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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효율적인 일정 구성법

by 정민영

3장. 효율적인 일정 구성법


비행기 이륙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항상 내 손 안의 일정표를 꺼내 확인한다. 정갈하게 정리된 칸마다 빼곡히 적힌 일정들, 미팅 시간, 이동 시간, 그리고 '잠깐의 여유'까지도 분 단위로 쪼개어 채워 넣은 나만의 작전지도.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일정은 늘 한두 번씩 어긋났다. 갑자기 길어진 점심 식사, 예고 없던 교통체증, 생각보다 길어진 현지 파트너와의 대화, 그리고 종종 마주치는 예상외의 변수들. “중국에서 일정을 소화한다는 건, 일종의 살아있는 퍼즐을 맞추는 일”이라 생각했다. 분명한 건 미리 그려둔 그림이 중요하긴 해도, 그 틀에만 집착하면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칠 수 있다는 것.


목표에 따라 역산하는 일정 설계

출장 일정표, 어디서부터 어떻게 짜야할까? 모든 것은 '목표'에서 출발한다. 내가 이번에 달성해야 할 핵심 업무는 무엇인지, 그것이 단순 미팅인지 시장조사인지, 아니면 전시회 참가인지에 따라 필요한 시간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하루에 세 번의 미팅을 무조건 넣는 것이 능률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중 두 번이 짧은 인사치레로 끝나고, 한 번은 예정보다 깊고 길게 이어진다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언제나 출장 기간 가장 중점적으로 처리해야 할 '1순위 미션'부터 일정표의 중심에 배치하는 역산(based scheduling) 방식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베이징에서 담당자와의 주요 계약 미팅이 오후 3시에 잡혀 있다면, 그 전후로는 절대 다른 업무를 넣지 않는다. 미팅 장소까지의 이동시간, 만일의 돌발상황을 감안해 최소 2시간 전에는 근처에 도착해 있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그런 다음, 그전과 후로 덜 중요한 미팅이나 시장조사 일정, 쇼핑이나 식사 시간을 배분한다. 가장 꼭 잡아야 할 약속을 먼저 배치해 두고, 나머지 시간을 유연하게 배치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효율적인 출장 일정의 시작점이다.


이동과 휴식의 리듬, 예측에서 현실로

중국 대도시의 이동은 한 마디로 예측불허다. 지도앱이 알려주는 30분이 실제로는 1시간이 걸리고, 지하철을 타면 환승 때문에 20분 만에 도착한다는 내 계획이 일장춘몽이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항상 각 일정의 이동시간을 ‘과장되게’ 산정한다. 예를 들어, 택시로 40분 거리라면 1시간 이상을, 지하철로 5 정거장 거리라면 중간 환승이나 출구 찾기, 휴대폰 충전 문제까지 감안해 최소 20분을 더 잡는다.

중요한 사실은 '휴식'도 일정의 일부라는 것. 바쁜 일정 속 잠깐의 텅 빈 시간을 '쓸모없는 공백'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호텔 체크인 시간, 점심 식사 뒤의 짧은 산책, 미팅과 미팅 사이 30분의 여유. 이 공백이 있기에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도 정신적으로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이런 여백의 시간에 현지 시장의 트렌드를 우연히 발견하거나, 파트너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협상의 실마리를 찾은 적이 많다.


디지털 도구의 활용, 앱과 기술의 시너지

요즘처럼 정보와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 출장 일정 관리에도 각종 디지털 도구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내 스마트폰 첫 화면엔 항상 일정 관리 앱(구글 캘린더, 네이버 캘린더 등)과 현지 교통앱(바이두 맵, 디디추싱)이 자리를 차지한다. 비즈니스 미팅 일정은 이메일과 연동해 자동으로 캘린더에 기록되고, 미리 알림 설정을 해두면 시간에 쫓겨 허둥댈 일도 줄어든다. 여기에 위챗(微信)은 단순 메신저가 아니라 미팅 일정, 위치 공유, 사진 전송, 심지어 결제에도 활용된다. 한 번은 상하이에서 미팅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맸는데, 위챗 내비 기능으로 실시간 위치를 파트너에게 공유하고, 길을 정확히 안내받을 수 있었다.

현지 일정은 반드시 현지 시간대에 맞춰 기록한다. 출장 초엔 시차로 혼동할 수 있으니 모든 약속 시간에 '도시명+시간대'를 표기한다. 특히 중국은 지역별로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간이 다르다. 베이징은 오전 9시, 상하이는 9시 반, 지방 소도시는 심지어 10시가 넘어야 일과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점심시간(12~14시)이나 저녁 식사 후(18~20시)는 절대 미팅을 잡지 않는다. 이 시간에는 웬만한 업무가 잠시 중단된다는 '현지 시간의 리듬'을 존중해야 한다.


