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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Apr 20. 2019

거리 두는 영화를 생각하며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소중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 글에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사토루(후쿠시 소타)는 가족의 여백에 고양이를 넣었다. 병을 앓던 그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자, 반려묘 나나(목소리: 타카하타 미츠키)를 자신 대신 맡아줄 사람을 찾으러 다닌다. 여러 친구의 집을 다니며 부탁하지만 마땅하지 않고, 결국 이모 노리코(다케우치 유코)의 집으로 온다. 그곳에서 사토루의 마지막을 이모와 고양이 나나가 외롭지 않게 함께해 준다.


이 영화의 특징은 고양이를 인간처럼 그리고, 인간을 고양이처럼 표현하는 데 있다. 이것은 영화의 독특한 장점이면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보인다. 고양이를 인간처럼 표현하면, (고양이의 상황을 다룬다는 영화의 목표의식과 관계없이) 극의 형식이 (인간의 상황을 다룬) 우화로 수렴하고, 인간을 고양이처럼 표현하면 인물의 성격이 지나치게 납작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사토루가 어느 부부에게 입양되었다는 설정은 유기묘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눈을 찡그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그럴 때마다 귀여운 덧니가 튀어나오는 그의 얼굴은 마치 귀여운 고양이를 보는 듯 절로 손을 뻗어 쓰다듬고 싶다. 한편, 인간의 말을 한다고 설정된 고양이 나나는 기실 사고와 감정 모두 인간과 동일하다는 창작자의 전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이 영화의 단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신파’라고 지적하지만, 나는 다른 점을 언급하고 싶다. 인물은 사람 같지 않고, 고양이는 고양이처럼 ‘묘(猫)사’되지 않는다. 차라리 인간과 고양이가 지금보다 더 떨어져 있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야 둘 모두 산다. 인간을 더 인간답게, 고양이를 고양이답게 하는 것이 둘 모두에게 훨씬 사려 깊은 태도가 아닐까. 지금 고양이 나나는 나나대로 매력을 잃고, 사토루 역시 그 인물만의 매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점에서 영화의 목표의식을 잠깐 엿볼 수 있다.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은 부모가 되어서는 안 돼”라는 사토루의 말은, 수많은 유기견, 유기묘의 울분을 대변해주는 전언이고, 고양이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다는 설정은 동물에 대한 창작자의 공감이 얼마나 깊은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설정은 곧 창작자의 태도다. 이 태도 앞에서 나는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을 수밖에 없다.


다만 훌륭한 작품은 태도보다 거리감에 달려있다고 나는 믿는다. 분명하고 올바른 태도의 영화는 종종 지나치게 인물과 가깝다. 그럴 때 우리의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줄어들고, 창작자의 판단을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우리는 받는다. 반면 훌륭한 작품은 애매하고도 불분명한 거리로 작품과 우리를 떼어놓는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적극적으로 인물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인물을 ‘나’와 같다고 동일시하기도 하고, 때로 인물은 나와 전적으로 다른 ‘타자’라고 생각한다. 종종 상식적이지 않은 결정으로 몰락의 벼랑으로 스스로를 밀어내는 인물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이해하는데 실패한다. 그 앞에서 우리는 아득해질 뿐이다. 이 감정은, 적확한 거리를 두는 영화만이 선물할 수 있다.


때로 사토루의 얼굴을, 고양이 나나의 얼굴을 지나치게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에서 나는 영화의 성급함을 느낀다. 우리 눈 앞으로 인물의 얼굴을 가깝게 둘수록, 안타깝게도 나는 영화와 더욱 멀어지고 만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2019.4.20.)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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