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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휘 Jun 13. 2023

패션리더 정민휘의 패션학개론

패션리더가 될 수 있던 5가지 이야기

들어가며...



아마 많은 분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셨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저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패션 리더라는 사실이지요. 패션리더라는 말이 왜 사전적 정의까지 있나 싶긴 합니다만, 사전적 정의를 읊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최신 유행을 선보이며 대중의 패션 경향에 영향을 주는 사람”


리더가 되려면 필요한 조건이라는 유명한 말이 하나 있지요.


“이끌거나, 따르거나, 비키거나”


이끈 다는 것은 결국, 다른 이들이 나와 같아질 수 있음을 의미할텐데, 저는 남들을 이끌만한 재주도 없고, 기어코 남들을 따르며 똑같아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며시 중심에서 비켜나, 빗겨 난 세계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패션리더입니다.


빗겨 난 저의 세계를 만들게 된 몇 가지 이론들을 여러분께 공개하겠습니다.




제1장. TPO



저는 언젠가 홀로 영등포역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노숙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술병을 들고 취해 휘청거리며 있길래 엮이기 싫어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종이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더니 저에게 마시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마음이 참 이상했습니다. 비록 노숙인일지언정 지나가는 모르는 젊은이에게 어쩌면 자신의 전부일지도 모르는 소주를 내어주다니요. 더군다나 병나발이 아닌 종이 소주잔을 들고 다닌다는 점에서 어쩌면 저는 그에게 신사다움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정중히 거절을 하고 자리에서 벗어나 친구를 만났고, 친구에게 이 마음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 그냥 너 옷차림 보고 그지인 줄 알고 불쌍해서 준거 아니야? " 라고 했습니다.


저런... 하지만  물론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실제 거지처럼 입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H&M 과 ZARA에서 구매한 새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저 카키색을 좋아했었던 것뿐인걸요.


아무래도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자칫하다간 자리를 빼앗는 신입 노숙인으로 오해를 받아 소주병을 머리에 맞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2장. 자본없는주의론



저는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좋아합니다. 참 재미있는 브랜드입니다. 싸면서 비싸고, 심플하면서 요란하고, 클래식하면서 트렌디하고, 귀하면서 흔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나이키는 지드래곤이 신어도, 동묘 앞 할아버지가 신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가끔 팩토리 아울렛을 방문하곤 합니다. 간혹 갖고 싶었던 제품을 헐값에 만나는 기쁨을 만나기도 하며, 정가를 주고 구매한 제품을 헐값에 만나는 슬픔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냥 나빠할 만한 일은 아니지요. 당황하지 말고 ‘다른 색상이라 괜찮지 않을까?’라는 명분만 잘 다져놓는다면 하나를 더 구매해 물 타기를 해도 좋습니다.

8만 원에 샀었던 제 삼성전자 주식처럼 말이죠.


자본이 없을 때에는 특히 주의를 해야합니다. 팩토리아울렛에서 만난 아이템들은 어찌 보면 선택받지 못해 떠밀려온 것들이기도 합니다. 선택받지 못한 아이템들은 요란하기 마련인데, 저는 오히려 유니크해서 좋습니다. 팩토리아울렛에서 조차 무난하다 싶으면 비싸고, 요란하다 싶으면 쌉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요란한 옷을 입게 되어 버리는 운명을 마주하고 말았습니다. 남들이 잘 입지 않는 나이키 멜빵바지라던가, 시장에서 샀냐고 놀림당하는 아즈텍 벽화 st의 바지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결국 저의 패션은 이 사회가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철저한 시장경제체제의 자본주의의 물결.

즉, 돈으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제3장. 시장견제론



시장경제체제의 물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시장으로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동묘를 좋아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벼룩시장을 좋아합니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한 번씩 찾아 들르곤 합니다. 벼룩시장은 참 재미있습니다. 옛것들이 새것은 되지 못해도, 새로운 것이 되는 아이러니한 곳이지요.

동묘를 가봅시다. 동묘를 우연히 갔다가 파란 갑바천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면 조금 기다려보세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산타클로스 마냥 봇짐을 바닥에 풀어헤치고는 ‘천 원!’이라고 외칩니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게지요.


