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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우기 Aug 01. 2021

노매드랜드

영화 <노매드랜드 (Nomadland)> (2020) 리뷰


"누구세요?" 대신 묻는 것들

영화 <노매드랜드> (2020) | 출처 : 네이버



누군가를 알기 위해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어디에 사세요?(어느 나라 사람이세요?)', '무슨 일을 일하세요?'이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디테일 하진 않지만 상대방의 분류법에 의해 나는 어떤 분류로 기억이 된다.



이건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내가 나를 평가할 때 나의 거주지역이나 직장에 따라 스스로를 높거나 낮게 평가한다. 갑질 논란, 삼성맨, 연고전 같은 단어들은 어떤 사람이 자신을 특정 공간이나 특정 지역에 소속된 사실을 내면화시켰음을 의미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집'이라는 것은 집 이상을 의미한다. 힘든 교육의 관문을 통과하고 미쳐버릴 듯한 상사의 압박을 견뎌내며 마치 달에 깃발을 꼽듯이 불확실한 이 세상에 자신만의 깃발을 꼽는 보람과 긍지를 선물한다. 집 하나만 가지고도 이런데 자신의 마을, 직업, 배우자까지 떠나보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노매드랜드의 첫 장면은 추운 겨울 오랜 세월 함께한 자신의 짐들을 창고에 보관하고 떠나는 주인공 '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강제적으로 떠밀리듯 시작된 펀의 노마드 라이프는 그렇게 시작된다. 대도시 어느 곳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며 아늑한 집과 그곳에서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는 가족. 이런 모습은 아마 대부분 꿈꾸는 삶이다. 그리고 그것을 갖지 못해, 혹은 가질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반지하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던 것은 언제부터인가 반지하라는 나의 주거환경을 나라는 사람과 동일시 하기 시작하면서 잘못됨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의 주거환경에 대해 내 삶에 대해 비판하거나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반지하 취급해선 안 되는 것이다.



집, 직업, 자기 동네라는 안정적 정착생활이 바로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한 사람의 중요한 구성임에 틀림없지만 집, 직업, 지인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다. 사고로 팔을 잃더라도 나의 신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비록 큰 부분이긴 하지만 영혼은 아닌 것이다.



그녀가 처음 시작한 아마존 물류 배송 팀장의 문신은 이런 메시지를 잘 표현한다.

"집은 허상인가? 마음의 안식처인가?"




영원한 떠돌이

영화 <노매드랜드> (2020) | 출처 : 네이버



우린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의 몸을 떠나 계속 어딘가를 향한 여행을 멈추질 않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옥 같은 시간들도, 너무나 행복해서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하는 순간들도 모두 지나간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공간과 인간의 관계에 집중한 영화다. 끊임없이 전국을 누비며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찾고 불안과 궁핍의 삶을 자처하며 이곳저곳을 누비고 도시의 변두리, 허드렛일을 자처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의 일을 불성실하게 하거나 혐오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일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주어진 일을 도시의 규칙에 따라 수행한다. 일을 마치면 그들이 보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마음껏 감상한다.



일을 해야 하는 노동의 공간, 일을 안 할 때 찾는 자연의 공간 이 두 개의 공간 중 어느 곳이 낫다는 평가가 아닌 이 두 공간을 모두 향유한다. 전쟁, 기근에 벗어난 21세기에 인간이 맞이한 상황을 은유하는 것 아닐까? 노동의 공간과 자연의 공간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인간이 만든 세계와 자연이 만든 세계 사이에서 영원히 떠도는 것.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 아닐까? 안전한 지대에 살지 않는 것이 위험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 아닐까?



죽음보다 두려운 것

영화 <노매드랜드> (2020) | 출처 : 네이버


이별은 인간이 경험하는 것 중에 가장 쓰라리고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인공 펀은 몇십 년간 살아왔던 자신의 모든 것과 이별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밥 웰스와의 대화하는 두 번의 시퀀스에서 그녀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 처음과 달리 자신의 상실감을 털어놓는다.



"보(남편)는 고아였고, 우린 아이도 없었죠. 그가 사라지면 우리가 세상에 존재했던 흔적이 사라질 것 같아서 거길 떠날 수 없었어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거나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다는 흔적. 그 흔적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집이다. 집은 누군가 산다는 살았다는 가장 선명한 흔적이다.



그리고 집보다 더 분명한 흔적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타인의 기억. 그들의 추억 속에 내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고급스러운 아파트보다 더 값진 집을 얻은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사람 받는 사람일수록 많은 추억의 공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적은 추억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그 추억의 공간들이 사라질 때,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 특히 내가 아끼는 것들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 우리는 그것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죠. '기억되는 한 살아있는 거다.' 나는 기억만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낸 거 같아요."




나는 무엇을 붙잡고 싶었나?

영화 <노매드랜드> (2020) | 출처 : 네이버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필요해 그리고 붙잡고 있는가? 무엇이 두려워 그렇게 붙잡고 있는가? 생각해보자면... 좋은 아들, 재미있는 친구, 능력 있는 선배, 멋진 남자, 글잘쓰는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애써왔다. 사랑했던 순간들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붙잡고 있다.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나를 발견하며 가슴이 먹먹해질 때 펀의 마지막 대사는 깊은 울림을 준다.



"네. 다 필요 없어요. 없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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