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eastie Boys (1992)
비스티 보이즈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엉뚱하게도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펑크 밴드 Sum 41의 〈What we’re all about〉 뮤직비디오 영상을 통해서였어. 정확히는 영상이 공유된 글의 댓글을 통해서 였는데, 그 댓글에서 누가 ‘이거 완전 비스티 보이즈인데?’ 하는 거야. 그를 계기로 나는 비스티 보이즈에 대해 더 알아보니, 그들의 음악들 중 들어본 듯한 곡이 많아 깜짝 놀랐어. 이를테면 〈Fight For Your Right〉나 〈Sabotage〉 같은 곡들 말이야.
비스티 보이즈에 대해 두번째로 놀랐던 점은, 그들의 데뷔에 위대한 프로듀서 릭 루빈이 깊이 관여되어 있었다는 거였어. 심지어 비스티 보이즈의 성공이 릭 루빈 전설의 시작이었다는 걸 난 그때서야 알게 되었지. 그 때까지 모은 여러 앨범들의 크레딧에서 이미 릭 루빈의 이름을 마르고 닳도록 봐왔거든. 두 말하면 입 아픈 Red Hot Chili Peppers의 앨범이나, System of a down의 앨범들에서 말이야. 그 대단한 릭 루빈의 시작이 이들 비스트 보이즈의 앨범이었다니, 내가 지금껏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쳐왔다고 느꼈어. 그리곤 뒤늦게 《Hello Nasty》, 《ill communication》 등 비스티 보이즈의 앨범들을 하나 둘 사모았지.
하지만 그 앨범들은 내 CD 장에 꽤 오랫동안 꽂혀만 있었어. 비스티 보이즈의 음악은 분명 좋았지만, 아직 어린 내게는 너무 강한 향신료 같은 것이었나봐. ‘그런가 보다’하고 몇 번 듣고 말고를 반복하다가, '비스티 보이즈'라는 이름도 내 기억 속에서 잠시나마 희미해졌지. 그러던 내가 다시금 비스티 보이즈를 발견하게 된 건, JYP에서 막내로 일하던 시절 만난 K형님의 덕이야.
큰 키에 다소 마른 몸매, 그와 대비 되는 헐렁한 셔츠와 야구 모자 차림을 즐기던 그 형님은, 내가 여태껏 친해진 분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사람이었어. 무엇보다도 코드가 맞았지. 그 땐 정말이지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나와 형님은 시간이 될 때마다 녹음실 작은 방에서 이런저런 한담을 부고 받았어.
K형님은 이력이 화려했어. 우선 그는 탐정소설 마니아였지. 그 중에서도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가장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정도가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서서, 각종 수집품을 모으고 정리하는 수준이었어. 심지어 아이의 이름도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 아서 코난 도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지. K형님은 언젠가 한국에 셜록 홈즈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했어.
또한 그는 발명가 이기도 해서, 특허도 몇 개 있을 뿐더러, 발명에 관련한 꽤 유명한 블로그를 운영했었지. 나는 머리 속으로 꿈만 꾸었던 여러가지 멋있는 아이디어들을 실제로 구현해오며 살아온 형님이었어. 싸구려 마이크의 부품을 고급품으로 바꾸어 테스트 해보았다던가하는 글들은 나도 언젠가 읽은 적이 있어서, ‘아, 그게 형님이셨군요!’하고 반가워했어.
하지만 그가 가진 모든 재주 중에 K형님이 가장 미련을 뒀던 건 역시 음악이었지. 그는 한국 힙합 씬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음악을 해온 모든 과거를 뒤로 하고, 가족을 위해 직장인의 삶(결국 음악 회사의 직장인이었지만)을 택했던 거야. 나중에 한번은 형님이 만들었다는 데모 음원들을 들었는데, 노래 가사가 모두 탐정 소설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에 한번 놀라고, 음악의 퀄리티에 두번 놀라고, 가이드 보컬로 참여한 가수들의 이름값에 세번 놀랐어.
