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디, 차이와 사이를 걷다
for Bleisure

Chapter2. 블레저 여행의 감성과 전략

by 정민영

Chapter2. 블레저 여행의 감성과 전략

일과 여행, 그 불분명한 경계 위에서


출장이라는 이름 아래 가방을 꾸릴 때마다, 나는 ‘일정이 끝나면 꼭 몇 시간만이라도 나만의 여행을 하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업무로 가득 차 있고, 밤이면 호텔방 조명 아래 피곤에 젖은 채 내일의 미팅을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하이 푸동강변을 따라 홀로 걷던 밤에 문득 깨달았다. 비즈니스와 여행, 일과 삶의 경계란 결국 스스로 긋는 선일뿐이라는 진실. 그날 이후로 나는, 출장 끝 무렵마다 작은 여유를 의도적으로 일상에 밀어 넣었다. ‘블레저(bleisure)’, 그러니까 일이 끝난 자리에 슬며시 피는 나만의 감성 여행을.

도시마다 가진 색과 냄새가 다르다는 것은, 출장지에서야 더욱 선명해진다. 베이징의 아침엔 늦은 산책길을 느리게 걷는 노인들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상하이의 야경은 회색 회의실에서 벗어난 내 마음에 한가득 불빛을 쏟아낸다. 항저우의 서호에서 만난 짧은 오후의 정적, 광저우 도매시장 골목길의 무질서하고 역동적인 풍경. 굳이 어디를 둘러볼지 미리 검색하지 않아도, 미팅 틈새의 산책과 골목 호기심만으로 여행자의 감수성은 삶에 스며든다.

나는 출장 일정을 마치고 호텔 로비를 빠져나와, 음식을 향해 이끌리듯 현지 로컬 식당에 들어선다. 한국에서라면 생각하지 못할 묘한 조합의 향신료와 실내 소음에 처음엔 당황하지만, 이내 그 속에 녹아드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낯선 곳에서는 작은 일상 하나도 특별해진다. 노점의 완탕면 한 그릇, 시장의 활기, 그곳에서 오가는 익숙한 듯 낯선 말소리. 그 모두가 보고서 한 장, 계약서 한 줄과는 다른 깊이로 나에게 기억된다.

놀랍게도, 이런 감성의 순간들이 오히려 비즈니스 인사이트의 원천이 된다는 걸 여러 번 체험했다. 거래처와의 저녁 식사에서 건네받은 중국 고전의 한 구절, ‘머물지 않고 흘러가다’,그 말처럼 도시에 내 시간을 오래 묶어두지 않고, 조금은 여백을 남겨둔 덕분에 오히려 현지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할 수 있었으니까. 예기치 못한 우연, 엉뚱한 골목에서 얻은 작은 감정들이 협상 테이블 위에서 예상을 뒤엎는 창의성을 안겨주는 것이다.

출장 후 남는 것은 실적이나 숫자만이 아니다. 낯선 거리의 공기, 짧은 여유, 망설이다가 도전한 한 조각의 삶. 블레저라는 이름 아래 나는 스스로를 더 유연하게, 더 살아있게 만들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어쩌면, 블레저 여행의 진짜 전략은 대단한 계획도, 거창한 리스트도 아닌지도 모른다. 갑자기 맞닥뜨린 일정의 공백, 저녁의 시간이 남겨주는 사소한 자유, 그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나와 도시의 새로운 표정.
그래서 나는 내일도 마음속에 한 장의 지도를 그려둔 채, 다시 중국 출장길에 오른다.
일과 여행, 그 불분명한 경계 위에서 오늘도 나는 나만의 이야기와 성장을 조용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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