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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Jan 24. 2024

다시부르기 1 : 위로 받을 날들과 웃을 날들

by 김광석 (1993)

위로 받을 날들과 웃을 날들


 가수 김광석은 ‘형’으로 부르고 싶은 유일한 뮤지션이야. 1964년생인 그가 만약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나의 삼촌 뻘 연배가 되었을 테지.

 어렸을 적, 뉴스로 김광석의 부고를 접했어. 1996년. 그의 나이 향년 31세였지. 불행히도 그것이 광석이형과 나의 첫 만남이었어. 나는 그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끼기에는 너무도 어린, 가끔 이불에 실수도 하고 마는 꼬마에 불과했거든. 그 꼬마에게 김광석의 죽음은 그저 뉴스 속 지나가는 죽음 중 하나로 잊혀졌고.


 시간이 흘러, 노스트라다무스가 종말을 예언한 불안했던 1999년도 지나고, 밀레니엄 버그의 흉흉한 소문 속에 서기 2000년이 찾아왔어. 그 해에 나는 친구들과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았지. 지금도 한국 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이기에, 그 내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을게. 여기서는 그저 남북한 군인들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라고만 하고 넘어가자. 극 중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듣던 북한군 중사가 한숨을 쉬는 장면이 있어.


 “아, 오마니 생각나는구먼. 근데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비극적인 결말과 음악, 그리고 송강호의 이 대사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내 가슴 속에서 웅얼거렸어. 초등학생 시절 뉴스로 본 그의 죽음을 다시금 떠올리며, 나도 속으로 ‘왜 그렇게 일찍 죽었어요?’ 물었던 것 같아.


 그 때부터 나는 종종 광석이형의 음악을 찾아 들었지. 그의 음악을 가장 열심히 들었을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었어. 수능을 코 앞에 둔 그 시절, 나의 CD케이스 한 칸에는 거의 매일 《다시부르기 1》이 꽂혀있었고, 친구들은 《다시부르기 1》을 발견할 때마다 ‘또냐?’면서 진절머리를 냈어. 그 만큼 마르고 닳도록 광석이형을 들었지. 우습게도 그 시절 나는 〈이등병의 편지〉를 제일 좋아했어. 스무살도 안 된 고삐리가 공감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말이야.


 정작 군대에 가기 직전에는 엉뚱하게도 〈서른 즈음에〉를 즐겨 들었어. 군대 가기 며칠 전, 나는 동아리 방에 남은 내 짐을 다 정리하고 홀로 그 곳에서 밤을 샜어. 동방 앰프로 틀어놓은 ‘또 하루 멀어져간다’는 그 씁쓸함을 〈기다려줘〉로 달랜 기억이 나네. 한편으론 오글거리고.

 군 시절 만난 모 대위는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해서, 가끔 나를 불러 함께 기타를 치고 놀았어. 그가 편하게 하라고 말했지만 결코 편할 수 없었던 그 합주 속에서, 유일하게 내가 즐겼던 순간은 광석이형의 노래를 부를 때였어. 대위는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말하지 못한 내 사랑〉를 좋아했지. 《다시부르기 1》로 자주 들었던 그 노래들을 연주하며, 나는 잠시나마 군 생활의 피로를 잊었어.


 복학생이 되고 그리운 선후배들과 재회하고나서는, 그들과 함께 광석이형 노래를 불렀어. 언젠가 왕십리 좌판에서 〈그루터기〉와 〈광야에서〉를 합창했던 적도 있었지. 주인 아주머니는 시끄럽다고 눈치를 주었고.〈광야에서〉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민중가요야.

 막상 서른이 되었을 때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에 슬퍼했어. 지금 내 아내 된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결심했던 그 시점에 나는 벌써 이별을 염려하고 슬퍼했다.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이상한 취향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게 광석이형의 노래는 마치 친한 형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나 다름없었지. ‘먼저 살아보니 이렇더라’는 따뜻한 다독임 같은 것이었어. 그 속에는 내 과거에 대한 꾸짖음도, 내 미래에 대한 위협도 없었지. 그저 푸근한 미소만이 존재했어. 《다시부르기 1》의 커버 아트와 같은, ‘형님’이 아닌 ‘형’의 미소.

 이제 내 나이는 세상을 떠날 때의 광석이형의 나이보다 몇 살이나 더 많아. 까마득한 형이었던 노래 속 광석이형은 이제 나보다 어린 목소리로 노래하는 이가 되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도 김광석을 광석이형이라 부를 거야. 위로 받을 날들과 웃을 날들. 〈그 날들〉 속에서 그가 언제까지나 우리 형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광야에서〉는 김광석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를 ‘다시 부른’ 것이다.

김광석의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 《사랑이야기》와 《인생이야기》도 찾아 들어볼 것을 권한다. 녹음상태는 좋지 못하지만, 김광석의 음악을 가장 당대의 감성으로 들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Release Date    March 2, 1993

Recording Location    Garak Studio (Seoul,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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