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교회 예배 준비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교회 정문 옆에 노숙인 한 분이 앉아있었다. 교회를 빠져나오는 내게 그는 돈을 요구했고, 피로감이 깊었던 나는 회피하듯 없다고 말하며 빠르게 걸어 나왔다. 그렇게 몇 걸음 걷다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자리에 멈춰 섰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그에게 다가갔다. 거짓말했다고, 죄송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지갑에 있던 얼마 안 되던 현금을 모두 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는 대전에서 왔고, 서울에 온지는 며칠 되지 않았다고 했다. 밥을 못 먹어서 매우 배고프다고 말했다. 나는 혹시 내일 교회 점심시간에 식사하러 오지 않겠냐고 권했고, 그는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제 헤어지려 하는데 그가 내 겉옷을 잡고 말했다. 내가 입고 있는 겉옷을 달라고 했다. 입고 있던 옷은 구입한 지 3일도 되지 않았던 새 옷이었다. 순간 당황했고, 거짓말을 했다. 이 옷은 내 옷이 아니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쉽게 포기했고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날 교회 중고등부 예배가 끝나고 청년부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교회 부목사님이 나를 찾았고, 나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고 했다. 어제 그분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는 굶주렸음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거절하고 나왔다. 식당에서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과 관심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는 점심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 다시 찾아왔다. 당장 드릴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청년부에서 먹고 남은 배달음식 밖에 없었다. 그는 그 음식을 천천히 먹고 인사 후에 돌아갔다. 그리고 동네에서 다신 볼 수 없었다.
이 일이 있고 며칠간 눈물로 밤을 보냈다. 정면으로 맞닥 드린 나의 위선은 생각보다 큰 충격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나의 본모습을 보았고, 그동안 드렸던 예배와 기도가 모두 헛것이 된 것 같았다. 단단하다 생각되었던 신념과 신앙은 한순간 먼지가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몇 푼의 돈과 며칠 되지 않은 새 옷은 내겐 너무 귀했다. 내가 흔쾌히 줄 수 있는 것은 먹다 남은 음식뿐이었다. 예수의 십자가를 따르겠다 말하며, 내가 만들어 낸, 내 손의 십자가의 실체는 위선이었다.
어느 날 보다 추웠던 2021년 1월 18일 한 기사를 보았다. 기사에는 한 신사가 노숙인에게 옷을 벗어주는 사진이 함께 있었다. 노숙인은 신사에게 너무 추워서 커피 한 잔만 사달라 말했고, 그 신사는 커피 대신에 두꺼운 외투와 주머니 속 장갑, 현금 5만 원까지 함께 주고 금방 사라졌다고 한다. 그 모습이 내겐 예수의 부활로 보였다. 내겐 없었던 부활의 모습이었다. 나의 십자가와 부활에는 오직 나만 있다. 지난날의 아픔을 회복하며 안전한 삶을 확보한 채 살아가는 나만의 부활이고, 나만의 기쁨이었다. 존엄이 무너진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이들은 함께 할 수 없는 부활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난주간의 십자가와 부활절을 맞이한다. 그리고 나는 안락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에서 부활의 기쁨을 나눈다. 그때와 변한 것은 나이 듦과 사색뿐이다. 그날의 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입었던 옷과 그의 모습, 나눴던 대화와 그의 목소리까지. 그가 지금의 내게 도움을 청한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옷을 벗어준 신사처럼 할 수 있을까. 군대 가기 전 20대 초반의 일은 아직도 내게 위선자라 손가락질하며 말하고 있다. 너의 십자가는 어디 있냐고, 너에게 부활은 무엇이냐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9965.html
사진 출처 : 한겨레 백소아 사진뉴스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