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역사의 쓸모>에서
나를 나로 만드는 사실, 혹은 역사에 대해
‘역사’란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해석의 총합이라는 정의를 들었다. 따라서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실은 전부 역사가 될 수 없고, 해석자의 선택을 받은 사실만이 사건이 되어, 역사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기에서 선택을 받지 못한, 그러니까 ‘사건’조차 되지 못한 채로 흩어진 무수한 사실들에 대해 나는 잠깐 생각했다. 이를테면, 처음 언어를 사용한 사람들이 주로 입에 올렸던 대화 주제 라든지. 그날 먹은 저녁 식사의 맛은 어땠는지. 그들이 자주 자신을 내주게 만든 불안은 무엇이었는지. 한없이 평범한 사람들의 지극히 사소한 사실들. 역사, 사건 같은 거창한 단어와 거리가 한참 먼. 시간이 흐르며 한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면, 그곳은 어쩌면 이런 숱한 사실들의 터 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사실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엄마에게서 태어났듯이, 역사의 젖을 물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랄 수 있는 개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역사의 중요성에 비해 개인의 가치는 종종 무시받는 듯한 느낌이다. 가능하지 않은 구분법임을 알면서도 시도해본다면, 역사는 공동체적이고 사실은 ‘나’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공부하면서 무엇이 (공동체의) 역사로서 가치를 지니는지 배웠으면서도, 나를 ‘나’로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소한 일(사실)을 ‘사건’이라고 호명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버린 건 아닌지.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고요해서, 아예 인지조차 못한 것은 아닌지. 결국 이 보잘것없는 논의의 결을 맺으면 이런 문장이 되지 않을까. 나는 역사를 배우고, 사실은 내게 스민다. 후줄근하고, 거무튀튀한 때가 잔뜩 묻어있는, 내 평범한 일상의 사실들은 도저히 거절할 겨를도 없이 스며든다. 배우려 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그런, 나.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라는 책은 이런 구분법을 허무는 데 탁월하다. 말만 들어도 몹시 거창한 ‘역사’(공동체)를 끌고 내려와 ‘개인’이 팔을 뻗어 함께 겯을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주게 만든다. 다소 투박하지만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1597년 원균의 칠천량 해전 대패, 이순신의 명량해전 대승, 원균은 나쁜 놈, 이순신은 영웅, 이런 평면적인 시선으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 이순신은 싸워서 이기는 장수가 아니에요. 이겨놓고 싸우는 장수입니다. 빈틈없이 전략 전술을 세워놓고 백 퍼센트 확신이 들어야 움직이는 완벽주의자예요. 23전 23승을 할 수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조정에서 하라는 싸움은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이순신은 조정에서 입수했다는 정보가 거짓임을 눈치채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
이순신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원균입니다. 원균도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이순신이 왜 그랬는지 말입니다. 일본의 정보가 거짓인 것도 알고 패배도 예감했어요. 심지어 처음에는 이순신처럼 좀 버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칠천량으로 갑니다. 군인이니까 명령을 받았으면 가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그리고 일본에 대패합니다. …
원균을 옹호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역사 속 인물의 선택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뜻이죠. 그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세요. 꿈이 뭐예요? 왜 그런 일을 했어요? 그 선택에 후회는 없나요? 꿈이 이뤄진 것 같나요? 이렇게 물어보고 답을 상상해보는 겁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내 삶에 대입시켜서 답해보는 거죠.” (최태성, ‘역사의 쓸모’, 다산북스, 2019)
“정약용은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었으나 능력을 펼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외척이 날뛰고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판치는 세상, 인재를 알아주기는커녕 짓밟는 세상이 원망스럽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그게 평범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정약용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해요. 바로 책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 조상이 큰 죄를 지어서 그 자손들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집안을 폐족이라고 해요. 정약용은 자식들에게 가문이 몰락한 상황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금방 나아질 거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관직에 나갈 수 없는 폐족일지라도 선비의 기상을 유지하는 길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폐족끼리 무리를 짓지 말 것, 과일과 채소를 키우고 뽕나무를 심어 가난에서 벗어날 것, 벼슬을 하지 못하더라도 벼슬하는 사람처럼 나라와 세상을 위해 살 것.
마지막으로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당부했던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내용들은 역사가 내게 스미도록 만든다. 나를 그 현장으로 데려가는 동시에, 역사 속 그를 현재 이곳으로 불러와서, 나보다 먼저 고뇌했던 한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처럼 똑같이 불안해했고, 나처럼 자기중심적이었으며, 나와 같이 위기에 빠지기도, 혹은 좌절할 때도 있었던 사람들. 그들에게 마음을 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흘러가도, 아직 나는 ‘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사실이 불만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내가 ‘역사적인 인물’이 되고 싶어 했던 바람 같은 것도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불만은 조금씩 안도감으로 부드럽게 바뀌었다. 오늘, 내가 나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내 어딘가가 특별히 출중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한없이 사소한 ‘사실’들을 그럭저럭 잘 통과해주어서 고맙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일뿐이어서,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박준의 글이 무척 위로가 된다.
내 마음의 나이
바람이 차다. 숨을 깊게 들이면 코에서부터 가슴까지 냉한 기운이 감돈다. 기도가 이렇게 연결이 되어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감각이 새삼스러우면서도 재미있어 몇 번 더 깊은 숨을 쉰다. 곧 기침을 한다.
살아오면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맞이해야 할 때가 많았다. 부당하고 억울한 일로 마음 앓던 날도 있었고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에는 스스로를 무섭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무겁고 날 선 마음이라 해도 시간에게만큼은 흔쾌히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 여긴다. 오래 삶은 옷처럼 흐릿해지기도 하며. 나는 이 사실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른다.
다시 새해가 온다. 내 안의 무수한 마음들에게도 한 살씩 공평하게 나이를 더해주고 싶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186, 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