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주는 라디오
"하루의 끝, 위로의 시작. 여기는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라디오를 잘 듣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학창 시절 나에게는 라디오가 최고의 친구였다. 슬픈 날에는 재미도 주고 힘들었던 날에는 위로도 해주었다.
나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었기에 모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학중점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집에서 나와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예민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작은 소리, 불빛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밖에서는 화장실도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내가 4인실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한 선택이었고 이건 그에 따르는 책임 같은 거였다. 뭐 어쩔 수 없었다.
기숙사에서는 tv시청은 물론이거니와 유튜브도 볼 수없었다. 당연히 각종 SNS는 물론 카카오톡도 할 수 없다. 방에서는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았고 오직 학습실에서만 와이파이가 터졌다. 하지만 학습실에는 항상 사감선생님이 계셨다. 만약 학습실에서 카톡, SNS, 유튜브 시청 등 공부 외의 것을 하다가 걸리면 어마어마한 벌점과 함께 사용했던 전자기기를 압수당했다. 코로나 시대였던 우리에게 아이패드와 노트북 없이 공부한다는 건 사실상 말이 안 됐다. 그러면 방에서 데이터를 사용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무제한 와이파이가 아니었고 와이파이 없는 곳에서 할 카톡, 공부를 위한 데이터와 비상용 데이터를 항상 구비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풍족한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빽빽해 보이는 기숙사에도 빈틈은 하나 있었다. 바로 개인정비시간이다. 개인정비시간은 야자 후, 기숙사 야간학습 전 샤워와 짐정리 등을 위한 시간이다. 한 시간 정도 되었다. 이때는 사감선생님들도 학습실에 계시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들은 주로 이 시간에 사감선생님 눈을 피해서 야식을 먹곤 했다. 나는 이때 학습실로 향했다. 혼자 조용한 학습실에 앉아서 헤드셋을 끼고 수학 문제를 풀으며 라디오를 들었다. 나는 그렇게 매일 밤 라디오를 들었다. 3년 내내 매일 같이 10시에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를 청취했다.
힘든 학창 시절, 외딴 기숙사에서 집 떠나온 나에게 푸른밤은 많은 위로가 되었다. 푸른밤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푸른밤 덕분에 노래를 싫어하던 내가 노래취향이란 게 생겼고 처음으로 라디오에 사연도 보내보고 당첨도 되어보았다. 라디오를 다시 듣기도 하고 심지어는 내 버킷 리스트 중 한자리에는 아직도 푸른밤에서 진행하는 독서클럽 매주 참여하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험생도 아닌 지금은 매일매일 챙겨 듣지는 못했다. 그래도 언제나 나의 최애 라디오 프로였고 항상 10시에 라디오를 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일 것 같았다. 하지만 2023년 11월 18일 부로 푸른밤은 완결을 맺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나는 꽤나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지만 지금까지 DJ이가 바뀐다거나 종영을 한다거나 하차를 한다 해도 살짝 아쉬운 느낌이었지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진 않았다. 그런데 푸른밤이 종영한다고 했을 때 이건 진짜 소중한 친구를 잃은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차가웠던 시간들에 따뜻했던 푸른밤이 있었어서 항상 그 자리에 변함없이 푸른밤이 있었어서 사라지는 게 이렇게 슬픈가 보다. 이걸 쓰며 추억을 회상하는 지금도 훌쩍이고 있을 정도니
이때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영원히 그 자리에 있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 내가 사랑하는 것들도 모두 잊히고 사라지겠지, 그러니 지금 더 열심히 사랑하고 기억해야지!
p.s. 항상 따뜻한 위로, 재미를 주었던 푸른밤 항상 감사했어요! 잊지 못할 거예요.
- 푸른밤을 사랑했던 옥택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