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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May 29. 2024

양적 방법 연구자가 질적 방법 연구자에게 받는 오해

*** 이 글은 2024년 5월 24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제1회 동남아 지역연구 대학원생 워크샵에서 발표된 원고입니다. ***


나는 왜 태국을 공부하게 되었는가?: 일반화에서 특수성으로의 전환


  학부 때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역사가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는 시오노 나나미의 “세 도시 이야기” 시리즈 중 “은빛 피렌체”에 매료되어 있었다. 2010년이었다. 역사의 어느 장면을 잡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에 빠져있었다. 물론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역사를 적는 작업이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잠시 일본에 교환으로 방문했을 때는 당시 연구 지도교수가 사료를 통해 정치학을 분석하는 사람이었고 그 덕에 1940년대 사료를 바탕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역사를 통해서도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분석을 할 수 있는 것은 사회과학자가 할 수 있는 작업 중 하나니까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려대에 석사 입학을 하고 보니 정치학에서 주요하게 사용되는 방법론의 유행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양적 방법론, 특히 통계 분석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어떤 현상이 왜 발생했을까에 대한 원인을 찾고 이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가를 집중한다. 특수성보다는 일반화를 강조한다. 단순히 한 사례를 깊이 탐구하기보다는 여러 사례를 통해 일반적인 설명을 할 수 있는 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러 사례를 한꺼번에 보았을 때, 같은 사례들이지만 다른 결과가 나타났거나 혹은 다른 사례들이지만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를 밝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법칙을 찾아내려고 한다. 법칙을 찾기 위해 예상 가능한 가설을 통해 주장하고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결과를 제시한다. 정치학, 특히 비교정치학에서는 통계 분석을 통해 가설에 대한 증거가 얼마만큼 나타날 수 있는지 확률로 제시하는 것이다.

  석사 초기에는 낯설어서 애를 먹었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점차 적응할 수 있었다. 정치학에서 원하는 글쓰기가 양적 방법론을 통해 제시하는 것이라면 이에 기꺼이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계에 얼른 적응해서 이를 통해 글을 쓰고 훌륭한 학자가 되어야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동남아시아에 관한 입문을 하게 된 것도 이때이다. 석사 입학 면접 때는 한국 정치를 전공하고 싶다고 계획서를 썼지만 역시 어떤 계기로 지도교수를 만나게 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수업에서 처음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사용해 텀페이퍼를 쓰게 되었고 논문을 투고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내가 일반화 가능한 설명을 하는 작업에 적응을 제법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학위논문은 직접적으로 동남아가 아니라 전 세계, 2000년부터 2018년까지의 선거 권위주의 78개 국가의 자료를 모아 그들의 공공보건 지출에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하는 논문을 썼다. 여기에 사용된 통계 분석 방법은 경제학에서 잘 사용하는 패널 데이터 분석이었다. 고정 효과(fixed effect), 임의 효과 모델(random effect)을 보여주면서 나름대로 통계 분석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논문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리고 박사과정에 들어와서도 매개 효과 분석(mediation analysis), 순서 로지스틱 분석(ordinal logistic regression), 삼중 교차항 분석(three-way interaction model)을 사용하며 계속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최근에는 매칭(matching)이라는 분석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일반적인 분석을 하다 박사과정에 들어와 국가를 하나 지정하고 공부를 하게 되니 문제가 시작되었다. 태국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23년 2월의 일이었다. 함께 술을 마시던 지도교수가 학생사회에 오래 발을 담갔던 나에게 태국에서의 학생 시위를 언급하며 연구해 볼 생각이 없느냐 제안해 온 것이다. 그렇게 한 달 동안 태국에 대한 논문만 읽다 보니 정말 인상적이었고,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에 한국동남아학회 김희숙 당시 총무위원장님과 전제성 회장님의 제안으로 갑작스레 태국으로 가게 되었다. 518기념재단의 박채웅 부장님, 홍유정 팀장님의 추천을 받았다. 아시아 민주주의 네트워크(Asia Democracy Network)의 민주주의 워크샵이었다. 그곳에서 태국에서 집회에 직접 참석한 학생들과 방을 일주일 동안 함께 쓰게 되었고, 그때 태국 사회에 대한 증언을 많이 듣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연구 질문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사법적으로 국가 혹은 특정 법을 반대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지만, 방해되지 않는 연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수성으로 전환하고 마주한 문제


