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던 고1, 그때부터 각별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고2가 되어 같은 반이 되고, 수학여행에 갔을 때가 시작이라고 믿고 있다. 출석부의 번호 순서대로 한 조가 되었던 것이 계기였다.
철딱서니는 없고 순수는 충만했던 시절의 두 사람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최대의 목표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인 시절이기도 했다. “어떤 과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가 이야기의 시작이었지만 성적에 맞춰 아무 데나 가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서로가 뭘 좋아하고, 어떨 때 기쁜지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했다. 나는 그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처음으로 탐구했다.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주로 혜인의 집이었는데, 학교에서 무척이나 가까운 집이었다. 어리숙해 보이는 파란 뿔테 안경을 쓴 혜인과 앞머리가 빽빽하여 이마가 보이지도 않던 나는 그곳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머리색을 오렌지 브라운으로 물들이며 20대를 맞이한 우리는 달라진 겉모습만큼이나 다른 모습의 삶을 맞이해야 했다. 혜인과 나는 서로가 모르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거지 같은 남자도 만나고 새로운 세상도 만났다. 하지만 우리는 힘을 내고 시간을 내어 서로가 만들어낸 세상을 아낌없이 공유했다. 재잘대기 바쁜 탓에 사진 한 장을 못 남기고 헤어지기 일쑤였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사이였다.
혜인은 나를 응원하기 바쁜 사람이었다. 세상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나를 만나면 그건 당연한 것이라며 나를 토닥였고, 어떤 때는 나도 잊어버린 과거의 나를 데려와 너는 이렇게나 멋있게 달라졌다며 쪼그라든 나의 풍선에 다시 바람을 넣어주었다. 그런 혜인과 보내는 시간은 내게 안식처이자 우렁찬 응원가가 되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런 친구의 결혼이었다. 나는 친구들의 결혼이 두려운 사람 중 하나였다. 안 그래도 손에 꼽을 만큼 있는 친구들과 멀어질 계기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결혼에 대해 좋은 점보다 그렇지 않은 점을 더 많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혜인이 결혼의 결심을 내게 전했던 날, 결심의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보호자가 되고 싶어.
혜인의 대답이었다. 법적으로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진짜 보호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대답은 내가 익히 들어온 결혼의 이유들과는 차원이 달라서 나는 어떠한 말꼬리를 붙이지도 못한 채로 그저 수긍해 버렸다. 마음 한구석에는 자그마한 존경심까지 일었다. 애초부터 혜인의 선택은 내 것이 아니었다. 선택은 그녀의 몫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선택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일과 힘이 떨어졌을 때에 잠깐 손을 잡고 같이 달려주는 일이었다. 혜인이 지금껏 내게 보내준 사랑의 모양이자, 우리가 우정을 쌓아온 방식이기도 했다.
드디어 결혼식이 일주일도 안 남게 되던 날들에 나는 혜인과 자주 통화했다. 통화 중에는 식장에 일찍 도착하겠다는 약속도 포함이 되어있었는데, 어쩐지 결혼식 당일에 도착한 식장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일까 걱정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던 나를 발견한 사람은 오늘의 신랑이었다. 머리를 깔끔하게 올려 넘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나의 목적지를 단박에 알려주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혜인의 반짝이고 하얗고 단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 한 곳이 시큰하고 찌르르해졌다. 그 기운은 무서운 기세로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더니 눈물을 한껏 머금게 했다. 그러자 통화 중에 혜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울리지 마.
신부의 공들인 화장을 망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혼식 내내 낯설고도 익숙한 친구의 모습을 꼼꼼히 챙겨보았다. 죽기 전에나 볼 줄 알았던 지난날의 파노라마가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울다가 웃다가 하는 저기 서 있는 저 애가 내 친구여서 다행이었던 지난날이 자꾸만 재생되었다.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랗고 진심인 축하의 마음을 파란 뿔테가 잘 어울렸던 오늘의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보냈다.