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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디, 차이와 사이를 걷다
for Bleisure

-프롤로그 : 비즈니스 출장과 여행의 결합(bleisure)

by 정민영


프롤로그 : 비즈니스 출장과 여행의 결합(bleisure)

출장과 여행, 일과 쉼의 경계


낯선 도시의 공기는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택시 창 너머 퍼지는 이국의 냄새, 붉은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뾰족하게 솟은 고층 빌딩 군락.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땅을 처음 밟았던 날,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꿈틀거렸다. 물론 명확한 목표와 촘촘한 일정표가 내 손안에 있었음에도, 완벽히 계획할 수 없는 변화가 발목을 잡으리란 것도 어렴풋이 예상했다. 그런데도 그 불확실성 앞에서 더욱 또렷이 떠오르는 한 단어—'만만디(慢慢地)'. 느림에서 비롯되는 서두르지 않음,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 바로 그것이, 내가 반복해서 중국을 찾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출장과 여행, 일과 쉼의 경계는 때때로 너무도 모호하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택시 안, 창밖을 스치는 고궁의 성벽이 내게 말을 걸 때가 있다. “이곳은 단순한 출장지가 아니라, 당신의 또 다른 여정의 무대다.” 정확히는 네트워크 이벤트 뒤편 오색의 야시장, 낯선 사람과의 차 한잔, 뜻밖의 동행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의 장면들. 평범한 비즈니스 룸의 반복이 주는 권태로움 속에서, 문득문득 고개를 드는 여행자의 얼굴. ‘나’라는 사람도 이따금 두 개의 그림자를 가진다. 명함을 쥔 비즈니스맨과, 카메라를 들고 골목을 누비는 여행자. 그 두 사람이 마주칠 때, 멈춰있던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를 기원하게 된다.


어느새 출장이라는 말보다 '블레저(bleisure)'라는 신조어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일과 여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세계 어디서든 카페 한 구석에서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난 지금, 여행은 일, 일이 곧 여행이 되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블레저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베이징의 새벽은 출근 전 산책하는 현지인들의 어깨를 적시고, 상하이 저녁은 황푸강을 따라 반짝이는 야경이 삼겹살 연기처럼 번진다. 이방인의 설렘이, 현지인의 느긋함과 만나 한 그릇의 완탕면 속에, 혹은 기적처럼 열린 비즈니스 상담의 미소 속에 녹아들었다. 나는 이 느슨하면서도 긴장감 어린 공존이 어쩌면, 진짜 중국 비즈니스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여행자가 되어 낯선 거리에 서면, 순간순간 머릿속에서 비즈니스 전략의 공식들이 사라지고, 대신 오래전 중국 고전의 한 구절이 맴돈다. “두 물고기가 물속에서 마주치듯, 인연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회의실 테이블 건너편, 예상치 못한 농담 하나에 빙그레 웃는 현지 동료, 밤길을 걷다 오랜 친구처럼 말을 건넨 노상 포장마차 주인, 그들과 주고받는 미묘한 기류. 만약 내가 출장 일정이 무게라는 이름으로 빼곡했다면, 절대 놓쳤을 소중한 인연들이다. 만만디의 그림자 아래, 불필요해 보였던 여백이야말로 중요한 '사이’—비즈니스와 인생 모두에서 진짜 가치를 발견하는 공간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책의 시작점도, 누군가에겐 너무 느리고 헛헛한 순간들이지만, 내게는 조용한 깨달음의 시간이다. 출장과 여행, 일과 놀이, 익숙함과 낯섦. 그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다 보면, 어쩌면 우리는 더 유연하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마주하는 변화와 모험, 실수와 성장, 그 모든 흔적이 이 여정의 한 자락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다시 가방을 꾸리고 새 일정을 짠다. 인생도, 비즈니스도, 그리고 여행도—만만디. 쉬지 않고 조금 천천히, 사이의 매혹을 음미하며.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도 비즈니스라는 울타리에 얽매이지 말고 그 속에서 삶의 여유와 지혜를 배워 나가시기를 바라면서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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