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e Verve (1997)
‘락춘기’라는 말이있었어. ‘Rock’과 ‘사춘기’를 합친 조어인데, Rock에 빠져지내는 사춘기라는 의미도 되고, Rock에 빠져서 사춘기 청소년처럼 철 없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도 있어. 나의 경우는 둘다였지. 나의 사춘기는 ‘락춘기’로 악화되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엣날 록 음악과 록스타들을 동경하는 후유증으로 남았어.
락춘기가 한창이던, 대학가요제에서 상타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그런 꿈을 꾸고 있던 스물 한살 때의 이야기야.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일반쓰레기’라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가입하게 되었어. 합주 두어번 해보고 음원은 커녕 공연조차 한번 안해보고 유야무야 되어버린 밴드 활동이었지만, 그 덕에 나는 그 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영국인 형님 한 분을 알게 되었지.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이러저러한 사건을 겪고, 책도 쓰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꽤 유명한 분이 되셨지만 이 글에서는 그냥 ‘영국 형님’이라고 칭하는 것이 좋겠다.
나와 내 친구 가수 강백수, 그리고 영국 형님 셋이서 강남역 인근의 한 술집에 모인 적이 있었어. 소주를 마시며 우리는 역사 이야기도 하고 정치 이야기도 하고 여자 이야기도 했지. 그리고 물론 음악 이야기도 진탕 나누었고 말이야. 퍽 즐거운 술자리였어.
집에 가야할 시간이 되자, 나와 영국 형님은 방향이 달랐던 강백수를 먼저 보내고 나서 강남역을 향해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어. 형님은 콜트 기타를 멨던 것 같고 나 또한 베이스를 등에 짊어진 채였지. 우리는 흡사 스노클링을 하듯 인파 속을 유영하다가, 문득 원래 목적지가 그 곳이었던 것처럼 강남역 7번 출구 근처의 ‘신나라 레코드’ 매장 안으로 들어갔어. 누가 먼저 가자고 한적도 없이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 매장 안에서, 영국 형님과 나는 서툰 한국어와 서툰 영어로 ‘이 앨범 들어보았는지’, ‘이 음반은 참 별로였다’ 식의 한담을 나누었단다.
《Urban Hymns》는 그 때 영국 형님이 나에게 추천해준 두 장의 음반 중 하나야. (다른 하나는 제인스 애딕션의 앨범이었는데, 이 이야기는 언젠가 하도록 하자.) 영국 형님의 국적이 국적이니 만큼, 브릿팝 밴드 음반을 꺼내들어 추천하는 형님의 모습은 무언가 그럴싸했어. 대표곡이자 메가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Bitter Sweet Symphony〉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나는 군말 없이 형님의 추천대로 앨범을 사가지고 나왔지.
《Urban Hymns》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길다’ 였어. 집에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CDP로 듣기 시작한 음반이 집에 도착하고도 한참이 넘게 끝나지 않았지. 나중에 확인해니 앨범의 총 재생시간이 75분이더라. 이 정도면 CD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준이고, 브릿팝 대표 명반들의 길이가 대개 50분 언저리였던 점을 감안하면 확연히 긴 앨범이라 할 수 있었어. 심지어 평가야 어쨌든 대작은 대작이라 회자되는 오아시스의 문제작 《Be Here Now》의 앨범 길이도 70분으로 《Urban Hymns》에 못 미치니 말이야.
이렇게 긴 앨범임에도 《Urban Hymns》는 지루하지 않은 음반이었어. 특정 마디들이 반복되는 구성이 많았는데도, 긴 시간을 집중하게 만드는 흡인력이 놀라웠지. 당장 첫번째 곡인 〈Bitter Sweet Symphony〉만 해도 6분에 달하는 대곡인데 이를 지탱하는 것이 고작 2마디, 길게 봐야 4마디의 루프야. 같은 것을 다르게 끊임 없이 변주하는 이 저력은 앨범 곳곳에서 관찰 할 수 있지. 이를 테면 〈The Rolling People〉, 〈Catching the Butterfly〉, 마지막 곡 〈Come On〉 같은 곡들을 듣노라면, 자잘한 요소들을 변화시키며 큰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이들의 능력에 감탄하게 돼.
군 시절 막 병장을 달고 내무실의 왕고를 차지한 나는, 부대 내 남는 야전선을 이용해 막사 안에 커다란 스피커 네 통을 달아놓았어. 그리고 주말 청소시간이면 병장의 권력을 이용하여 《Urban Hymns》를 크게 틀어 들었지. 굳이 《Urban Hymns》를 선택했던 이유는 당시 내가 반입한 음반 중에 가장 시끄럽게, 그러면서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반이었기 때문이었어. 시끄러운 음반 중에서는 그나마 소프트했달까? 전역을 앞둔 고단함을 그렇게 달래었었나 싶어. 나 때문에 음악중심을 보지 못한 분대원들에게 이 글로나마 심심한 사과를 전해할까 해. 얘들아 미안했다!
〈Bitter Sweet Symphony〉에 얽힌 저작권 분쟁이 유명하다. 팝 음악사의 문제적 인물인 ‘앨런 클라인’과 관련된 매우 복잡한 사연인데, 결론적으로 2019년 이후 〈Bitter Sweet Symphony〉의 모든 저작권은 The Verve 의 보컬 리처드 애쉬크로프트가 가지게 되었다.
주로 기타리스트인 맥케이브와 리처드 애쉬크로프트가 함께 곡을 썼는데, 어쿠스틱 기타의 코드 위에 노래를 불러 멜로디를 만들고, 그 위에 다른 악기들을 점차 입혀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Release Date September 30,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