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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사랑,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힘 <감정수업>

by 찌옹수
사랑(amor)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사랑에 빠지면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주인공이 된다.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조연으로 물러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람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종교와 정치적 신념 같은 관념 들일 수도 있다. 주인공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기쁨으로 충만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조연일 때 우리의 삶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자신의 꿈과 의지를 관철시키지 못하는 조연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사랑의 위기나 비극은 모두 사랑의 정의로부터 설명된다. 우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서로 동등한 주인공이 아닐 때, 사랑은 비틀거리게 된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 주인공으로 만들고, 남자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여자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는데 남자는 더 이상 여자를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 순간 사랑은 위태로워진다. 또 다른 위기는 두 사람 이외에 제3의 것들이 조연의 자리가 아닌 주연의 자리로 떠오를 때 발생한다. 시부모가 무대를 휘두른다든가, 남녀 중 어느 한 사람의 종교나 정치적 신념이 중심이 되는 순간,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조연으로 강등되고 동시에 사랑의 기쁨도 조금씩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위기를 지혜롭게 그리고 단호하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유일한 문제일 것이다.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라는 철학자가 있다. 그 사람은 사랑은 둘의 경험이라고 한다. 이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둘이라는 건 나와 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나와 그 사람, 두 사람이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다 조연인 것 그것이 사랑. 아주 기적적인 감정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유일하게 주인이 될 때가 사랑할 때. '남자를 혹은 여자를 안고 싶다', 이런 거 말고 진짜 중요한 경험은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이 되는 것.


그래서 사랑을 하게 되면, 여기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어도 여러분 애인만 보이고 나머진 안 보인다. 그런데 만약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상대방이 안 보이면, 그 사랑은 끝난 것이다. 둘의 경험을 한다는 건,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둘을 제외하고 다른 것들이 들어올 수 있는데 이런 조건들이 들어오면 둘의 경험이라는 규칙은 깨진 것이다.


만약 여자 2호의 남자 친구 연봉이 9천만 원이면 돈을 이렇게 잘 버니 남자 친구의 좋은 점을 찾는다. 어떻게든 찾는다. 그리고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할 수 있다. 2호가 속물이라는 것을 잘 아는 친구들은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걔 연봉이 9천이라 사귀냐?" 그러면 2호는 이렇게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 사람이 참 좋아서 그런 거야, 이년아!"라고. 근데 이게 정말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가봐야 알 수 있다. 높은 연봉을 받은 남편이 해고를 당했을 때. 그때 2호는 직감한다.


나이도 제3의 영역이다.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가 쓴 소설 '롤리타'는 중년의 남자와 10대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걸 이상하게 보는데 왜냐하면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다.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 들어봤을 것이다. 병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건 병이 아니다. 소설을 읽어 보면 그 남자는 그 여자의 나이는 보이지 않는다. 나이가 안 보이는데 외모가 보이나? 안보이지... 하지만 우리는 많이 본다. 그러니 사랑이 힘든 것이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늙어서 쭈굴쭈굴해지고 돈이 없어지면 어떡할 것인가.


사랑은 둘의 경험이라는 말. 이 엄격한 잣대로 본다면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사랑한 적이 거의 없다는 놀라운 사실에 직면할 것이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면 결혼은... 결혼은 둘의 경험을 하는 것일까? 결혼이 둘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제도일까? 결혼식을 하면 그전에 상견례를 먼저 하는데 그러면 이제 조연이었던 사람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결혼과 사랑은 별개다. 결혼을 하면 우리가 주인공이 되기에는 상당히 안 좋은 요건들이 마련된다. 심지어 아이를 낳아 보면... 아무튼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 만만하지 않다. 이 경험을 유지하는 것은 전투고 투쟁이다. 자신을 둘러싸는 조건과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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