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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Jan 31. 2024

신중현과 엽전들 1집 : 한국의 로크

by 신중현과 엽전들 (1974)

한국의 로크


 2000년대 말 홍대 앞에는 영어로 된 자작곡을 부르는 밴드들이 많았어. 기타를 메고 연습실을 전전하던 나 역시도, 말도 안되는 영어를 웅얼거리며 멜로디를 짜곤 했지. ‘가사는 나중에 한국어로 고치자’ 하며 쉽게 넘어갔지만, 음악의 신에 빙의 당한 척 방언으로 얼버무린 곡들이 마음에 들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오히려 어쩌다 요행으로 입말에 멜로디가 붙은 곡들이 조금이나마 내 성에 찰 뿐이었지.


 콩 심은 데 콩나는 법이야. 영어로된 음악을 즐겨들으며 연습하던 그 시절 우리는, 겉은 몽골리안이되 속으로는 외국의 것만을 쫓고 있었어. 짝퉁 팝송에다 한국어를 구겨 넣으니 노래고 가사고 산으로 가는게 당연했지. 누굴 탓할 수도 없었어. 해외 명반만을 사대하고 영미권 음악만을 듣고 따르라 시켰던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니까.

 우리 정서에 맞는 좋은 곡과 좋은 가사를 쓰는 것은 늘 마음의 짐이었어. 국문학도로서의 자존심이었거나, 홍대 앞 아무 밴드로 끝나고 싶지 않다는 (결국 아무 밴드로 남았지만) 내 반골 기질의 발로였을 거야.


 홍대 앞 퍼플레코드에서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을 샀던 시기도 그 즈음이었어. 파랗고 하얀 바다를 닮은 상쾌한 디자인에 절로 손이 가더라. ‘신중현 앨범이니까 하나 있어야지' 하는 마음에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음반이었지. 그런데 집에 와서 펼친 앨범의 라이너노트의 첫줄이 내 가슴을 찔렀어.


 ‘우리에게 [재즈] 는 없다. 그렇다면 [로크] 는? 한국의 [로크뮤직] 은 있었던가? 한국의 [로크] 는 과연 가능할 것인가?’


 대한한국 1호 음악 PD로 불리는 최경식 평론가의 날선 질문. ‘신중현'이라는 이름 값과 〈미인〉이라는 곡 제목 하나 믿고 음반을 뜯은 나는, 예상치 못한 무거운 질문과 마주하였어. 괜시리 부끄럽고 민망한 기분. ‘옛 거장들이 이미 했던 고민을 마치 나만의 고민이었던 양 우쭐해 했구나‘ 하고 고개를 숙였어.


 한국의 로크. 신중현의 음악은 늘 한국의 로크 외길이었지만, 《신중현과 엽전들 1집》 은 그 중에서도 가장 ‘한국의 로크' 다웠다고 생각해. 이른바 ‘신중현 사단'을 통해서 보여준 음악들이나 ‘신중현과 뮤직파워’ 때의 곡들도 훌륭하지만, ‘한국'이면서,  ‘로크'이면서, 높은 완성도까지 갖춘 앨범은 단연 이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이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앨범을 듣고 ‘한국적이다’ 느낄 것이기에, 무엇이 어떤 원리로 이 앨범을 ‘한국의 로크'로 들리게하는지 설명하는 것은 넘어가려해. 음악적이고 심도있는 분석은 단순 애호가일 뿐인 나에게는 벅찬 일이기도 하지. 다만 내가 듣기에, 이 앨범이 한국적으로 들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 말과 우리 정서에 맞게 음악을 바꾸고 맞추겠다는 ‘태도 혹은 자세’에 있다고 봐.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에 신중현 그는 블루스의 펜타토닉을 한국인의 혈액 속에 흐르는 5음계로 치환할 수 있었던 거지. 〈나는 너를 사랑해〉에서 ‘해랑사를 너는 나'처럼 거꾸로 된 문장의 상여소리를 내거나, 〈나는 몰라〉에서 연주를 멈추고 익살스런 대화를 나누는 등의 모습도 같은 맥락이야. 처음부터 ‘한국의 것’을 추구하며 구현한 록이기에 ‘한국의 로크'라는 표현이 합당한 것이지.


 되돌아보면,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는 곧 미국 대중음악을 받아들여온 역사일지도 몰라. 더 심하게 말하면, 당대의 up-to-date한 미국 음악을, 아무런 필터없이 곧이 곧대로 따라해온 역사일 수 있어. 그리고 이 같은 행태는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지. 이런 환경에서 반세기 전에 《신중현과 엽전들 1집》 같은 앨범이 나왔었다는 건, 어쩌면 한국 음악사의 작은 기적은 아니었을까? 우리 음악이 나아가야할 길과 되돌아봐야할 길, 그 오래된 미래가 바로 이 음반 속에 있는 듯 해.


본 음반은 크게 초판본과 재판본으로 나뉘는데, 트랙 구성과 길이는 물론 녹음까지 아예 새로 한 서로 다른 음반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필자가 소장한 앨범은 CD로 나온 재판본이다. 지금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두 음반을 모두 들어볼 수 있으니, 리스너로서는 행복하다 하겠다.

본문에서 언급한 ‘신중현과 뮤직파워'의 동명의 앨범 《신중현과 뮤직파워》 역시 대단한 명반이지만, 〈미인〉 등 ‘엽전들' 시절 음원이 다시 실린 점과 수록곡들의 질이 균질하지 않아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지만 뮤직파워 버전의 〈아름다운 강산〉을 꼭 들어 보기를 권한다.

최경식 평론가님의 의견과 달리 나는 한국에도 [재즈]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Release Date    August 25,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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