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en Folds Five (1995)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내가 Ben Folds Five 라는 밴드의 이름은 알게된 건 〈Everybody’s Changing〉이라는 노래로 인기를 끌었던 밴드 Keane 을 통해서였어.
2000년대초, ‘밴드라면 당연히 기타가 있어야지’라는 고정관념을 부숴준 밴드 Keane의 데뷔 앨범 《Hopes and Fears》에 푹 빠져있었던 나는, 이와 비슷한 음악을 더 듣고 싶다는 갈망에 사로잡혀있었어. 건반이 전면에 나서는 밴드 음악이라니! 처음 과자를 맛 본 아기처럼, 과자 한 통을 다 비우고 나서 또 다른 한 통을 찾아 기웃거리고 있었달까. Keane이 주었던 그 신선한 충격을 조금이라도 빨리, 다시, 또 많이 느끼고 싶었어.
그러던 중에 잡지에서 읽었었는지, 당시 활동하던 카페에서 보았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Keane의 음악은 Ben Folds Five와 비슷하다’라는 정보를 얻게 되었어.
망설일 겨를이 없었지. 전화로 재고를 확인하고는 휴일이 되자마자 종로 교보 핫트랙스까지 먼길을 달려가 Ben Folds Five의 셀프 타이틀 앨범 《Ben Folds Five》를 손에 넣었어. 전화로 묻고 바로 방문해서 음반을 살 수 있었다니, 2022년 현재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지? 스트리밍으로 지금 당장 음악을 찾아들을 수는 있어도, 원하는 음반을 사려면 해외 중고까지 뒤져야하는 시대가 2020년대야. CD 수집하는 입장에선 가혹한 시대가 아닐 수 없어.
어쨌든, 그렇게 얻은 《Ben Folds Five》는 두말할 것 없는 명반이었어. 첫 곡 〈Jackson Cannery〉의 인트로 4마디에서부터 명반 냄새가 진동을 하더니, 〈Philosophy〉후반부의 인상적인 피아노 솔로, 재기발랄하고 사랑스러운 곡 〈Julianne〉, 뮤지컬 느낌이 물씬나는 〈Underground〉, 어딘가 슬프면서도 신나는 〈The Last Polka〉와 조용히 앨범을 마무리 하는 〈Boxing〉까지 단숨에 들어버렸어. 휴일을 반납하고 종로로 발품을 판 보람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듣는 내내 전율을 느꼈지. Keane의 음악이 단맛이 가미된 맛김치였다면, Ben Folds Five의 음악은 젓갈 내음 가득한 남도의 신김치랄까? 정갈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날 것의 향취가 있는, 과연 맛있는 음악이었어. 그 날은 속이 쓰릴 때까지 《Ben Folds Five》를 듣고 또 들었던 것 같아.
Keane의 색채가 다분히 팝적이라면, Ben Folds Five의 색은 대중적이면서도 록큰롤을 놓치지않는, 혹은 록큰롤이면서도 대중성을 챙긴 느낌이야. 강하게 치다못해 부수기 직전까지 내리때리는 듯한 피아노 터치, 이에 지지 않는 드럼의 박력, 그 사이 빈 공간을 용납하지 않는 퍼즈 베이스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귀가 즐거워. 거기에 프론트맨 벤 폴즈의 목소리는 또 어찌나 절창인지. 서정성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겸비한 그의 목소리를 통해 Ben Folds Five의 음악이 외유내강, 외강내유의 균형을 이루니,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야.
언젠가부터 나는 《Ben Folds Five》를 잘 듣지 않게 되었어. 의도적으로 멀리했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 지나치게 훌륭한 앨범이어서, 역설적이게도 들을 때 마다 샘이 났거든. 지금도 《Ben Folds Five》를 듣고 있노라면, 행복함보다는 질투심을 더 강하게 느껴. 또 한편으론 좌절감도 느끼고. 대체 세상에는 왜 이렇게 훌륭한 음반들이 많은 걸까?
밴드의 구성원은 Ben Folds를 비롯해 3명이지만, Five라는 어감을 좋아해 Ben Folds Five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고 한다. 기표가 기의가 어긋나는 포스트 모더니즘, 세기말 감성의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사감으로, 이상하게도 Ben Folds의 솔로 음반들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꺼내 듣고 놀라움을 느끼는 Ben Folds의 음반은 오직 본작 《Ben Folds Five》 뿐이다.
Release Date August 8, 1995
Recording Date February, 1995
Recording Location Wave Castle, 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