  일반화에 적응한 글쓰기를 하다가 태국의 특수성을 마주하고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일반화를 위한, 그리고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한 논문 쓰기의 방식이 서로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사회과학에서는 조작적 정의가 중요하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면 개념을 정의해야 하는데 다른 학자들로부터 정의를 빌려와 사용한다. 일반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조작적 정의를 다른 국가들과의 비교 가능성(comparability)에 초점을 맞추고 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국가에서 이렇게 설명된다면 다른 국가에서도 적용할 수 있게 말이다. 그래서 논문을 쓰다 보면 일반화를 위한 연구자들은 특정 국가의 상황이 이래서 이런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방법을 가설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다른 국가에서도 이런 이론이 있었으니 이런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 제시를 많이 한다.

  또한, 일반화를 위한 양적 연구를 하는 사람들과 특수성을 바라보는 질적 연구하는 사람들의 사례 표집 방법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단순하게 이분법적인 시각을 적용하는 것 같아 위험하지만, 이 또한 단순하게 일반화를 위해 이렇게 조작적 정의를 하고 설명하자면, 전자는 표집의 무작위성(random)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수를 모두 바라볼 수 없다면 무작위로 사례를 표집 하였을 때도 가설이 제시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작위 표집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요즘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무작위 표집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에 반해 후자는 조작적 정의를 하기는 하지만 어떤 개념이 특정 국가의 사례에서는 어떤 특징으로 나타나는가에 집중한다. 그리고 사례 표집에도 역시 여러 방법이 있지만, 연구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어떤 사람이 정확한 이야기를 연구자에게 해주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현지 조사도 1년 정도의 긴 기간 동안 라포를 쌓으며 진행된다. 사례 표집의 방식은 무작위라기보다는, 연구자의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게 쌓은 라포를 통해 인터뷰 대상자로부터 증언을 들으며 분석을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

  그래서 전자에 중심을 둔 글쓰기를 하다 보니 논문을 투고하면 심사자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왜 무작위 표집을 하는지 모르겠다. 왜 꼭 그래야 하는지?”

  “태국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론적 논의가 너무 단순한 것 아닌지? 태국에 대해서 관찰을 하고 이렇게 주장을 하는 게 맞는지?”

  “통계 분석을 하더라도 이 변수를 왜 이렇게 측정하는지 모르겠다. 다르게 측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단순하게 측정한 것은 아닌지?”     


  예시를 들어보자. 지금 내가 작업하고 있는 것은 태국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이다. 양적 연구자들도 정치적 관심을 여러 가지로 측정하겠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바로 주관적인 정치적 관심을 묻는 것이다. 아시안 바로미터 조사(Asian Barometer Survey)에서도, 세계 가치 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도 “당신은 정치에 얼마만큼 관심이 있는가요?”를 묻는다. 정말 주관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는 문항이어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문항이다. 앞에서 서술한 다른 국가와의 비교 가능성과 일반화에 초점을 두고 묻는 전형적인 질문이다. 설명력이 넓고 다른 국가에도 적용이 가능하려면 그만큼 단순한 문장일 수밖에 없다. 다른 문항에서 “정치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라고 묻고 주관식으로 답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맥락은 모두 반영이 되기는 어려운 문항이다. 그에 반해서 질적 연구를 한다면 정치에 얼마만큼 관심이 있는가 보다는, 당신의 정치에 관한 관심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물을 것이다. 정치란 투표 참여라 생각하는지, 시위에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말이다. 투표 참여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심층적으로 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논문 투고가 한 번 정도 게재 불가 처분이 난 적도 있다. 처음에는 양적 연구를 하는 처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양적 연구 논문에 질적 연구자를 심사자로 배정한 학술지 탓을 해야 할지, 아니면 애초에 질적 연구로부터 변수 측정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지 않고 지역 연구로 뛰어든 나를 탓해야 할지 말이다. 단순화해 설명력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태국을 모른다는 소리가 더 싫었다. 태국 연구를 시작했으면 무라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드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찾은 대안은?


