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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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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Aug 09. 2020

인생의 장르를 바꾸는 주문

나중에 써야지, 한다

인생의 장르를 선택할 수 있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시트콤이요!'라고 소리치고 싶다. 매 순간이 시트콤의 한 장면이라면 잊고 싶은 흑역사도 유쾌한 웃음으로 넘겨버리고, 말도 안 되는 비극도 순식간에 희극으로 변신시키며, 희한한 우연의 연속도 아름다운 필연으로 이어지고, 행복한 일은 더 극대화되어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을 만큼 따뜻한 기분에 사로잡힐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울고 싶을 때마다 이 상황이 시트콤의 일부분이라면,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상상했다. 상상 속 주인공은 언제나 가뿐하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나를 앞질러 갔다.


코미디가 주를 이루는 시트콤 같은 삶을 바라는 나에게 가끔 공포, 스릴러, 모험, 미스터리가 펼쳐졌다. 코미디가 아니라면 로맨스나 액션도 괜찮고 그게 아니라면 외계인이 나오는 SF도 괜찮은데 의도치 않았던 일과 예상치 못했던 상항들은 어찌나 다양한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생각이 많은 나는 이럴 때마다 깊게 괴로워하며 나쁜 생각에 잠겼고 시간이 지나 사건이 마무리되어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감정이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이상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바에야 차라리 재미와 즐거움이 넘치는 남의 인생의 조연이 되어 웃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생의 장르를 시트콤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을 발견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했다. '작품을 하나 완성하겠다!'라는 엄청난 야심이 있었다기보다 책이 좋았고, 쓰는 게 좋았고, 교수님이 좋아서 신청했던 강의였다.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주제로 A4 용지 한 장을 채우는 과제가 주마다 있었다. 여러 수업과 다양한 과제를 하면서 내 의견을 표현한 적은 많았지만 나를 온전히 드러낸 적은 여태 한 번도 없었다. 


주제를 받을 때마다 방황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얼마나 써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항상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과 감추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글을 썼다. 과제가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제시간에 끝냈다는 개운함과 내 글이 어떤 방식으로 읽힐까 걱정되는 긴장감과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나를 찾아왔다.


달갑지 않은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했다. 소심한 나는 결과에 상관없이 출석과 과제를 성실히 했기에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망각의 숲에 묻어두었던 기억으로 흰 종이를 채워나갔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스스로 꺼내 다듬었다. 글을 쓰는 내내 양가감정에 휩싸였다. 너무 괴로워서 여기서 멈추고 싶다는 생각과 기어코 끝을 보고 싶다는 감정이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부딪혔다.


마음속에 마구잡이로 엉켜있던 기억을 풀어내면서 나는 어느 순간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타인이 되었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게가 약간 가벼워졌다. 화면 밖에 있는 시청자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장르에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괴로운 일이 닥쳐서 더 이상 어떤 해결 방안도 찾지 못하는 순간에 다다르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문장을 읽어도 나에게 닿지 않을 때가 있다. 생각은 자꾸만 밑으로 쳐지고 스스로를 벼랑으로 밀어내는 시간이 있다. 누군가에게 나의 고민을 말하고 싶지만 상대의 입에서 "별 것도 아닌 일로 왜 그래, 그냥 하면 되잖아,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아, 나이가 몇인데..." 이런 문장이 나올까 봐 미리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나중에 써야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나를 스친다. 나중에 써야지, 하고 중얼거리면 아래로 꺼졌던 감정이 정상 궤도를 향하고 마음이 천천히 진정된다. 쳐졌던 생각이 다시 나에게로 모아지면서 스스로 추스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은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데 용기가 없을 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을 때, 선택의 기로에서 같은 자리를 맴돌 때, 온몸으로 수분이 빠져나갈 만큼 펑펑 울고 싶을 때,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을 정도로 충만한 기쁨의 순간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나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나중에 써야지,라고 뱉으면 외면하고 싶던 일도 도전할 용기가 생기고, 어디선가 귀인이 나타나거나 새로운 해결 방안이 떠오르고, 어떤 걸 선택하든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에 사로잡히고, 앞으로 나아갈 희망이 보이고, 행복한 순간을 더 기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하나의 유쾌한 에피소드로 귀결되고 결국은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과정임을 나는 안다. 


내 삶은 멈추지 않을 걸 알기에, 다른 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는 내게 없기에, 흘러가는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기에, 다가오는 모든 일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싶기에 나는 스스로 마법을 건다. 


내 삶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날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 같다. 화면 밖에서 손뼉을 치면서 잘하고 있다고 나를 응원하고 있을 것 같다.


나는 나의 기록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을 믿기에 오늘도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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