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표정은 천진하다

책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에서

by 이정식



영어 'child'는 뒤에 어떤 글자가 붙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가령, 'childish'라고 하면 '유치한'이고, 'childlike'라고 하면 '천진한'이라는 의미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글쎄, 모르긴 몰라도 문학의 영역에서만큼은 '유치한'과 '천진한'의 차이는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유치한 소설은 결코 천진할 수 없다. 반대로, 천진한 소설은 결코 유치하지 않다. 이 소설을 쓴 작가 스즈키 루리카 옆에 'childlike'(천진한)라는 형용사를 붙여주고 싶다. 그건, 그녀의 나이가 14살이기 때문이라서가 결코 아니다. 이야기를 건네는 그녀의 표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예전에 엄마랑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좋을지 얘기한 적이 있다. 부자가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벌레가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먹고 배설하고 그냥 사는 거야. 삶의 보람이니 의무니 과거니 장래니 일이니 돈이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단순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겠어.' 나는 하나도 안 좋을 것 같지만 벌레든 동물이든 괜찮으니까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문장에서 나는 작가의 천진한 표정이 떠오른다. 또 있다.


"엄마가 파리처럼 손을 비비며 배에 대고 머리를 조아렸다. 두 사람은 햇과일이라면 유난히 고마워한다. 햇과일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믿는다. 툭하면 '이건 햇과일이라니까'라고 감사하면서 먹는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소리를 하며 먹었으니까 두 사람의 수명은 아주 길어졌을 것이다(삼백 살 추정)."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눈에 선한 것 같은 천진함. 어린아이 같은(like-child) 얼굴로 짓는 천진한(child-like) 표정.



이 작가는 대체로 천진하다가 아무 기척도 없이 문득 어른의 표정을 짓는다. 영문 없이 집을 나간 아빠를 그리워하는 하나미의 혼잣말이다.


"'영국에는 '장식장 안의 해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나 비밀로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의미지요.' 우리 집 장식장의 해골은 아빠였을까?"


"빈 그릇과 접시를 정리하며 기도 선생님이 했던 말을 또 떠올렸다. '장식장 안의 해골'. 어느 집이나 비밀로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 집에 장식장이라고 부를 만한 훌륭한 것은 없지만, 이 찻장은 쓰기도 편하고 둘이 사는 집에 딱 적당하다. 유카네 집의 장식장은 어떤 걸까? 넓은 단독주택이니까 장식장도 멋지겠지? 그래도 그 안에는 해골이 있다. 우리 집은? 엄마가 으음 하고 뒤척였다. 밤에 녹아들 듯이 비가 고요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풀 냄새가 났다. 우리 집 해골은 이 찻장으로는 다 담지 못할 수도 있다."


꾸역꾸역 삼키려 해도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정서가 문장에 깊이 배어있다. 이것이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아무리 손 뻗어도 가닿지 못하는 삶의 불가해함을 맞닥뜨릴 때, 아이의 얼굴로 무심하게 짓는 어른의 표정.


작가가 어른의 표정을 짓는 구절은 또 있는데, 어느 저녁,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느낀 신야가 (아마도) 삶을 포기하려고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볼 때였다. 마침 하나미와 그녀의 엄마가 어딘가 망설이는 신야를 발견한다. 이들은 신야를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는다. 태연하게 이렇게 따뜻함을 건넬 뿐이다. "신야, 거기서 뭐 해? (중략) 오늘 초밥 많이 사 왔는데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 먹자!"라고. 이런 무심함은 너무나 따뜻하다. 그 순간 신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의 소중함'같은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가 건네는 온기'같은 것이었을 테니. 하지만 신야의 선택을 그렇다고 끝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다. 하나미의 엄마는 신야에게 이렇게 말한다.



"배고팠지?'

"네?"

"다리 위에 있을 때."

"아, 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다나카의 엄마가 깊은 눈동자로 나를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우리가 먹은 음식을 준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생명을 이어주고 살게 해주는 사람이야.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이나, 먹을 것을 살 돈을 벌어온 사람이나."

- 스즈키 루리카,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북스, p.266.



거창한 삶의 목적, 의미 같은 것 없이도 땅에 단단히 발 디딘 사람의 말이다. 이 소설은 아이의 얼굴로 무심한 어른의 표정을 짓기도 하며, 어른의 얼굴로 천진한 아이의 표정을 짓는다. 유치하거나 심각하지 않게, 또 냉혹하거나, 호들갑 떨지 않은 천진한 얼굴. 14살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 안에서 즐겁게 논다. 문득,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비슷한 표정을 짓진 않았나 생각했다. (2019.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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