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으로써 이해하려는 애씀

김연수, <시절 일기>에서

by 이정식

씀으로써 이해하려는 애씀



일기 쓰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독특한 일기 쓰기로 유명했는데, 그는 이런 식으로 일기를 썼다고 한다. (직접 인용하기가 길어 대략적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문장을 완성하지 않거나 문장 구조에 상관없이 생각나는 대로 단어를 나열

2) 한 문장을 열 줄이 넘도록 쓰거나 문법적으로 꼭 필요한 구두점, 의문부호, 쉼표 등의 부호를 생략

- (김연수, ‘시절 일기’ 중 ‘카프카의 일기’에 관련된 부분 재인용.)


그러니까 카프카는 일기에 대해 어떤 형식도 두지 않고 제멋대로 썼다. 어순이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나는 단어를 ‘의식의 흐름대로’ 적었다. 하기야 일기에 형식이 필요할까마는, 글에 비문은 없는지, 문장의 주술 관계는 어긋나지 않았는지,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글에 잘 담겼는지 같은 것을 곧잘 신경 쓰면서 일기를 적었던 내게 이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김연수 작가는 카프카의 독특한 일기를 소개하면서, 일기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적었다. 일기는 “읽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글쓰기”라고.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 생각하니 글쓰기가 종종 괴롭게 느껴지는데, 누구도 읽는 사람이 없다 생각하고(나 자신을 포함해서) 마음대로 쓰면 보다 글쓰기가 쉽게 느껴진다고, 그러니 일기는 자주, 마음 가는 대로 쓰라고 그는 적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일기를 쓸 필요가 있을까. 글쓰기에 대해 이 내용은 끄적이기를 좋아하거나, 쓰는 일을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텐데, 그다지 쓰는 일에 관심도 없는 데다가 그럴 필요성마저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내용이 과연 좋은 정보인 걸까.


나는 ‘무척’ 좋은 정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내용을 참고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적었으면 좋겠다. 몇 개의 간단한 단어만으로 쓰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드러낸다면 무엇보다 훌륭한 글이라고 나는 믿는다. (자전거를 타고 싶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라면을 끓여먹은 날에는, 이런 일기를 쓸 수도 있겠다. “비, 자전거, 라면.”) 글의 훌륭함은 매끈한 문장이나 절묘한 비유 같은 것에서 비롯된다기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한가에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기는 내가 나에게 진실한 글이다. 내가 나에게 진실한 날이 늘어갈수록 나 자신에 대한 이해 역시 더욱 깊어질 것이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그동안 무수히 놓쳐버린 감정, 해독되지 않은 생각을 적어 내려감으로써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말처럼….” 그러니까 자기 이해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사람이 타인의 심정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불신하는데, 다만 근사치에 간신히 다가갈 수는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타인의 심정을 내 심정에 빗대어 유추함으로써 타인을 겨우 이해한다. 그러니 나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을수록,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범위 역시 늘어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니까 일기란, ‘자기 이해’ 그리고 ‘타인 이해’를 씀으로써 도달하려는 애씀이다. 나는 여기다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일기를 쓰면서 우리는 ‘세계 이해’를 할 수 있다. 세계라고 해서, ‘글로벌 어쩌고’, ‘21세기형 인재 저쩌고’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부조리하다. 불합리하고. 누구든 부조리한 세계를 경험하면 당혹스럽다. 크리스천이라면 더욱 당혹스럽다. 나를 인도하고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호의적이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때, 이해되지 않는 세상의 일을 일기에 써보는 것이다. 애써서 납득하려 들지 말고, 이해되지 않음 그 자체를 적어보자. 때로 이해는 이해되지 않는 어렴풋한 것에서부터 오기도 하니까.


책에 실린 글은 김연수 작가가 지난 십 년의 시간 동안 썼던 여러 편의 산문이다. 어떤 글은 기사나 지면에 실리기도 했고, 개인적인 노트에 적었던 글이 이 책에 처음 실리기도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혹은 이 세계에 일어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뭔가를 끄적이는 일이었다. 이런 끄적임이 한 편의 글로 완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게 어떤 글이든, 쉽게 쓰여지는 글은 없다.”(8쪽) 그러니까 그는 끄적임으로써 나 자신과 타인을, 그리고 세계를 이해해보려 한다. 그에게 번뜩이는 통찰이 있어서도 아니고, 모든 것을 설명할만한 해답이 있어서도 아니다. 불가해한 것을 대면하기. 대면한 것을 끄적이기. 그가 한 것은 이게 전부다.


사소한 글쓰기가 때로 거대한 세상을 마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김연수 작가는 책을 통해 증명한다. 일기를 쓰면서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적어보자. 욥처럼 글을 통해 하나님께 의문을 던지기도 해 보자. 불만도 좋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세계에,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보자. 그것이 이 세상의 어둠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나있는 균열의 틈으로 하나님의 빛 한줄기가 내리쬘 것을 믿는다. 한줄기 빛은 혹독한 세상을 넉넉하게 안아줄 만큼 따뜻하다는 것까지도 믿는다. 이 믿음이 헛되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2019.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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