이제는 천 원짜리보다 2천 원짜리가 더 흔해진 다이소지만 이곳에는 아직 낭만이 있습니다. 옷으로 산무더기가 만들어 진 곳을 뒤져봅니다. 운이 좋으면 택까지 달려있는 새 상품을 천 원에 득템을 하기도 하고. 제법 빈번하게 리바이스 청바지를 천 원에 살 수 있기도 합니다. 뒤지다가 중학생 때 귀하게 여기던 바람막이를 보면 반갑기도 합니다.


하지만 낭만만 좇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좁은 갑바천 위는 작은 동물의 왕국이 됩니다. 시장에서는 언제나 견제를 잘 해야 합니다. 남들이 파헤치는 것을 보기만 하다가 슥 낙아채는 매의 눈들과 누군가 집은 옷을 내려놓기만 기다리는 하이에나들이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혹시나 겉옷을 입고 갔다면 다른 옷을 입어볼 때 허리에 꼭 쫌매놓아야합니다. 자칫 내려놓았다가는 누군가가 "동묘에서 천 원에 산 옷인데 주머니에 에어팟도 들어있었다" 는 행운의 주인공을 만들어 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동묘바닥에 있다고 해서 물건들을 결코 하찮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벼룩시장에 나왔다는 건, 버려도 버려도 누군가는 가치를 보았다는 것이 아닐까요.



제4장. 파랑새론



동물의 왕국에서 이겨낼 자신이 없다고 해서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어렸을 적 우리는 <파랑새>라는 책을 읽어보았을 겁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되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고, 집에 돌아와 살펴보니 집에 있는 새가 바로 파랑새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가까이 있는 것이다.라는 교훈을 주는 작품입니다. 

패션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저는 분리수거날이 된 우리 집 현관 앞에 낡은 가죽가방하나가 버려져있는 것을 보고 냉큼 주워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쯤. 그러니까 아빠가 총각이었고,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 무렵. 해외를 나가기도 힘들다는 그 시대에 미국으로 나가 큰 마음먹고 지른 그 당시 나름 명. 품. 코치 가죽가방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들고 다니는 걸 보시더니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검게 손때 묻은 손잡이 부분은 갈라고.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손때가 진짜배기라는 것을요.



제5장. 근본론



지금까지 몇 가지 사례들을 들으며 패션리더가 되는 방법을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위의 이론을 모두 수행하셨다고 하여 쉽게 패션리더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름지기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입니다. 패션에 대한 본인의 마음가짐과 철학,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짜세’라고 부릅니다, ‘자세’가 아닙니다. ‘감성’과 ‘갬성’의 묘한 다름이 있듯이 이 또한 다릅니다.패션은 그저 나를 표현해 주는 껍데기일 뿐 결국 껍데기가 감싸고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르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자신감 있는 발걸음으로 거리를 걸어 다녀야 합니다. 짜세와 함께 한다면 타인이 모르는 어떤 패션세계가 있는 것처럼 비추어지기 마련입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이상한 아이템을 하나 사십시오. 옷이 부담스럽다면 모자가 되어도 좋고, 신발이 되어도 좋습니다. 각 아이템에 담겨있는 스토리가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GD가 디자인한 나이키X피스마이너스원 자켓을 하나 샀습니다. 말이 자켓이지 사실상 저고리입니다. 40 몇만 원에 출시가 되었습니다만, 역시 요란한 탓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지금은 30만 원대에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개량한복 입는 것을 좋아합니다. 해외여행을 할 때 입기도 하고, 추석 설날 시즌에도, 그냥 회사에 출근할 때 입기도 하죠. 30만 원에 저고리를 산다는 게 사치일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이 멸망하지 않는 한 추석과 설날을 존재할 것입니다. 누구도 한복을 입지 않는 오늘날, 나이키에서 만든 저고리를 입는다? 바로 간지 작살입니다.




끝마치며...




우리는 간혹 패션에 힘을 주고 오면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기곤 합니다. 오늘은 왠지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낼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죠.

그런 마음들은 결국 태도가 되어 나타납니다. 내 자신의 성향에서도 나오고,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입고 나온 패션이 혹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마음입니까?

지나가는 행인1의 마음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의 마음입니까?

패션이 그날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된다면, 자신의 마음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패션리더는 임명직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이 정하는 것입니다.




                                            <오얏나무아래 있을 시절과 같은 문제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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