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디, 차이와 사이를 걷다
for Bleisure

1부. 비즈니스 출장 뒤 여가로 전환하는 경험

by 정민영

1부. 비즈니스 출장 뒤 여가로 전환하는 경험


출장 일정표의 마지막 행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내 마음 어딘가에는 알 수 없는 해방감이 샘솟는다. 꼼꼼하게 체크된 미팅, 예상 밖의 변수와 긴장 속에 감추어두었던 나만의 감정들이 서서히 풀어진다. 부드러운 셔츠 대신 헐렁한 셔츠를 입고, 명확한 목적지 없는 골목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익숙한 명함 뭉치도, 회의록 파일도 잠시 가방에 넣어두고, 오롯이 ‘여행자’의 시선으로 도시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 나는 이 짧은 전환의 여정을 ‘블레저의 마법’이라 부른다.

비즈니스와 여가 사이, 그 경계는 생각보다 물리적이 아니다. 출장이 끝난 오후, 나는 회의실 창밖으로 보였던 색깔의 거리로 내려가 본다. 시장 통로의 소박한 삶, 이름 모를 카페의 진한 커피 향. 거기서 나는 비즈니스맨의 껍질을 벗은 채, 도시의 숨결을 느끼는 또 다른 나와 마주친다. 처음 파트너와 건네던 형식적 인사가, 골목 식당의 늦은 만찬을 거쳐 어느새 속 깊은 대화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 한 단계 성숙해진 관계가 자리 잡는다.

출장 뒤 남는 시간에는 거창한 계획보다 즉흥적인 산책, 짧은 버스 타기, 골동품 시장 구경 같은 사소한 탐험이 더 오래 기억된다. 한 번은 베이징의 낡은 후통을 걷다 이름 모를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바로 그때 현지 청년과 나눈 짧은 대화, 상점 아주머니의 다정한 손짓이 내 머릿속의 중국이라는 나라를 완전히 바꾸었다. 파워포인트 화면 속 통계로만 알던 도시의 진짜 얼굴, 그것은 예고 없이 다가와 내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오히려 가장 소중한 경험이 찾아온다. 갑자기 생긴 휴식 시간에 무심코 들른 동네 찻집에서, 느리게 흐르는 만만디의 시간을 체감한다. 멀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늘 다시금 이 여유의 순간을 그리워하게 된다.
결국 출장과 여행의 본질은 새로운 가치와 안목을 얻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내면의 성장에 있다. 비즈니스가 끝난 뒤, 짧은 여정 속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상과 작은 기쁨—그것이 비로소 또 다른 출발점이 된다.
내일, 다시 치열한 현실로 돌아가더라도, 이 도시의 오후와 나만의 여백이 내 비즈니스와 삶에 눈에 보이지 않는 큰 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https://cafe.naver.com/luxhom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