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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휘 May 23. 2022

정면돌파

글쓰기 소재가 없어도 어떻게든 정면돌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달 글은 한 회 쉽니다.

죄송합니다.






같은 말을 차마 쓸 순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이란 글을 쓸만한 소재가 없다 라는 것이었다. 오늘은 꼭 글을 써야 한다. 앞으로의 스케줄을 보니 오늘 글을 쓰지 못하면 더 이상 쓸 시간이 없다. 나희도와 고유림의 펜싱경기는 다음에 보자. TV 를끄고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과 소주잔을 꺼내왔다. 알코올 중독자는 결코 아니지만 헤밍웨이도 술을 먹고 <노인과 바다>를 썼다고 하지 않았나. 글을 쓸만한 지난날들의 소재들을 떠올려보며 한잔을 채우고 비워냈다. 


전 여친들과 동명이인인 사람들과 갑자기 엮이게 되는 옴니버스 극 <정민휘의 대혼돈의 전 여친 멀티버스>라던가, 중학생 시절 다니던 학원의 버스기사님의 좌충우돌 단편 에피소드 <불꽃의 버스드라이버 몽키> 시리즈 같은 것을 쓸까 하다 21세기 만득이 시리즈가 되어버릴까 봐 그만두었다.


정면돌파다. 이번 글쓰기의 소재는 '글쓰기'로 해보자 근본 그 자체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윤동주가 말하길 글이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 나는 부끄러움 한점 없는 당당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 지금,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최초의 악수를 청한다.



최초의 글쓰기를 하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유치원에서 깍두기 공책에 'ㄱㄴㄷ...'을 따라 쓰곤 했는데, 첫 장에는 점선으로 자음과 모음이 한 바닥 적혀있고, 다음장에는 공란으로 비워져 있었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자율성에 당황했으나 꾀돌이인 나는 ㄷ까지는 꾸역꾸역 써보다 ㄹ 같이 어려운 글자는 쓰지 않고(그 당시 나름 어려운 글자였다..ㅎ) 'ㅣ' 만 몇 바닥을 채웠다. 선생님께 혼이 났지만, 이것은 모음 'ㅣ' 이 기도하면서 숫자 '1' 이기도 하니 더 좋은 연습이 아니겠냐며 나름의 명분으로 대처했다.


아 나란 아이 참으로 귀여운 아이였구나 술을 한잔 다시 채우고, 어린 날의 사랑스러운 나를 떠올린다. 아니야 근데 이건 '글쓰기'라기보단 '글자' 쓰기잖아... 생각하면서 그대로 글을 쓰고 있자니 멀티태스킹이 쉽지 않다. 차라리 글을 뱉어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정면돌파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의 끝이 궁금해진다. 또 한잔을 빠르게 삼킨다.




그래. 초등학교 1학년 때 일기를 쓴 게 아마 최초의 글쓰기였던 것 같다. 요즘 시대야 인권문제로 일기를 검사 하나 싶긴 한데, 그 무렵에는 매일같이 제출했다가, 선생님이 코멘트를 달아 나누어 주곤 했고, 가끔 부모님과 소통하는 펜팔 노트가 되기도 했다. 제법 명석했던 나는 일기장이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일찌감찌 알았으므로 언제나 좋은 어린이로 남기 위해 애써왔다. 친구와 싸운 이야기라던가, 오락실에 갔다던가,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었더라 같은 기록들이 남아있지 않다 책꽂이에 모아놓은 일기장들이 손바닥 한 뼘이 넘었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도 과연 그럴까? 그 많던 일기장 속에 진짜 나의 이야기는 얼마나 있을까? 추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다시 추억이 될 터인데 나는 꽤나 많은 것 들을 잃어왔다. 이거 제법 슬픈 이야기군.. 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잔을 마신다.


그러고 보면 초등학생 시절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쓰게끔 만들었다. 매년 '과학의 날'이면 각 반에서 역할을 나누어 고무동력기, 물로켓, 과학상자, 표어, 포스터, 글짓기 등 다양한 종목에 참여하곤 했는데, 누군가는 비인기 종목에 참여해야 했으므로... 반장이니까, 착하니까, 똑똑하니까, 양보 잘하니까 같은 위로의 말과 함께 글짓기에 배정되곤 했다. 그치만 나도 여느 남자애들처럼 고무동력기를 날려보고 싶었다... 우리 학교에는 '나의 꿈 발표대회'라는 게 있었다. 이 또한 여러 이유들로 차출이 되었던 것 같다. 꿈같은 거야 없었으니 <지구용사 선가드>나 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저런 로봇을 만드는 게 과학자가 하는 일이라며, 과학자로 쓰라며 영업(?)을 하셨다. 결국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원고지에 빼곡히 채워놓고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긴 했으나, 결코 나는 당당하지 못했고, 이 때문인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나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제법 쑥스러운 일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수업시간이나 논술학원에서 많은 글들을 써왔겠지만, 결코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린 날들의 나를 돌이켜보면 나는 결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글은 누군가에 의한, 누군가를 위한 글이었으나, 어느 것도 내가 되지는 못하였다.





