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까지만 오는 무해한 공격
Microaggression, 즉 '미세 공격'은 의도하지 않은 차별이다. 듣는 이에게 상처 받을 것인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Greg lukianoff는 The coddling of the america mind라는 책에서 microaggression에 대해 말한다. 그는 '의도를 가진 공격'은 아무리 작더라도 'aggression'에 해당하며, 의도를 가지지 않고 나온 행동이나 말이 갖는 파급력이 바로 microaggression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비슷한 영역대(intersectionality)에 속할 경우 평소에는 쉽게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중에 살아온 배경이 매우 다르거나, 문화나 국적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이런 일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처음에는 당연히 상처 받게 된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주변 사람이 느끼는 상처도 동일하다.
하지만 이 또한 겪다 보면 내성이 생기고, 상처가 딱딱해져서 별로 겁이 나지 않게 된다. 어느 지점에 가면 이걸 대화 내내 신경 쓰고 있는 내가 답답한 마음도 들게 된다.
하지만 아직 내성이 없을 때에는, '그 말'이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누군가를 만나기 전부터 시작해 대화가 끝날 때까지 했다. 그리고는 '그 말'이 나오면 걱정한 만큼 그에 대한 방어기제로 격한 반응이 표출되기도 했다. 그런데 microaggression은 잘 살펴보면 우스운 구석을 가지고 있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격의 의도가 없다는 것이며, 중요한 부분은 microaggression은 (예비) 피해자의 코 앞까지만 오게 된다는 것이다. (예비)라는 괄호를 붙인 것은 피해자가 될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도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다양성의 공존'에 대한 의식 없이 이야기를 꺼낸다. 그 이야기는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저격하게 되고, 그 사람과 그 사람을 잘 아는 사람들 간의 공기를 굉장히 예민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사람 사이의 공기가 진짜로 존재한다는 걸 명백하게 체험하게 해 줄 정도다. 그런데 공격의 의도가 없었기 때문인지 말을 꺼낸 사람이 그 공기를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 진다. 나 역시 여러 번 박차고 나갔지만(마음속에서만 그러기도 했다) 많이 겪어보고 나면, (예비) 피해자는 괜찮은데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너무 조심하게 되는 그 상황이 우습기까지 하다.
이 microaggression에 대해 선택권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 말에 대해 '인종차별' 등의 큰 주제를 들며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개념은 '의도가 없는' 영역이다. (예비) 피해자로서 공중에 날아다니는 수많은 텍스트들을 다 내 귀로 넣어 내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도 아주 귀찮은 일이다.
그러면 말하는 사람이 의도가 없다면 아무렇게나 말해도 될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주제(microaggression-2, '말하는 사람'편)를 잡아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어디까지나 위 글 내용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