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책 <나이 듦의 심리학>에서
당신의 자아에 안부를 묻습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조건이 능동태에서 수동태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지팡이를 의지해서 걷는다든지, 틀니의 도움으로 먹는다든지. 생존의 문제도 마찬가지여서, 스스로 수입활동을 할 수 없는 그들은 의탁 기관에 들어가거나, 요양시설에 들어가기도 한다(돌봐줄 가족이 없으면 더욱 그런 상황이 될 것이다). 거기에서도, 그들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이런 면에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늙음’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림’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피츠제럴드의 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을 영화화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설정은 흥미롭다. 극 중 벤자민 버튼은 노인으로 태어났다가, 갓난아기가 되어 죽는다. 그가 늙어간다는 것은, 점점 어려지는 것과 같다. 소설과 영화의 동일한 설정은 노인과 갓난아기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는 원작과의 차이점도 있다. 원작 소설에는 시간이 흐르며 벤자민 버튼의 육체와 정신이 함께 어려지지만, 영화에서 거꾸로 흐르는 것은 그의 육체만이다. 소설에서 그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 “댁이 내 아버진가?"라고 물어,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육체만 늙게 태어났지, 정신은 갓난아이 같아서 응애응애 하며 울 뿐이다.
아무래도 의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한 쪽은 영화보다 원작 소설 쪽일 것이다. 노인의 신체로 태어난 갓난아기는 아무래도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이라고 여길 수 있을 테니.(장애를 가진 아이를 돌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정신까지 늙은 아기는 당혹스럽다. 소설은 이 점에서 독자에게 유용한 생각거리를 안겨준 셈이다. 한 사람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거꾸로 그가 나이를 토해내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소설은 허구의 방식으로 인간 삶에 대한 진실의 단면을 포착해낸다.
『나이 듦의 심리학』의 저자 가야마 리카는 여기에다가 인간의 심리까지 늙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육체가 그렇듯, 심리 상태까지 저도 모르게 수동적인 방식에 길들여질 수도 있다고. “이 나이에 더 이상 폐 끼치지 말고 은퇴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나이에 무슨 멋진 패션이에요?”, “이 나이에 무슨 연애예요?” 같은 질문들은 ‘그 나이 다움’에 자신의 삶을 맞추는 수동적인 삶의 형태라는 것. 릿쿄 대학의 현대 심리학부 교수이기도 한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육체는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저항하자고. 쉽게 순응하지 말고, 좀 더 주체적인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살라고.
여기까지는 다소 나이브한 내용일 수도 있겠다. 책을 읽으며 나는 전혀 다른 부분에서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챕터 제목은 이렇다. “몇 살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 자아 찾기”. 여기에서 한 대목을 소개한다. “아무튼 갑자기 ‘자아 찾기’에 눈을 뜬 60대 여성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예전 같았으면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 자아 찾기 같은 건 젊은 애들이나 하는 거잖아요’라면서 넌지시 ‘연령제한’이 있음을 내비쳤겠지만, 앞서 말한 바디 케어 박람회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요즘의 ‘자아 찾기’는 오히려 50~60대 여성이 중심이다.” 저자가 소개한 에피소드에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빠졌다. 60대의 자아 찾기라니. 그 많은 일을 겪고 난 뒤에도 아직 진정한 자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아니, 어쩌면 진정한 자아는 평생이 다 지나도록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 순간, 그들이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들이 통과해온 60년은 ‘진정한 나’와는 상관없는 삶인 것이란 말인가. 저자는 다음의 구절로 그런 풍조들에 대해 호된 지적을 내린다. “아무리 가혹한 사건이 많았던 인생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전부 잘못됐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인생은 없다. 인생은 물론 힘든 여정이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하나 대처해가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한숨 돌리며 긴 걸음을 걸어왔을 것이다.” 자아란,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온 당신의 삶에 있다는 저자의 따뜻한 충고에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아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는 60세의 마음을 떠올리면, 아득해지고 만다. 그/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왔을까. 그들은 정말 지금까지의 삶은 진짜 내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 걸까. 그래서 그/그녀는 이태껏 잘못 살았다고 자책하며 밤을 새웠을까. 스스로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진 않았을까. 이대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영원히, 자신의 삶으로부터 결별하고 싶진 않았을까.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전부 잘못됐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인생은 없다”라는 저자의 조언보다, 이제라도 ‘자아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느라 땀 흘리는 60세의 얼굴에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직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은 얼굴이다. 결코 수동태가 아닌 얼굴,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당신 자아의 단면이라고. 당신의 꿈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의 자아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어딘가에서 만나면 시원한 음료를 드리며 이렇게 안부를 물어주고 싶다. (2019.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