예기치 못한 일정 변경, 절대 흔들리지 않는 방법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도, 현지에서는 반드시 예고 없이 일정이 바뀐다. 파트너의 갑작스러운 일, 회의가 길어지는 현상, 날씨 악화, 교통사고… 한두 번 당해 보면, 일정이 어긋났다고 초조해하지 않게 된다. 나 역시 우왕좌왕했던 시절에는 늦어진 약속 때문에 다음 미팅을 줄줄이 연기하다가 하루를 통째로 망칠 뻔한 적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반드시 '버퍼 시간'을 설정한다. 특히 중요한 미팅 전후엔 아예 1~2시간 텀을 두고, 다음 일정과의 간격을 넉넉히 확보한다. 혹 예상보다 일찍 끝나면 인근 카페에서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고, 현장 분위기를 직접 관찰하며 즉석 피드백을 얻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일정이 밀릴 때도, "다음 미팅이 있어 나가봐야 합니다"라는 식의 예의 바른 핑계를 준비해 두면 유연하게 빠져나올 수 있다.

더불어, 일정 중 '플랜 B'를 항상 준비한다. 원래 예정된 미팅이 취소되면 그 시간을 현장 시장 조사지, 동종 업계 방문, 혹은 현지 트렌드 리서치에 쓴다. 일정 관리란 결국 '변화와 돌발'의 예술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깨닫는다.


직접 경험에서 얻은 실전 TIP

실제 중국 출장에서 반복적으로 적용한 일정 관리 노하우가 있다.


-중요 일정은 오전 10~11시에 집중
이른 시간 미팅은 모두가 분주해 정신이 없고, 점심 이후엔 분위기가 다소 루즈해진다. 오전 10~11시, 모두가 고조된 상태에서 미팅하면 집중도가 높다.


-점심 이후 1시간은 여유롭게 비워두기
‘꽌시’를 중시하는 중국 문화에선 식사 시간이 길어질 때도 많다. 공식 미팅만큼 식사자리가 중요하고, 이때 예기치 않은 성과가 튀어나온다.


-미팅 장소는 이동 동선을 감안해 배치
마구잡이로 약속을 잡지 않고, 같은 권역에서 최대한 미팅을 몰아서 잡는다. 예를 들어 오전엔 CBD 부근, 오후엔 푸동 지역 등으로 지역별 스케줄을 구분한다.


-비상연락망 확보
미팅 전 파트너의 위챗, 전화번호, 호텔 프런트 등 연락처를 확보해 만일의 지각이나 문제 발생 시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워크시트 제작
하루 전체 일정을 한 장에 정리해 워크시트로 프린트한다. 현지에서는 네트워크 사정 등으로 스마트폰이 갑자기 먹통이 될 수도 있으니, 종이 자료도 꼭 준비한다.


비즈니스 성과를 높이는 '틈'의 활용

중국의 업무 문화는 빠른 결론보단 '과정'을 중시한다. 가령 미팅 중간에 갑자기 자리를 옮겨 차관(茶館)이나 카페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겉으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잡담(闲聊)이 오히려 실제 업무협상의 분수령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샤오롱바오 몇 점을 나누며 듣게 된 이야기에서 중요한 경쟁사 동향을 입수하거나, 파트너의 솔직한 감정을 어렵지 않게 엿본 경험이 있다.

이처럼, 일정표 안 ‘틈’이야말로 인간관계의 미묘한 ‘사이(間)’이자, 진짜 정보와 신뢰가 싹트는 지점이다. 마지막 일정까지 정신없이 소화하다 보면, 출장의 목적이 ‘양적 성과’에 치우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이런 사이 구간에서 질적 차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마무리, 내일을 위한 정리

출장 후에는 반드시 일정을 다시 복기해 본다. 어떤 일정이 불필요하게 겹쳤는지, 예상외로 길어진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더 효율적인 동선이 있었는지.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다음 출장 때는 한 번 더 개선한다. 중국은 도시마다, 계절마다 상황이 달라지므로 항상 최신의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특히 출장에서 얻은 작은 실수, '이 시간에 미팅을 잡지 않았다면'이라는 아쉬움은 다음번 완성도 있는 일정표로 이어진다. 반복되는 일정의 누적이 곧 나만의 출장이력, 그리고 비즈니스 인생의 자산이 된다.

언제나 그렇듯, 완벽한 일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표에서 시작해 여유와 변수를 품은 리듬, 그리고 사람 사이를 잇는 틈을 설계한다면, 비로소 최고의 출장, 가장 성장하는 여행길이 완성된다고 나는 믿는다.
결국, 효율적인 일정이란 '계획+여백+관계'의 교향곡이다. 오늘도 나는 맞춤 슈트를 챙기고 일정을 짠다. 내일은 또 어떤 우연과 기회가 내 일정 사이에 들어설지, 은근한 기대감에 미소를 머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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