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G. 제발트는 『기억의 유령』에서 사라지고 파괴되는 것을 애통해했다. 자연, 사람, 문명과 문화, 역사, 기억이 완전한 망각으로 가라앉는 흐름에 저항하고자, 목소리를 잃은 자들에게 음성을 건넸다. 그렇게 제발트가 망각이라는 단단하게 응고된 덩어리에 균열을 내고 1940년대에 자행된 학살과 관련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동안, 기억은 침묵을 뚫고 육성을 갖는다. 예술, 그러니까 소설의 역할은 이런 것이라고 제발트는 책에서 적었다. “예술은 기억의 공백을 메워준다.”라고. 기억의 공백을 메워주는 소설. 더 이상 말하지 못하는 자에게 음성을 건네는 예술. 한강처럼, 제발트도 돕고 싶었던 걸까. 과거를, 죽은 자를, 역사를, 시간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그들의 선의는 나에게도 연결되어 나도 도울 수 있는 것을 알아보는 일로 이번 학기를 보냈다. 아마 남은 학기도 그와 완전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도움이 가능한가. 나는 나 스스로를 의혹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 고통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가?(그 고통에 접속하는 일 또한 가능한 일인가?) 오염된 내가 선함을 가장하는 자신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닌가?
자주 머뭇거리게 만드는 자기 검열의 지독함과 예술적, 학문적으로 아직 성글게 느껴지기만 하는 글의 지난함을 통과하여 길을 내며 나아가는 중이다. 긴 침묵 이후, 글이 씌어지고 있다. 가장 느린 속도로 낙하하는 눈송이처럼. 조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