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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예지 Oct 08. 2024

푸르던

 시인 메리 올리버의 책 한 권을 막 다 읽은 참이다. 나는 시를 좀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이 책이 어쩌면 그런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어떤 이의 추천사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 생일 선물로 가지고 싶은 게 없냐 물었을 때, 그 책을 스스럼없이 부탁했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봤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 나와 잘 맞겠구나 하는 느낌 말이다. 첫인상을 염두에 두는 편은 아니지만, 소풍 가는 날 아침 창문 틈으로 햇살이 드리우는 기분 같은 거다. 날마다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쓰는 시인이라는 문구. 자연과의 교감으로 시를 쓰는 사람.  


나와 여행을 간다면, 특히 함께 밤을 지새우게 된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별을 보러 나오는 일이다. 별이 잘 보이는 도시라면 말이다. 인위적으로 빛을 내는 무언가가 잘 없는 동네여야 한다. 저마다의 크기와 명도로 반짝이고 있는 별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처럼 순수해진다. 하늘은 새까만데 나는 점점 투명해진다. 나는 자연의 그런 점이 좋다. 아무것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나를 광활한 우주의 티끌 같은 행성 속 먼지보다도 몇 배는 더 작은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럼 뭐든 해도 괜찮다는 믿음과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 ‘어차피 티도 안 날 테니 아주 멋~대로 살다 가련다!’ 라던지, ‘나는 우주의 시간 중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만 머물다 갈 뿐이니 사이좋게 지내다 가야겠네.’와 같은 쓸모없고 웃긴 생각을 하며 말이다. 아니, 어쩌면 꽤나 유용할지도 모를 생각을 하며.


별을 사냥하기 위해 어두컴컴한 밤의 침입자가 되는 일과 비슷한 것들이 나의 여행에서는 허다하다. 서쪽의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어떤 것도 시야를 가로막고 있지 않은 하늘을 찾는 일. 그와 반대로 되려 하늘의 색을 찾기가 수월하지 않은, 빼곡한 녹음의 공간에서 숨을 잔뜩 들이 켜는 일. 숲의 입구에 서면, 내 안의 숨은 모험가가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뽐낸다. 망설이기만 한다면 모험가의 자존심이 퍽 상하게 될 것이므로 들어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점령했던(지금도 점령하고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해리포터 따위의 영화를 떠올리며 호기롭게 입장한다. 약간의 경계심은 필수다. 허나, 그 안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판타지적인 요소는 덜 하다. 대신 고요의 기운이 압도적이다. 거슬릴 것 없는 백색소음과 노력하지 않아도 될 시선을 누리며 조용히 찬탄한다. 뭐, 생각의 쳇바퀴는 항시 굴러가고 있으니 온갖 신비로움이 가득한 모험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토록 커다란 고요라서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 버릴 반대의 사건을 떠올리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있다. 자연은 개별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를 설명할 때 알맞은 말일 것이다. 그 단어에는 유일무이한 예쁨과 독보적인 푸르름이 가득 담겨있다. 또 어떻게 보면 유유히 흘러가는 우아함과, 앞서 언급한 단어와는 결이 다른 수수함까지도 담겨있는 듯하다. 자연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어주기 바쁜 자연의 선물에 익숙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과도 조화로운 자연에 잘 스며들 수 있을까.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그처럼 자유롭게 누비며 살고 싶다고. 그래, 나는 통장에 한 푼 없어도 충만하고 아름다운 자연 같은 사람이 되길 앞으로도 소망하며 살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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