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정윤 Jul 09.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

그 시간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하루마다 기분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가 정해져 있다면 100중 80은 '긍정'에 사용하고 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긍정적인 감정에 가까워지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내 감정은 아무렇게나 구겨지고 내팽개쳐지고 찢겨 버려진다. 이렇게 나를 하찮게 여긴 대가는 참혹하다. 고통에 휩쓸리는 순간에도 힘들지만 눈물의 파도가 잦아질 때 즈음 나를 덮친 우울감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에도 생각은 많았고 이런저런 상상에 빠져 지냈는데, 특정 나이를 지날 때마다 그 시간에 누구나 겪는 고민을 같이 통과하며 지나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딜만했는데, 이상하다. 원래 이랬는데 최근 들어 깨달았거나 이러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돼버렸는지 모르겠다. 나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감정이 변했다.

 

우울은 다양한 형태로 나를 찾아온다. 우울이 우울 인지도 모르게 소리 없이 찾아올 때도 있고 나는 우울하다! 그러니까 감정의 주인이여 해결을 해라! 소리치며 달려온 적도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감정이 나를 지배했던 시간을 떠올려보면 우울이 어떤 감정인지도 잘 몰랐다. 내 감정을 잘 헤아릴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어서 미루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태생이 게으르다고 느꼈고, 왜 사냐고 스스로에게 물었고, 그러니까 네가 그렇지, 답을 내렸다. 우울이 온몸으로 자신을 표출하며 달려왔을 때는 어떻게 할 줄 몰랐다. 방법을 몰랐다. 그저 눈물이 자주 나왔고, 상상은 유쾌하지 않은 쪽으로만 흘러갔고, 그러니까 네가 그렇지, 결론지었다.

 

우울이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와도 나는 언제나 벗어났다. 몇 시간이든 몇 주든 몇 달이든 언제나 혼자 견디고 견뎌서 벗어났다. 버티는 일 외에는 알지 못해서 열심히 시간을 피해 도망 다녔다. 나를 스쳐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일찍 다른 방법을 알았다면 기꺼이 실천해봤을 것이다.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특히, 내가 어찌해도 바뀔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무기력해지고 답답하다.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나를 덮쳐 끝도 없는 어둠의 구렁텅이로 나를 쑤셔 넣을 때마다 나는 버틴다. 일상에 스며든 아주 사소한 긍정을 쥐어짜면서 세상에 태어난 일을 감사히 여길 수 있도록 자기 최면을 건다.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음에 감사하고, 입을 수 있는 옷이 있음에 감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음에 감사한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좋지 않아도 공기에 악취가 가득해 숨쉬기 버거워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계절감이 맞지 않아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옷을 입어도 감사하고, 유통기한이 지나 곰팡이가 핀 부분을 도려내 삼키면서도 감사하는 식이다.


온 세상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안고 지내는 시기에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신세 한탄만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와 만나는 시간은 있는 힘껏 즐거운 감정으로 나를 채우고 싶어서 잘 지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며 쉬지 않고 재밌는 일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고 웃었고 재밌었다. 그 날, 친구가 넌 웃음이 많고 밝아서 좋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들으며 '겉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누구도 모르는 어둠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지.. 크큭.. 아무도 날 이해 못해..'라며 자조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다행이라고 느끼며 긍정 회로를 열심히 돌렸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길 원하고 그렇게 되길 바라는데 그렇게 보이니까 다행이다! 기분 좋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감사하면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정말 그렇게 바뀐다는 글을 읽은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이상한 우연이 겹치고 겹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질 때는 훗날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꿈 꾸며 오늘도 아슬아슬한 외줄을 탄다.


내 마음은 동전보다 더 쉽게 뒤집혀서 긍정적으로 포장하려고 애써도 눈을 깜빡이는 순간 다시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행복하다가도 괴롭고 좋다가도 싫고 고통과 쾌락의 모순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내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는 한, 부정의 급류에 휩쓸려 쓸려가지 않도록 최대한 긍정을 붙들고 있고 싶다.


내가 가진 고통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다가 눈 깜빡이는 찰나의 시간을 지나자마자 내가 가진 행복에 대해 열을 올리며 말하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부디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그러려니 해줬으면 좋겠다. 그 시간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이해해주면 참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에너지가 200% 채워져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길 바라며 외쳐본다.


오늘 습도가 적당해서 좋다! 행복하다! 

이전 03화 칫솔에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