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이 온다> 후기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의 제목만 보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일터나 교회에서 90년생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고 상대하는 일이 많은 사람으로서 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2019년 현재 20대, 90년생들에 대해서 나름 분석하기도 했었다. 이 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전 직원에게 선물했다고 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90년생은 어떠할까. 90년생을 말하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80년생을 말해보고 싶다.
나는 87년에 태어났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나은 그 유명하고 불쌍한, 단군이래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 밀레니얼 세대의 일부다. 여러 구조적인 문제와 시스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대다. 역사적으로 가장 비참한 전쟁을 겪고 난 뒤에 폭발한 인구증가와 그들의 자녀로서 인류 역사중 매우 보기 드문 태생이다. 동시에 아날로그로부터 디지털로의 전향을 모두 겪은,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유니크한 세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겪은 세대로서는 70년생이 더 직접적이었을지 모르나, 물건을 다루고 쓰는 데 있어서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세대는 80년생이다. 특히 손에 갖고 싶었던 삐삐, 시티폰, 폴더폰, 슬라이더폰, 워크맨, CD플레이어, MD플레이어, MP3플레이어 등 많은 것들을 만져보고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손안에 전자 기계 역사를 함께했다. 80년생 중에서도 시티폰이 무엇인지, MD플레이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반짝했다 사라진 돌다리 같은 역할의 전자 기계가 많았다. 폭풍과도 같은 발전 속에서 80년생들은 부모의 버프를 통해 만져본 전자 기계가 많았고, 나이도 어렸기에 70년생보다는 전자 기계를 접하는 시간이 전체적으로 조금 더 많았다. 지금까지 그 기본을 바탕으로 더 많은 하드웨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그렇다면 아날로그를 겪어보지 못한 지금의 90년생은 어떨까? 처음으로 만진 휴대폰이 스마트폰인 90년생들은 아무래도 이전 세대보다 새로운 전자 기계 적응력이 뛰어나다. 80년생도 워낙 많은 것들을 만지며 지냈기에 조작은 쉽게 하지만, 매년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조작면에서는 90년생을 쫓아갈 수가 없다.
이런 90년생들, 역사상 아날로그를 거치지 않은 세대. 디지털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커온 첫 세대인 그들은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되고,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며, 거기서 나오는 그들의 반응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90년생이 온다>인 것 같다. 어느 부분에선 87년 생인 나와 시대에 적응해가는 이 사회를 말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단단한 통찰력과 많은 시간 많은 사람들을 관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보고 지냈던 것들을 차분하고 알기 쉬운 글로 옮긴다는 것이, 읽기 쉽게 글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괜히 베스트셀러가 아니구나 싶었다.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90년생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저자는 이렇게 세 가지를 뽑았다. 간단한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어야지만 관심을 가지며, 사회의 공정과 기업의 정직함을 요구한다. 간결하게 잘 표현한 것 같다. 스마트폰을 통해 거의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대로서 가장 필요한 세 가지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한가지 내용에 꽃혔는데, 바로 90년생들의 독서량이었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감내하려면 장문의 글은 방해가 된다. 큼직한 글씨와 핵심 내용만 들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어서 다른 정보를 찾아 이리저리 손가락을 휘젓는다. 글은 읽지 않는다. 읽어도 재미있는 것만 찾는다. 우리나라 성인 평균 독서량이 그래도 10권은 넘길 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충격 먹은 게 작년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90년생의 독서량이 1년 평균 0권이라 한다. 올해 본 책이 무엇인지 보다 작년에 본 책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하는 세대라고 말한다. 책을 읽지 못하는 세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어떤 세대보다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고, 뛰어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살아가지만, 책이나 문학에서 오는 깊이 있는 지식과 지혜는 전혀 습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독서모임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내 주변을 봐도 80년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90년생들이 독서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스마트폰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20대 친구들을 데리고 독서모임을 가져보기도 하고, 일대일로 독서 멘토도 해보고 느낀 것은, 90년생인 현재의 20대가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바쁘다. 주어진 정보력이 많기에 그 정보력을 바탕으로 많은 것을 알고, 깨닫고, 실행하며 살아간다. 또래들에게 뒤쳐질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나도 책을 많이 읽는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안 읽어도 연간 읽을 책의 목표 권수를 정하고 도전하며 책을 읽는다. 2019년 한 달을 남겨놓고 그 목표를 채우지 못해서 아쉽지만, 꾸준히 읽을 생각이다. 하지만 90년생들은 책에 대해 전혀 흥미가 없고 왜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어차피 구글링 하면 친절히 유튜브 영상으로 다 나오니까 말이다. 간단하고, 재미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책을 이들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과연 읽게 될지 아니면 지금처럼 계속 관심 없이 살게 될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키워드를 더 추가하고 싶다. "노호갱이거나" 90년생들은 역사상 가장 빠른 정보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대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가격비교를 통해 구입하고, 여러 가지 이벤트와 할인의 정보로 어떤 세대보다 물건을 싸게 구입한다. 그리고 자신이 구입한 물건과 서비스에 대해 가감 없이 후기를 남긴다. 동시에 이 후기의 진정성과 개수를 통해 판매처의 신용도나 품질을 파악한다. 서비스가 형편없거나 물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가게와 판매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매출이 줄게 되지만 그 누구도 직접 대놓고 알려주지 않는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정보력이 없었을 때는 그야말로 판매자가 갑이었다. 가격비교도 쉽지 않고, 사는 물건의 정보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판매하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고객들을 주무를 수 있었다면 이제는 구매자가 그들을 주무른다. 공정과 정직을 원하는 90년생들은 자신들이 호갱으로 취급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이전 세대에 호갱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보고 배우고 학습한 결과다. 거래함에 있어서 누구보다 똑똑한 세대의 출현이다. 90년생들의 탕진 잼이라는 말로 과소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모든 곳에 아무렇게나 탕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만족함과 더불어 공정한 값에 거래되는 것. 이것들이 탕진 잼 소비의 기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어느 세대보다 똑똑한 소비를 원하고 그렇게 노호갱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을 아직 몸에 남긴 세대는 시간을 내어 다음 세대를 배워야 한다. 전화받는 시늉의 마임으로 새끼손가락과 엄지만 펴고 얼굴에 갖다 대는 사람은 옛날 사람이다. 요즘 친구들은 전화 받는 시늉으로 왜 새끼손가락과 엄지를 펴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수화기가 꺾여 있던 유선 전화기를 사용해본 적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네 손가락과 엄지를 살짝 오므려 스마트폰을 잡는 느낌의 손으로 얼굴에 갖다 대는 것이 요즘 친구들이 이해하는 전화받는 마임이다. 아쉽게도 나도 옛날 버전의 전화기를 손으로 만든다. 이처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세대들이 모르는 것을 몸에 지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게 세상 정답처럼 표현하며 살아간다. 앞으로 오게 될 4차 산업혁명, AI, 양자컴퓨터, 무인자동차 등등 바뀔 것들이 넘쳐 나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넘어서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배우지 않으면 살아가는데 불편한 시대가 된다. 배워야 한다. 시간을 내고 배워서 90년생, 00년생, 10년생들의 세대와 발걸음을 같이 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멘토로서 어른으로서 온고지신의 표본으로서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배우며 살아가길 희망한다. 시대에 맞는 삶을 사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