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보지 않으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역지사지의 자세

by 정올디

최근에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가 엄마가 말씀하시길

'어떤 의사가 그러는데, 아파보지 않으면 아픈 사람 마음을 알 수가 없다'라고 하는데 너무 공감되더라.

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보니 꽤 많은 사건들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완벽히 건강한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가 각자의 아픈 부분이 있고, 그것을 티 내지 않을 뿐이다.


나는 회사에서 현장업무를 맡는 부서인데,

아무래도 일이 고되다 보니 종종 어린 친구들이 처음 듣는 병명을 들이밀며 현장업무에서 배제되는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지만

여러 번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또 꾀병을 부리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부서에 한 후배는 '이석증'이라는 병을 어릴 때부터 앓았다고 했는데,

현장에서 쓰러진 적도 있고, 길을 걷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친구는 현장업무에서 배제되었다.


참 이상하게도 현장업무에서 배제되고 나니, 이 친구는 더 이상 쓰러지는 일이 없었다.

아니꼽게 보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 친구는 부서 내에서 잉여인력으로 분류되어서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이 친구의 근황을 들었을 때, 이 친구는 아예 현장업무를 안 하는 부서로 갔음에도 종종 쓰러지곤 했다고 하더라.


엄마의 말과 이 친구가 오버랩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앓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병이라고 해서

그것이 꾀병이거나 안 아픈 병은 아닐 텐데.

너무 내 위주로 생각했나 싶었다.


비단 병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타인에 대한 이해는

사실 내 기준에서 타인의 행동을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끼워 맞췄을 뿐이다.

진정한 이해는 나와 모든 상황이 일치하는 상대방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나는 어설프게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노오력으로 대표되는 세대 간의 갈등도

기성세대가 어린 친구들의 상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그들이 젊은 시절에 빗대어 지금의 세대를 바라보며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식의 논리를 펼칠 때 발생했다.

과거와 지금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또한 MZ세대가 기성세대를 흔히 '꼰대'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심하면 혐오까지 하지만

기성세대가 어떻게 살아왔고, 그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가게 되었는지를 안다면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갈등은 무지에서 온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완벽히 알 수 없고, 그렇기에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고, 그들이 나름대로 하는 노력에 대해 폄하할 수 없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행동을 함부로 비난하면 안 된다.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할 것이 아니라 존중해야 한다.

그 사람의 행동 그 자체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데에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존중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호 간의 존중은 많은 갈등을 없앨 수 있다.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존중은 필수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나오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