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 20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 2023>, <백 투 더 퓨처: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 탐험기>
모처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찾았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오늘 관람한 전시 중 각인된 것을 적어볼까. 전소정 작가는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 <SYNCOPE>를 만들었는데,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또 담담하게 읊조리는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인상깊었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는 말했다. 연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중력'을 경험하게 된다고. 그건, 일부로 힘을 주거나 뺀다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신체의 무게추를 내리면서 적절한 힘으로 현을 뜯는 순간 힘과 힘이 맞아떨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무중력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그때는 음이 가라앉거나 가볍게 뜨지도 않고, 무중력이라는 표현처럼 어떤 무게감없이 허공 위에 올라선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 무중력이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글쓰기에 대해서라면 말이다. 글쓰기의 과정이 생각하는 나와 쓰는 나의 지속적인 동기화라고 한다면, 그 사이의 거리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부유하던 관념들이 빠른 속도로 언어라는 질서의 세계로 포획되는 순간을. 내가 적는 어휘들이 곧 내 속의 생각에 근사하게 다가서는 순간, 그때 나는 '손으로 생각하고, 생각으로 마음에 글쓴다'라는 문장을 현실로 옮긴다.
[백 투 더 퓨처: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 탐험기]라는 전시도 봤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집한 소장품을 선보이는 전시인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5년 동안의 수집작 중에서 몇몇 작품을 선정했다고. 그 선정 기준 중에 중요한 키워드는 '동시대성'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동시대성이란 선형적 시간성에서는 포착할 수 없는 이질적 시간, 선형적 시간관을 이탈하는 시간. 현재와 끊임없이 불화하는 시간이라는 개념도 갖고 있는 단어다. 말하자면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휘몰아치거나 굽이굽이 돌아 흐를 때 현실에 이질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포착하는 관념어인데, 이 개념은 그런 의미에서 아까 일별한 'syncope'의 의미와도 공명한다. 당김음(syncopation). 그 음은 시간을 당긴다. 이제 올 시간을 기다리는 자리에서 반 걸음 앞으로 마중 나가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를 현재의 시간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시간은 접히거나 구부러지고, 그 구부러진 틈에서 이질적이고 튀는 시간이 출현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희망이, 우리가 낼 수 있는 당김음의 하나의 형태가 아닐까,라고. 우리가 희망하는 건 아직 현실에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하는 동안에는 아직 나지 않은 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이루어진 것.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과 실현된 것. 그렇게 현재와 미래의 접힌 시간 사이에서, 당신과 나의 당김은은 불쑥 현실로 솟아오른다. 당신과 내가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그 찰나의 시간. (2023.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