  지금 현재 연구 질문으로 삼고 있는 것은 “왜 사람들은 처벌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계속 시위에 나갈까?”이다. 이 문장은 태국의 사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태국은 태국만의 특수성이 있고, 저 연구 질문에 대한 답은 국가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다른 국가에서 연구된 사례를 가지고 오게 되면 재미없는 가설만 제시하게 된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폭동에 나서는가를 질문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쓴 알렉산드라 사코(Alexandra Scacco)라는 정치학자를 예시로 보자. 그는 아프리카 국가에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폭동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폭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태국에서도 아는 사람이 있다면 폭동에 참여할 것이라는 가설이 적용 가능할까의 가설 제시도 가능하지만, 사실 특수성에 기반한 가설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가설 제시도 역시 충분히 과학적이고 논문으로 쓸만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지역학을 전공하기로 시작한 학자로서는 그러한 가설 제시가 부지런하지 못하고 그 나라의 맥락을 발견하지 못하는 논문이라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그 나라에 직접 가서 관찰한다면 가설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데 그 이외의 인식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 편협한 것이다. 정치학의 목적은 일반화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특정 국가의 맥락을 기반으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식론적으로 편협한 시각이다. 인식론도 여러 가지이지만 다른 인식론을 통해 다른 방법론을 사용해서 좋은 논문을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논문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분야에 적응해서 그 학문 분과에 맞는 논문을 쓰면 좋겠지만, 지역학으로 들어왔다면 다른 지평이 있다는 점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은 공부를 하는 시작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태국 사람들과, 특히 시위에 직접 참여해 본 젊은 사람들과 작년 11월부터 라포를 쌓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가설, 혹은 정치학을 기반으로 제안되는 가설이 이 사람들로부터 실제로 관찰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다만, 내가 하는 인터뷰가 동의서를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니어서 인용하기는 어렵다. 밥도 먹고 같이 술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여러 방면으로 듣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적을 수는 없다. 신문 기사를 찾아야 하고 인용하는데, 찾았다고 쳐도 “이러한 신문 기사 하나를 바탕으로 이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듣는다. 이렇게라도 주장을 해서, 이런 가설이 통계 분석으로 나타난다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하기에는 빈약하여 여전히 고민이 많다.

  여기에 하나 더 해서 태국 역사 혹은 문화를 바탕으로 한 논문에서 제시된 명제를 통계 분석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현재 수정 후 재심사 결과가 나와서 재제출한 논문도 그렇다. 본래는 이 주제에 대한 입증을 할 수 있는 논문이 없었다. 그러나 2024년에 태국 역사 전공인 선생님의 논문이 한 편 나왔고 중간에 이를 인용하여 보강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태국의 불평등에 대한 것인데, 정부에서 제시한 지표로는 몇 년 동안 좋아지는 모습만, 혹은 개선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해외 학자들의 경우 태국이 불평등하다고는 이야기하지만 이게 직접적으로 정치 참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분석한 적이 없었다. 2024년의 논문이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된 요인 중 하나로 경제를 꼽으면서 나는 논문을 보강하고 통계 분석을 통해 뒷받침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일반화를 위한 글쓰기에 익숙하다. 다른 국가의 사례와의 비교 가능성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에 좀 더 최적화된 사람이다. 그러나 지역학으로 입문을 하고 박사과정에 들어오면서 태국으로 사례를 확정하고 연구하게 된 이상, 맥락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적 연구를 태국에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하고 있다.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단일 사례 연구(single case study)를 시작하게 되었다. 유명한 정치학자 페핀스키(Pepinsky)에 따르면 단일 사례 연구 역시 기존의 정치학 이론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잘 보인다면 의미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지역학에 들어왔지만 동시에 정치학자인 나는 이런 점을 잘 균형을 이루면서 연구하여야 한다.

  일반화와 특수성의 이야기를 넘어 해결되지 못한 고민이 하나 더 있다. 변수의 측정 방식의 정확성을 넘어, 최근 정치학에서 데이터의 질(quality)을 담보하는 문제에 측정과 함께 누가 데이터를 만들었는가도 다루어야 한다고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는 국가를 통해 생산된다. 특정 기관이 있다. 태국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학자들과의 면담에서도, 활동가들의 면담에서도 그들은 애초에 특정 기관의 데이터를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를 보일 때도 많다. 내가 직접 통계 분석을 해보아도 그렇다. 물론, 그곳에서 만든 데이터 역시 무작위를 통해 생산된 것이고 통계 분석 수행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현재 젊은 사람들로부터 나타나는 특징이 이런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논문은 나는 쓸 수 없다.

  양적 연구자로서 질적 연구자들로부터 받는 오해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노력하고 있지만, 동시에 태국을 양적 연구를 통해 분석하는 한계를 관찰하고 있다. 양적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으니 오해하는 눈으로만 바라보지 말아 주십사 당부하고 논문을 계속 쓰는 수밖에는 없는 것일지 여전히 고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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