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여행기 #1
불안한 여행기 #1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함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제주도 왕복 항공권을 구입한 다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우황청심환을 구입하는 일이었다. 두 달 전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전에 없던 것을 갖게 되었는데, 그건 불안이었다. 심한 난기류 때문에 나는 한 시간 오십 분의 시간을 고통에 바쳤고, 고통은 내게 불안을 내려주었다. 항공시간으로 캄보디아의 4시간, 말레이시아의 6시간, 터키의 9시간을 다녀온 적 있던 나는 이제 제주도의 50분을 앞두고 불안해했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하고, 끝내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할 때의 달콤함에 대해서 누가 말했더라. 우황청심환을 보면서 나는 의문했다. 그 말은 자신이 무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냐고. 정말 파괴된 사람은 그 말을 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굳이 그 말에 대해 반박을 하고 싶던 것은 아니었는데, 불안이 닥쳐오니까 내 사고방식도 자연스레 부정적인 회로로 재조립된 것 같았다.
사실 맞다. 당신의 생각이 옳다. 나는 겁쟁이다. 자신이 겁쟁이일 수밖에 없는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를 제기한, 지금까지 겁쟁이의 변명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았다 나는. 다 커서도 겁쟁이인 나는 출발 전날 밤까지 인터넷 검색창에 ‘비행기 터뷸런스’, ‘비행기 불안’, ‘항공 불안’ 같은 단어를 검색했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들썩이는 채로 잠자리에 눕자 모든 것이 괴로워졌다. 나는 왜 이토록 겁쟁이인지. 동남아, 아프리카, 유럽, 미국을 잘도 여행하는(그 넓은 태평양 위를 건너간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손에 땀이 난다!)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나는 고작 50분의 항공이 불안하게 느껴지는지, 스스로가 무척 한심했다. 왕복항공권, 이미 예약해놓은 게스트하우스, 어렵게 예약한 이타미 준의 수풍석 박물관 관람, 3박 4일간의 렌터카 대여 등의 비용을 생각하면서, 50분의 공포보다 그 많은 돈을 전부 날리는 것이 실은 더 무서운 일인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더 큰 겁을 줘서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확실히 이 불안감은 정상적이진 않았다. 이제껏 이런 불안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을 생각만 해도 맥박이 빨라지면서 손이 떨리고 땀이 났으니까. 그러나 어쩌랴. 불안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갈 수밖에. 우황청심환을 구입한 것은 바로 그 이유였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 검색의 도움을 받았다. ‘비행기 불안’이라고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같은 두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많이 있었다. ‘비행기 타기가 겁나요’, ‘저는 두 발이 공중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요.’. 이런 글에는 댓글도 이십 여개가 넘게 달렸다. ‘저도 겁나서 여행도 못 가고 있어요.’ 라든가. ‘저도 너무 안 가고 싶은데 출장 때문에ㅠㅠ’ 라든가. 같은 증상을 말하는 댓글 아래쪽에서 글 작성자는 이런 댓글로 마무리 지었다. ‘여러분, 저 정말 못 갈 것 같았는데 저처럼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고 용기를 얻고 씩씩하게 다녀오려고 합니다.’ 어떤 위로는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는 것에서도 올 수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이런 글을 보면서 오히려 나도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그리고 그제야 검색어를 바꿀 수 있었다. ‘비행기 불안’에서 ‘제주도 맛집’으로.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노트 한 권을 준비했는데, 그곳에 여행의 일정과 계획, 제주도 지도, 동선, 스케줄 등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그러다가다도 불안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불쑥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걸었다. 넉넉한 구름이 낀 하늘을, 단단한 나무를, 서늘한 공기를 하염없이 감각했다. 모든 것이 복잡했다. 내가 환기되고 싶었다.
걸으면서 나는 불안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감각이 아니라 이성으로. 막연한 불안의 감정보다는 명료한 불안의 윤곽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나자 조금씩 그것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이 실은 욕망의 반대 모습이라는 것과 불안이 오히려 욕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비행기를 타는 것(여행하는 것)에서만 불안한 게 아니라, ‘여행을 안 가는 것’에서도 극심히 불안해하고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불안하면서도) ‘여행하기’를 애쓰고 있다는 것.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나는 제주도 여행의 근본적인 이유를 돌이켜 봤다. 제주도의 멋진 ‘오름’들, 사방으로 아득한 푸른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그걸 꼭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굳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가려고 했나. 나는 왜 그토록 불안을 견디면서까지 여행을 가려고 하는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동일한 책에서 김영하 작가는 이런 문장을 남겼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예기치 못한 것, 내 ‘뜻밖’의 것이 나를 흔들어주기를, 비루한 내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기를. 불안에서 한 걸음 떨어져야 불안의 윤곽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내 삶으로부터 조금의 거리를 두어야 ‘내 삶’의 전망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이제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옳고 아름다운지를 나는 그곳에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렵지만, 그 못지않게 어제의 관성대로 살아가는 내일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살아온 시간 동안 쌓여온 내면의 먼지(무수한 후회와 회한)를 털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었다. 불안을 추적하다가 보니 내 욕망의 윤곽마저도 어렴풋이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출발 당일 오전, 비행기 출발 시간을 두 시간 앞둔 8시에 나는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전자 기기로 셀프 체크인을 한 뒤 공항 로비 소파에 잠깐 앉았다. 공항 파리 바게뜨에서 산 빵과 커피를 먹었다. 전날 잠을 설친 탓에 몸이 나른했다. 그때 안내 방송이 나왔다. 제주도로 갈 승객은 지금 탑승 수속을 밟으라고. 그러자 내 몸은 다시 땀범벅이 되었다. 갑자기 불안이 확 올라와 내 몸을 덮었다. 숨이 막혔다. 얼굴과 손에서 땀이 제멋대로 흘러내렸다. 가방에 있던 우황청심환을 나는 기억하고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붙잡고 한참을 보고 있었다. 나는 정말 여행을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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