그러던 어느 날, K형님과의 대화에서 'Beastie Boys'라는 이름이 툭 튀어나왔어. 어떤 연유로 그들이 언급된 것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K형님은 ‘오!’하고 감탄사를 뱉더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룹 중 하나란 말에, 내가 ‘그래요?’라고 뜨뜨미지근 하게 대답하자 형님은 나를 똑바로 앉혀 놓고 비스티 보이즈가 얼마나 위대한 지에 대한 열변을 토했어. ‘Beastie Boys는 음악성과, 시의성, 유머와 천재성을 두루 갖추면서도 간지까지 챙긴, 말도 안되게 멋진 그룹이니 반드시 들어야만 한다’가 이야기의 결론이었지. 자연스럽게 나는 비스티 보이즈 최고의 명반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고, 형님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나에게 《Check Your Head》라는 앨범명을 적어주었어.
그 주에 바로 홍대 앞 퍼플레코드에서 〈Check Your Head〉를 샀지. 셋이서 쭈그리고 찍은 프론트 커버부터 어딘지 모르게 멋스러웠는데 K형님이 말한 ‘간지’라는게 이런 것인가를 잠시 사색하고는 포터블 플레이어에 CD를 집어넣었어. 지하철 구석자리에서 앉아 뉴욕 출신 힙합 트리오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제법 운치가 나더라. 덜컹거리는 열차의 소음이 첫 곡 〈Jimmy James〉에 잘 어우러졌고 나는 곧 음악 속에 빠져들었지.
두번째 곡 〈Funky Boss〉에서야 나는 이 앨범의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여 녹음한 힙합 앨범이란 사실에 깨달았어. 당시 퓨전 재즈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던 내게는 어딘가 심플하고 허술해 보이는 연주였는데, 의외로 그 단순명쾌한 연주가 맛깔스러웠어. 오히려 이런 연주야 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
믹스도 대단했어. 어렸을 때는 ‘향이 세다’라고 느꼈던 그 사운드가, 자세히 들어보니 보통 믹스가 아니었더라고. 몰라서 못 듣던 음악이 알고나니 들리더라.
그 날 이후. 나는 다시 비스티 보이즈의 앨범들 꺼내 듣기 시작했어. 들으면 들을 수록 놀라운 퀄리티.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라. 그제야 비스티 보이즈의 비범함을 깨달은 나는 ‘이 놈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인가?’하며 좌절감을 느꼈어. 도무지 어떻게 녹음되고 믹스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질감의 소리들. ‘넌 아직 멀었다’며 초보 엔지니어에게 겸손의 무게를 알려주는 듯한 음반들이었지. 그 무렵을 지나며, 《Check Your Head》를 비롯한 비스티 보이즈 앨범들에 프로듀서, 작곡가, 엔지니어로서 크레딧을 올린 마리오 칼다토 주니어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엔지니어 중 한 명이 되었어.
K형님은 입버릇은 아무 때나 ‘비스티 보~이즈’라고 흥얼거리는 거였어, 그건 실은 〈The Biz Vs, The Nuge〉의 인트로였지. 그래서 나는 가끔《Check Your Head》들을 때마다 그 시절 K형님을 떠올려. 그리고 JYP에서 깨작거리던 옛날을 추억하지.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수 많은 형님들과 함께 먹은 밥들, 함께 보낸 밤들이 생생하다. 가장 고생스러웠고 소중했던, 하지만 찰나처럼 지나갔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앨범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Check Your Head》는 특별한 앨범이야.
Mario Caldato Jr.은 싱어송라이터 Jack Johnson의 작업에도 다수 참여한 바 있다. Beastie Boys의 음악에는 어느 정도 사파적인 느낌이 있는데 반해 Jack Johnson의 음악은 정파적인 무엇에 가까우니, 역시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열을 잘하나보다.
Release Date April 21, 1992
Duration 53:44
Recording Location G-Son Studios, Atwater Village, 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