대학생이 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창업활동을 하면서 쓴 사업계획서들도 글쓰기가 되려나.. 내가 창업을 하고 싶었던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취업할 때 스펙으로 쓰려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사장님 소리 듣고 싶어서가 결코 아니었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꺼내 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업계획서 쓰는 것이 재미없어질 무렵,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었으므로, 다소 남사스러운 표현이지만 '작품'활동으로 무언가를 꺼내놓기로 했다.



대학교 2학년 무렵 단편소설을 하나 지어 공모전에 출품했다. 제목은 <개 같은 년>이었다. 무명의 연극배우가 우연히 '개'의 탈을 쓰고 연기를 하게 되자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이야기였는데, 사랑받기 위해 '개'같이 살아가는 날이 더 많아지고, 자신으로서의 삶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한해(年)를 그린 나름의 블랙코미디였다. 그 시절, 유망한 청년창업가의 모습으로만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 전달되지 못한 좌절과 고통의 시간들 속에 휘청이던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 이기도 했다. 제법 신선한 소재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수상을 하진 못했다. 그 당시 제출할 때 메일 제목을 '작가명 작품명' 의 양식으로 작성해야 했는데 '정민휘 개같은년' 으로 쓰니 어쩌면 동명이인이 제목만 보고, 메일을 삭제해버렸을 수도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후의 작업은 2년 전쯤이 될 것 같다. 평소에 영화를 즐겨보고 '왓챠피디아'에 평가를 기록하곤 하는데, 일정 평가수를 넘을 때마다 영화와 관련된 명언을 보여주곤 했다. 나는 해당 문구 이후로 바뀌지가 않는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지막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 그 이상은 없다”-프랑스와 트뤼포 > 그래서 나는 나의 사랑을 증명하기로 했다. 때마침 서울시에서 국제 초단편영화제라는 것을 하기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영화제 아카데미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좋은 시나리오를 가져오면 영화 제작 및 출품을 지원해준다고 했다.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발표했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투표해 주신 덕분에 내 시나리오와 내 연출이 담긴 내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나름 국제영화제에 감독으로 데뷔(?)하며,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으로 내 작품을 만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 당시 회사일로도 한참 바쁠 때였기에 밤늦게 일 끝나고 집에 가서 시나리오를 쓰며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하기도 했지만 나의 새벽은 분명히 빛나고 있었다.


이후에도 창작활동은 계속되었다. 40대 노총각 형님이 부모님과 싸우고 가출(출가가 아니다) 후 템플스테이에서 칩거생활을 하며 집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다큐멘터리 <옴마니반메HOME> 으로 다큐 제작지원사업에 제출했으나, 광탈을 하기도 했고, 서울시 공모전에 제출한 작품 <순덕이의 서울꿀팁> (링크를 클릭하시면 저의 발연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ㅎ)은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찍지 않은 제법 괜찮은 시나리오가 있다..! 성적이야 어쨌든 창의적이며, 도전적인 나에게 영화 작업은 너무나 즐거운 놀이였다. 이러한 영감을 받아 회사에서도 영상 콘텐츠 팀을 구축하고, 많은 영상들을 만들어 내는 일을 맡고 있다.



이제 마지막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침대 속에 들어갈 것이다. 다듬는 시간은 좀 가지긴 해야겠지만 어느 정도 에세이 구색은 갖춘 것 같아 안심이다.(제법 많이 썼다는 뜻ㅋ)

글쓰기라는 주제를 통해 인생을 훑어본 느낌이라 감회가 새롭다. 좋은 소재였다.

올 해에만 해도 나스스로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1일 1인터뷰>를 마치고 지금이 글의 계기가 되고있는 <1달 1에세이>를 성실히 수행하고있으며, 얼마전에는 매일 한 가지 단어를 랜덤으로 받고, 정의를 해보는 <1일 1시>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원래는 한가지 단어에 대해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는 프로젝트인데, 나는 더 나아가 해당 단어를 '사랑'이라는 주제로 한편씩 시를 쓰고 있다.(완전 이상한 소재를 받아도 사랑의 시로 바꾸는 과정이 눈물의 똥꼬쇼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써놓은 작품들을 보면 제법 괜찮다 ㅎ) 사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앞으로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글쓰기'라고 말해 보려 한다.

글쓰기라는 게 다른 사람에게는 어쩌면 꽤나 고상한 취미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분명한 건 어쨌든 지금의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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