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 75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 김욱동 옮김
학창시절 유독 좋아했던 힙합가수가 있다. 셋 보다 나은 둘, 바로 다이나믹 듀오다. 다이나믹 듀오의 데뷔곡은 'Ring My Bell'이라는 노래인데, 아주 신나고 경쾌하여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은 따라 불렀을 것이다. 나도 이때 한참 힙합에 빠져서 지냈다. 어려운 랩 가사들을 줄줄이 외우면서 살았다. 링마벨은 단연 으뜸으로 외웠었다. 링마벨을 따라 부르다 궁금한 가사가 있었다. 개코가 부르는 부분인데 "이제 완전히 새롭게 변하기 친구들에게 전하기 사랑에 배신당한 개츠비라도 현실에 막 발을 담근 미쓰리라도 눈물짓지 말고 다들 힘내라고 걱정들로부터 해방돼" 여기서 '사랑에 배신당한 개츠비라도'라는 부분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다. 마침 집에 '위대한 개츠비'책이 있어서 힙합 노래 덕분에 읽었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읽으면서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많았다. 아무리 읽어도 이게 무슨 말인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던 문장들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번역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다. 글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삶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시대적 배경 지식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이후로 15년이 지난 얼마 전, 2013년도에 개봉한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로 보게 되었다. 영화도 개봉후 6년 만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늘 한 번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다시 원작이 궁금해졌다. 리디북스 리디페이퍼를 통해 다시 부분부분을 읽어나갔다. 다 읽은 후에는 많은 사람들의 리뷰와 후기를 찾아보았다. 각자의 해석과 많은 전문가들의 통찰력에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다.
영화 속의 배경들과 주인공들은 내가 책에서 읽었던 모습들 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세련되어서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도 있지만, 영화의 연출이 너무나 뛰어났다. 보통 원작의 감동을 완벽히 표현하는 영화가 없기에 원작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차라리 책 보다 영화를 먼저 봤다면 더 잘 이해하고 인물 묘사가 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의 모든 내용을 담기가 힘들었는지, 책에 있는 내용들 중 몇 부분은 영화로 표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원작에는 없는 부분이 추가되기도 했는데, 원작보다 더 매끄러운 연출이 된 것 같다.
사랑에 배신당한 개츠비.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향한 순수한 사랑만을 위해 살았다. 오직 데이지를 위해서. 너무나 거대하고 순수했던 그 사랑 하나만으로 데이지와 함께 하기 위해서. 그런 개츠비가 영화에서는 뭔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호텔 씬에서 톰 뷰캐넌과의 말다툼 중 자격지심으로 인해 격한 몸짓과 폭발하는 분노를 보이기도 하고, 데이지와 재회를 가진 후에 개츠비는 자신이 사는 이 호화로운 저택을 떠나지 않겠다는 욕심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식의 모습과 앞으로 데이지와 함께 더 성공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개츠비의 모습을 디카프리오가 연기했기 때문에 원작과 다른 모습의 개츠비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츠비는 왜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데이지한테 왜 그토록 톰 뷰캐넌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단 한순간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하라 했을까? 사랑하는 여자의 과거를 과거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과거는 과거일 뿐인데..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물질만능주의 시대의 최고 정점에 살았던 개츠비는 결국 돈으로 시간을 돌리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돈으로 사랑을 얻지도 못한다. 애초에 돈은 시간으로 거래할 수 없는 것이며, 돈으로 사랑을 얻어보려 하지만 결국 더 큰 돈을 가진 사람에게 무릎을 꿇는다. 데이지는 본인이 딸이 태어날 때 딸에게 말해준 대로 '귀엽고 멍청한 여자'였다. 그러기에 어떤 의사결정도 스스로 하는 법이 없고 그저 큰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 그 돈에 가려져 자신이 지은 살인 죄도 피해 간다. 이런 사람을 사랑했던 개츠비가 너무나 불쌍하다.
한 평론가는 '데이지'라는 인물을 '황금만능주의'그 자체라고 말한다. 남편이 외도하는 걸 알고 있어도 자신의 부유한 삶을 포기할 수가 없기에 눈감아준다. 딸이 태어났을 때, '여자는 귀엽고 멍청한 게 최고'라고 말하며 남성 의존적인(돈에 빌붙는) 삶을 살아간다. 사랑에 있어서도 더 큰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따라감으로 안정적인 부를 따라간다. 그리고 살인 죄를 짓고도 남편(돈)의 뒤에 숨어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중 끝판왕은 데이지가 아닌가 싶다. 그런 여자를 사랑한 순수한 개츠비가 다시 한 번 불쌍해진다.
역시 고전은 재미있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왜 고전에서 배워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현대 문학의 근간이 되는 고전들을 많이 접하고 익히고 싶다. 시간이 되는 대로, 주기적으로 고전을 읽고 가까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작 '상실의 시대'에서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하루키는 말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었다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라고, 15년이 지나고 두 번째 읽었으니, 언제 또 읽게 되려나, 죽기 전엔 하루키랑 친구가 될 자격을 가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