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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휘 Aug 12. 2022

파란밤

알람 시간을 맞추고 휴대폰을 머리맡에 올려놓는다. 

얼굴을 비추던 조명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둠이 채워진다. 

깜깜한가 싶다가도 꺼진 TV와 멀티탭의 빨간 불빛들로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가만히 있어보기로 한다. 

나만 가만히 있는다면 방안은 고요할 것이다.

가끔씩은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방을 채운다. 

째깍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 무소음 시계로 달아놓기까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요즘 따라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은 기어코 잘 잠이 들고 싶었다.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고, 제법 힘들기까지 한 하루였는데...


가끔은 이런 날들이 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희미한 작은 불빛과 소리까지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런 날에는 매트리스의 파여있는 부분에 내가 끼워 넣어지는 것까지 느껴지곤 한다.


다시 손을 뻗어 손끝의 감각으로 어딘가 널브러진 휴대폰을 다시 꺼내온다.

이미 새벽 세시를 넘어가고 있다.

'내가 언제부터 누워있었더라...'

밤은 점점 도망쳐가는데 나는 아직 그대로 남겨져 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자리를 뒤척여본다.

옆에서 방해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나는 자지 못하고 있는가.


언젠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잠이 잘 들지 않으면 자연의 소리를 틀어놓고 자라고.

휴대폰을 다시 꺼내 유튜브에 잠이 잘 오는 소리를 찾아본다.


무려 네 시간이 넘는 자연의 소리 모음.

꽤 오랜 시간 동안 빗소리, 타는 장작 소리, 풀벌레 소리를 듣는다.

왜 인지 소리가 참 예쁘기도 해서 잠들기는커녕 가만히 집중해서 듣게 되고 말았다.


이윽고 파도소리가 나온다

파도가 모래사장을 훑고 내려가는 소리는

나를 지난 기억 속의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파란밤이었다.

어떠한 설명이 필요 없는 그 자체의 파란밤.


키가 큰 야자수들이 멀리 뽑아낸 커다란 입사귀들이 이따금씩 두둥실 바람에 떠오르던 밤이었다.

바다는 새까맣게 출렁였다. 까만 바다는 계속해서 파도를 뿌려댔고,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다 이내 사라졌다.

파도가 닿는 곳엔 회색빛 모래사장이 있었다.

까만 바다와 회색 빛 모래사장 사이에 하얀 점이 되어있는 그녀가 있었다.


“아 진짜.. 한참 찾아다녔잖아...”


하얀 원피스를 입고 주저앉아 있던 그녀는 

그제야 꼬아진 두 팔 사이에 묻어두었던 얼굴을 들고 시뻘게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고요하게 흐느끼고 있었다.


나도 옆에 털썩 앉았다.

나는 아마 말이 없는 그녀를 서툴게 달래주었을 것이다.


그녀는 죽고 싶어 했다.

그냥 나는 옆에 가만히 앉아 있어 주기로 했다.

파란 밤, 까만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앞에 두고.





모래알만큼이나 잘게 부서진 기억의 조각을 한참이나 주워 담다,

흐릿하게 얼버무려 지워 내기로 한다.


돌아가야지.

이곳은 이곳의 시간이 흐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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