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야 Jun 26. 2022

남해일기 3주 차

210628~210704 무지개가 떴다

6월 28일 월요일

 방역단계 격상으로 네트워크 파티가 취소됐다. 대신 다 같이 돌창고와 키토부를 다녀왔다. 예전에 텀블벅 펀딩으로 카카카의 <소멸하는 방법>을 읽고 남해에 '돌창고 프로젝트'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직접 대표님께 보고 들으니 훨씬 대단했다. 살러가 지역살이 사업하는 것에 관련하여 이것저것 질문하자 하셨던 답변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이곳에 뭐가 필요할까 찾아서 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시는 게 더 좋아요." 
지방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려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보다 현답은 없을 것 같다. 대표님은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남해에서도 경험하게 해 주겠다는 목적만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에 기회 제공보다 우월감이라고 표현했다. 머리가 울리는 말이었다.

 외출한 김에 훈의 차를 얻어 타고 그룹여행팀과 외식을 했다. 훈의 추천으로 절믄나매에 갔다. 진분홍색의 외관에 목재가구가 어우러진 실내가 이름과 참 어울렸다. 읍내로 나온 김에 병원도 들렸다. 대신 접수해준 사월에게 나이를 들키고 말았다. 사월은 내가 자신의 동생보다 어리다며 한참을 놀라워했다. 발은 관리를 잘하지 못한 탓에 부상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진료실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려있어서 의사 선생님께 혼나는 소리도 사월에게 들켰다. 여러모로 비밀이 사라진다. 이른 밤에 나무데크에 돗자리를 펴놓고 홉, 문과 시간을 보냈다. 밈으로 유행하는 유튜브 영상을 따라 하며 놀았다. 유난히 이들과 있으면 학창시절처럼 놀게 된다. 흥이 안 식어서 2000년대 아이돌 노래 메들리를 따라 불렀다. 금, 사월까지 합류하여 신남을 주체하지 못한 채 뛰어놀았다. 물론 나는 상체만 움찔거렸지만. 이렇게 즐거움에 솔직한 몸짓으로 노는 시간들이 정말 좋다.      



6월 29일 화요일

 어쩌다 보니 식당에 여성 살러들만 다 모이게 되었다. 식탁에 둘러앉아 6주살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어디서 뒤풀이를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이 여러 지역의 중간 장소를 찾아주는 어플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어플로 찾아본 결과 수도권에 사는 살러는 영등포역에서 만나게 될 것 같다. 남해에 있을 아보, 석, 훈과 같이 만날 때는 전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두가 양해해준 덕분에 나는 가장 큰 원추리방으로 짐을 옮겼다. 갑자기 넓어진 시야와 쾌적한 공간에 짐을 푸르기도 전에 꿀 같은 낮잠을 즐겼다. 푹 잠들어버려서 깰 시간도 놓쳤다. 체력이 풀 충전된 채로 저녁을 맞이해버렸다. 아무리 들썩거려도 텐션이 낮아지지 않았다. 같은 시간에 잠들었던 문은 냅다 센터를 뱅뱅 뛰어다녔다. 자연스럽게 텐션이 높은 문과 내가 있는 방으로 살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화려한 댄스파티를 열었다. 어젯밤 밖이라 목소리를 줄이고 놀아 아쉬웠던 차였다. 스피커 소리를 듣고 점점 사람이 늘어났다. 거의 3시간 동안 다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아주 신나게 놀았다. 중간에 훈이 회의하다 말고 올라와서 현란한 색조명까지 설치해줬다. 수학여행 중에서도 가장 재밌다는 그 마지막 밤 분위기였다.           



6월 30일 수요일

 일어나자마자 별안간 방 짝꿍들과 함께 손톱을 깎았다. 한데 머리를 모아 앉아 아무 대화 없이 톡톡 손톱 깎는 소리만 났다. 이 익숙한 일상이 재미있다. 오후에 훈, 석의 미팅 가는 차를 얻어 타고 남면에 다녀왔다. 다리가 불편하니 그냥 걷던 길, 그냥 들어갔던 카페도 어려운 장애물 경주 같았다. 3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땀 뚝뚝 흘려가며 갔다. 옆에서 응원해준 사월과 금이 없었다면, 그냥 길바닥에 주저앉아 훈과 석만 기다렸을지 모른다. 카페 앞 높은 계단에 다리에 힘이 풀려 꽈당 넘어지기도 했다. 건강한 하루가 엄청 소중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면서 누군가에게는 이 사소한 일조차 안전하지 못했을 생각을 하니 아팠다.

