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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올디 Aug 19. 2024

입사-(2)

대기업 입사의 현실

2017년 어느 날.

꿈에 그리던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입사 대기를 하는 동안 참 많은 축하를 받았던 것 같다.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 그리고 인턴의 시작을 도와주신 K교수님, 내 친구들과 선, 후배들. 과분할 정도의 축하를 받으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입사를 기다렸다.


입사 전 이런 저런 걱정, 설렘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내다, 대망의 입사일이 다가왔다.

서울 모 처에서 모여서 같은 연수원을 배정받은 동기들끼리 회사 연수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내 입사의 첫걸음이었다. 새벽부터 쭈뼛쭈뼛 모임장소로 가니, 나와 같은 신입사원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어색하게 버스를 타고 연수원으로 향했다.


연수원에서는 방을 임의로 배정해주었고, 함께 연수생활을 할 팀을 정했다.

처음으로 팀 끼리 모여 지도 선배와 함께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보통 자기 취미, 특기, 출신지, 나이 등 기본 정보들을 소개했는데, 그 간단한 PT에서도 눈에 띄는 동기들이 꽤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완벽한 PT 자료들과 발표 태도에서 나는 벌써 주눅들어버렸다.


돌이켜보면 내 고민은 이미 연수원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연수원 첫번째 활동인 자기소개에서부터 벌써 벽이 느껴지는 동기들이 꽤 있었으니 말이다. 본능적으로 연수원에서부터 나는 나의 역할을 찾아해멨다.

연수원에서는 다양한 활동들을 했다. 개인 활동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팀 단위 활동이었다. 나는 팀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연수원 내내 최선을 다했다.

연수원에서는 당연하게도 내 직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활동들만 계속 했다. 나는 현장 업무를 주로 하는 직무였는데, 연수원에서는 대부분 자료를 만들어서 발표를 하는 활동들을 주로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발표는 많이 해보았었는데, PT 자료 작성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나에게 연수원 활동은 일종의 벽이었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이 거의 없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내 직무와 관계 없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라는 핑계로 내 자존감을 지켰었던 것 같다. 연수원 생활은 재밌었고, 추억도 많았지만, 동시에 많은 고민을 가져다 주었다.

시간이 흘러 부서 배치를 받고, 다시 낯선 환경에 놓여졌다.

다양한 연수를 받는 기간 동안 꽤 가까워졌던 동기들은 다 뿔뿔히 흩어지고, 다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세계에 가버린 것이다. 

그래도 신입사원이 왔으니 약간의 관심을 보여줄 줄 알았는데, 선배들은 놀랍게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몇 분의 부장, 차장, 과장님들만 약간의 관심을 보여주실 뿐, 함께 일해야 하는 대부분의 선배들은 다들 각자의 업무를 하느라 바쁜지 내게 큰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입사와는 너무 달랐다. 현실은 훨씬 더 차가웠다. 내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현장 부서에 대졸자가 많이 없었고, 대졸자가 배치받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입사 초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왜 대학나와서 여기왔어?'

'대학까지 나와서 이것도 몰라?'


였다. 준비없이 입사한 내게 회사일에 대한 기본지식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출근해서 그저 선배들을 졸졸 쫓아다닐 뿐이었다. 입사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현장 정리와 공구 가져다 주기 2가지 였다.

이미 스스로도 부족한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위에 언급했던 얘기를 들으니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다.

입사만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릴 줄 알았던 취준생 시절과는 다르게 입사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기업 입사와는 거리가 아주 먼 입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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