봐야 하는 이유다.
▪ 여유로운 정서의 바탕 위에서 크는 창의력
창의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 아니다. 깊고 넓은 창의적 사고를 위해서는 바탕이 되는 지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안에서 새로운 연결을 발견하거나, 때로는 과감한 파괴도 필요하다. 이 강단 있는 시도를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다. 여유롭고 너그러운 정서가 깔린 환경에서는 창의력이 샘솟는다. 무엇을 내놓든 비판받지 않고 편안하게 수용될 것이라는 믿음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BS 제작진의 『미래학교』에서는 특별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코미디 영화를 5분간 본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누어 창의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사전에 코미디 영화를 본 그룹은 75퍼센트가 문제를 풀었고, 대조 그룹은 단 13퍼센트만 정답을 찾았다. 문제와 전혀 관련 없는 코미디 영화로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정서 상태가 달랐다. 이 연구는 기분 좋게 웃으며 여유를 느꼈을 때 창의성이 높아지는 결과를 보여주었다.5) 사물과 현상을 분석하거나 고도의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분야에서도 마음의 여유와 행복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틀 밖에서 놀게 하라』에서도 여유를 강조한다. 여유 있고 유머러스한 태도가 고정관념과 일차원적인 생각을 극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비난에 대해서도 웃어넘길 힘이 생긴다.6) 독보적인 창의성의 대표자 아인슈타인은 평소 여유롭고 유머러스했다고 알려져 있다. 늙은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혀를 내밀고 있는 익살스러운 사진은 유명하다. 나이도 권위도 뛰어넘는 ‘메롱’은 마음의 여유를 보여준다. 세상을 바꾸는 창의력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학교 교육은 주로 지적 영역에 주목하는 면이 있다. 정서와 감성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흥미와 호기심, 공감 능력, 배려, 즐거움, 행복과 같은 것들이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이다. 그러나 경쟁과 결과가 중요시되다 보면 뒷전이 되기 일쑤다. 공동체의 정서적 바탕이 잘 형성되어야 그 위에서 지적인 영역도 건강하게 자란다. 예를 들어, 다양성이 존중되는 교실에서는 틀리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다. 경쟁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의기소침할 일이 없다. 서로에 대한 너그러움이 있는 관계는 긴장 없이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심리적으로 여유로울 때 지식도 효과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창의력에는 변화를 통해 더 나아지게 하고 싶은 마음, 더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 등이 담겨있다. 결국, 지금 여기에서의 일에 애정을 가질 때 가능하다. 그것이 단단하게 갇힌 마음 안에서 생길 리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는 시간표, 뺵빽한 활동지로 열린 마음이 될 리 만무하다. 창의력의 중요성은 늘 강조되지만, 그렇다고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는 결연함이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느긋한 태도를 가져보면 어떨까. 틀려도 좋고, 달라서 더 좋고, 특이하니 즐겁다고 하는 그런 마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에 빈틈을 두는 게 필요하다. 옛 선비들이 여백 안에서 풍류를 즐기며 시 한 수 즉석에서 뽑아내던 것과 같다.
※ 참고문헌
1)『미래학교』. 정현숙 외. 그린하우스. 2019. p.177
2)『미래학교』. 정현숙 외. 그린하우스. 2019. p.214
3)『북유럽 교육 기행』. 정애경 외. 살림터. 2014. p.112
4)『틀 밖에서 놀게 하라』. 김경희. 쌤앤파커스. 2020. p.231
5)『미래학교』. 정현숙 외. 그린하우스. 2019. p.212
6)『틀 밖에서 놀게 하라』. 김경희. 쌤앤파커스. 2020. p.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