 밤에는 살러방에 잠시 내려왔다가 눌러앉아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봤다. <LaLa Land>와 <Call Me By Your Name>이었다. 둘 다 이미 본 영화였지만, 두 영화의 선명한 색감이 남해의 여름에 잘 어울려서 또 좋았다. 두 번째 영화를 볼 때에는 졸음이 밀려와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 금이 2층까지 데려다주려고 벌떡 일어나길래 괜찮다고 했다. 내 똥고집에 결국 금은 1층에 우두커니 서서 올라가는 나를 지켜봤다. 내가 방문을 열 때까지 인기척이 전혀 없다가 방문을 열자 저 아래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방으로 들어가니 류는 이미 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류는 거실에 눕고 나는 방에 누웠다. 방문을 활짝 열고 잠들기 전까지 주제 없는 막대화를 나눴다. 류는 어쩌다 보니 기혼자임이 밝혀졌는데, 알고 보니 반려인이 내 모교 출신이셨다. 그것도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학과! 류와 류의 반려인은 결혼식을 올릴 때 좋아하는 책들을 가져와서 식장 구석에 진열했단다. 갖고 싶은 책이 있는 하객들에게 이름을 남기게 했고, 결혼식이 끝나고 그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책들을 선물했다고 한다. 멋진 이벤트다. 단 둘이다 보니 류는 더 덤덤하게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내가 가장 바라는 모습으로 반려인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류가 결혼을 결정한 마음가짐도 정말 멋졌다.

 오늘 여러모로 어려운 결정 투성이었다. 한 전화통화에 쫓겨 원치 않은 시간을 약속했고, 어이없는 부주의 때문에 먼저 집에 가야 할 것 같다.



7월 1일 목요일

 아침부터 방 짝꿍들이 방으로 바퀴의자와 음식들을 챙겨 왔다. 이제 하루 종일 방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살러들이 무언가 먹을 때마다 전부 우리 방으로 올라오는 덕분에 나가지 않고도 항상 복작복작하게 식사시간을 가진다. 오늘은 중의 눈썹 문신 프로젝트 첫 시간이다. 과정을 궁금해했더니 한이 틈틈이 영상통화를 걸어 실시간 중계를 해줬다. 가만히 훈의 눈썹이 진해지는 걸 보는데 마치 이 2층짜리 센터가 하나의 큰 마을처럼 느껴졌다. 저녁에는 석이 다짜고짜 "독일마을 갈 건데 너 같이 가야 해."라고 했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독일마을은 어둑해져서야 더 생기가 넘쳤다. 마을 이름 때문인지 실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이 순간이 왠지 외국 야시장에 있는 것 같았다. 팬데믹 시기에는 선선한 바람에 맛있는 음식, 시시콜콜한 대화가 더욱 소중하다.



7월 2일 금요일

 원추리방의 작은 식탁이 쉴 새가 없다. 항상 먹을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챙겨 올라오는 살러들에게도,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양해해주는 룸메이트들에게도 고마움이 가득하다.



7월 3일 토요일

 일어나자마자 종일 방에 있겠다 선언했다. 사실 며칠 동안 내내 마음먹었지만 가벼운 엉덩이가 문제였다. 오늘은 비가 오기도 하고 멀쩡한 왼쪽 다리에 근육통이 생기기 시작해서 소파에 콕 붙어 휴일을 즐겼다. 같이 남아있던 문이 이불에 돌돌 말려있길래 냅다 얼굴에 낙서해도 되냐고 물었다. 문은 역시나 당연히 오케이 했다. 현, 중과 함께 얼굴 도화지에 이것저것 그리는데 문이 자신의 얼굴을 찍더니 포스터를 뚝딱 만들어냈다. 포스터가 너무 귀여워서 낄낄 웃으며 내용을 채웠다. 뒤늦게 우리 방으로 온 한과 사월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오전부터 방에 남아있던 홉과 류는 노트북으로 개인작업을 했다. 각자의 일에만 빠져있지만 기꺼이 한 방에 모여있는 풍경을 보니 정말 가족 같았다.



7월 4일 일요일

 어제 늦은 저녁부터 오늘 이른 새벽까지 홉과 수다 떨었다. 넓은 거실을 두고 문까지 닫은 작은 방, 그것도 한 이불에 오순도순 붙어 누워있는 우리가 꽤나 귀여웠다. 아침 새소리를 알람 삼아 일어나서는 꿈뻑꿈뻑 눈만 깜빡이는데, 홉의 발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주 푹 잠들어 있는데도 발이 까딱까딱 박자를 타며 움직였다. 이불 밖으로 쏙 나온 발이 춤을 추는 게 너무나 깜찍해서 입 밖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일어나자마자 처음 내는 목소리가 웃음이라니, 행복하다.

 살러방에서 마감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이 후다닥 뛰어와서는 내가 앉아있는 바퀴의자를 밀어 밖으로 끌고 갔다. 깜짝 놀라 소리 지르며 우당쾅쾅 밀려 나와보니 눈앞에 완벽한 무지개가 떠있었다. 본 적도 없으면서 매번 빨주노초파남보 그려오던 반원의 무지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무지개는 다양성을 표현하는 심벌로 자주 쓰인다. 직접 마주하니 투쟁심 같이 흥분되는 마음이 들기보다는 몸이 느슨해지고 긴장을 확 풀리게 만들었다. 평화로웠다. 사진 찍을 생각도 못하고 한참을 구경했다.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하길래 그제야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곧바로 할머니와 부모님께 전송했다. 문득 내가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지 느끼게 됐다.     


작가의 이전글 남해일기 2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