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학년 2학기>
*<3학년 2학기>는 올해 9월 개봉 예정입니다. 장면에 대한 묘사는 최대한 배제하고 글을 적었습니다.
6월 26일(목) 저녁에 열린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시사회에서 이란희 감독은 <3학년 2학기>가 기독교 영화제 시사회에서 상영된다는 사실이 그다지 의외는 아니라고 했다. 요즘 기독교 단체가 이른바 ‘혐오집단’으로 비치는 것과 달리, 기독교라는 종교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할 때는 뭉클하기까지 했는데, 그 순간 이해받은 것은 기독교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함께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모든 순서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는, 나도 이 영화가 기독교 영화제 시사회에서 상영되는 것이 퍽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나온 음식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볼까. <3학년 2학기>의 인물들이 현실을 견디는 방식은 월급보다 함께 나누는 식사에 있는 것 같다. 편모 가정으로 3형제 중 맏이인 창우(유이하)는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부재하는 아빠의 자리에 대신 들어가 경제 활동에 대한 부담을 엄마와 나눠지려고 애쓰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아이다. 창우의 엄마(강진아) 역시 오랜 시간 견뎌왔을 노동과 돌봄의 고됨을 아이들에게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둘째 동생과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막내까지 네 식구가 저마다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모였을 때 그들은 식사를 한다. 저녁시간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감독은 그 순간 이 가족에게 단출한 평화를 선물해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하고 있는 창우에게 주기 위해 학교 선생님이 가져온 햄버거도 그렇다. 창우가 부탁한 것은 맥모닝이었지만, 선생님은 그와 같은 처지인 또래 친구들의 것까지 가져왔다. 그렇게 셋이서 회사 옥상에 올라 햄버거를 나누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포스터가 되었다. 셋이 나란히 옥상 난간에 기대 햄버거를 먹는 동안, 진솔한 내면의 고민이나 삶의 애환이 오가진 않지만, 대신 그들을 묵묵하게 감싸는 적막이 내려앉는데, 이 순간만큼은 세 사람 모두 안온한 평화 안에 속한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이란희는 말보다 손의 힘을 더 믿는 것 같기도 하다. 현실의 어려움을 묘파하거나 통찰하는 식의 아포리즘 같은 말보다 ‘이것 먹어’ 쭈뼛쭈뼛 건네는 손길, 때론 말없이 슬그머니 두고 가는 마음. 그 마음의 윤곽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서툴고 다정한 손길을 통해 드러난다고 믿는 것이다. 손이, 은은한 온기의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신약학자 로버트 뱅크스에 의하면 1세기 교회의 예배 형태는 지금의 예배 형태와 사뭇 달랐다고 한다. 당시의 예배는 모인 사람들의 자연스럽고 친밀한 식사 자리였다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들이 섬기는 신에 관해 대화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위한 예배라는 것이다. 그 대화 중에는 ‘거룩하지 않은’ 말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신앙을 길게 말하는 순간에도 또 다른 자리에서 누군가의 먹는 소리도 자연스럽게 울렸을 것이고. 음식을 집느라 식탁 위를 가로지르는 손, 부족한 음식을 가져오느라 부산스러운 움직임도 함께. 그렇게 거룩과 쩝쩝이 함께하는 순간이 예배이자, 교회라고.
그러니 영화 속 노동하는 인물이 식사하는 장면은, 그들이 예배드린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신성이 거기에 감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식사 전후로 빗금을 치고, 노동의 피로와 수고가 그 시간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서, 그들은 잠시나마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을 통해 내 앞과 옆에 있는 네가 나와 아예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공유하면서, 그렇게 희미하고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면서, 아주 연한 ‘우리’가 되는 것이다. 육체를 보여주며 신성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귀중한 사례. (2025.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