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살면서 자주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도우미와 함께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겉으로 보기엔 꽤 중증으로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 장면은 유난하지 않다. 특별하지도 않고, 눈길을 끌지도 않는다. 그냥 일상의 풍경이다.
이 풍경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의 일상 공간 자체가 장애인의 외부 활동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 휠체어가 그대로 들어갈 수 있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기본값으로 붙어 있는 공공시설들. 역 안에서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휠체어 리프트나 이동 보조가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인상적인 건 장애인 화장실의 수다. 크고 작은 역, 공원, 상업시설마다 빠지지 않고 존재한다. 그것도 '있기는 한'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 가능한 위치와 구조로 마련되어 있다. 외출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가 화장실이라는 점을 이 사회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장애인의 외출은 용기나 결단이 아니라, 그냥 계획의 일부가 된다.
한국에서라면 어땠을까. "대단하다"거나 "안쓰럽다"거나, 최소한 한 번쯤은 시선이 머물렀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런 머뭇거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거나 예외적인 존재라기보다, 조금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처럼 보인다.
집 근처에 '스완(Swan)'이라는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곳인데, 빵을 만드는 사람도, 서빙을 하는 사람도, 계산대에 서 있는 사람도 모두 장애인이다. 이들은 단순한 '체험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 훈련을 받고 실제 매장 운영의 일부를 맡는다. 빵을 굽는 기술울 배우고, 서빙과 포스 사용법을 배우고, 그 결과물이 다시 사회로 유통된다.
[베이커리 스완. 맛 좋은 빵이 여러 종류, 넓고 쾌적한 내부로 동네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카페이다.]
이 구조가 인상적인 이유는, 장애인을 '일하게 해 준다'는 시혜적인 태도보다는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든다는 점에 있다. 느려도 괜찮고, 실수가 있어도 괜찮고,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괜찮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다. 그 전제가 있기 때문에, 장애인은 사회에 '적응해야 할 존재'가 아닌 사회 안에서 자기 속도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된다.
일본이 장애인 제도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제도마다 한계도 있고, 문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체감되는 차이는 분명하다. 그것은 숫자나 정책 문구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공간 설계의 결합에서 느껴진다.
장애인을 '기피의 대상'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보지 않고, '불편함이 있는 사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이 인식이 먼저 자리 잡았기 때문에, 베리어프리 교통수단과 공공시설, 일자리 구조가 그 뒤를 따라온 것은 아닐까.
한국의 장애인 정책 논의는 종종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 '누가 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머문다. 하지만 일본에서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질문 자체가 달랐다는 점이다.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장애인의 외출이 많다는 것은, 단순히 도우미 서비스가 잘 되어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이미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오래 해왔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특별히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공존의 단계.
그 풍경을 보며 자주 생각한다. 제도는 뒤따라 만들 수 있지만, 인식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정책보다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눈의 높이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